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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미래연구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신산업 활성화에 집중해야"
"역대 정부 규제개혁에 한 목소리…일시 이벤트가 아닌 상시 시스템으로 접근해야"
2018-01-23 06:00:00 2018-01-25 14:31:13
시대요구에 맞게 규제를 개혁하려면 무엇보다도 규제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규제개혁에 따른 이해당사자는 피규제자를 우선 떠올리기 쉬우나, 피규제자 간에도 이해관계가 다른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규제자인 정부당국도 이해당사자의 한 축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규제개혁은 입에 올리기는 쉽지만 하기는 어려운 작업이다. 규제와 규제 당국의 속성은 과연 무엇인가. 규제혁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지 심영섭 인하대학교 초빙교수로부터 들어본다. <편집자>
 
“규제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금물”
 
천신만고 끝에 집권에 성공하고 신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정책을 펼칠라 싶으면 규제에 가로막혀 좌절하는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을 비롯한 피규제자들도 ‘때는 이때다’ 싶어 이런저런 건의에 바쁘다. 민심을 살펴야 하는 신정부 인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집권 초기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인사들은 거친 표현으로 규제를 몰아세우곤 한다. ‘(길을 가로막고 선) 전봇대를 뽑아야 한다’, ‘규제는 암 덩어리와 같은 것이므로 수술을 해서 도려내야 한다’, ‘규제를 단두대에 올려야 한다’ 등의 말이 나왔다.
 
그러나 규제는 뽑아버리거나 도려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화두를 잘못 던지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규제자들 입장에서 그만큼 회피할 궁리의 여지가 넓어지고, 소관 규제는 암세포가 아니라 정상세포라 간주하려 들기 쉬운 것이다. 규제개혁의 방식이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하게 되면 규제자들은 서둘러 개혁에 나서려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기 마련이다. 일종의 규제자들의 저항이지만, 이야말로 집권자의 규제개혁 의지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가 되곤 한다. 집권세력은 유한하지만 정부는 영원하다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신정부 초기부터 규제개혁은 정교하고도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 의욕이 앞선다고 해서 윽박지르듯이 규제개혁을 추진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 내에서의 규제개혁 움직임은 결국 집권자와 규제자 간의 힘겨루기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인데, 어설픈 규제개혁 시도는 프로급의 규제자들이 버티고 있는 규제 당국을 설복시키기 어렵다.
 
과거 박근혜정부의 경우를 보면, 집권 초기 ‘암덩어리’나 ‘규제 단두대’ 등과 같은 강한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집권 3년차에 이르러서는 ‘규제는 잡초같이 내버려두면 무성하게 계속 자라나는 것’이라거나, 규제개혁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되겠느냐’ 하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 뒤늦게나마 규제 당국과 정부 규제의 속성을 파악한 것으로 평가한다. 집권 초기부터 규제를 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점을 되새기게 하며 그런 인식이 선행돼야만 규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 논리를 제시하며 꾸준히 설득하라”
 
규제는 단순한 암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에 단칼에 도려내면 그만인 것이 아니고, 그렇게 도려낼 수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규제단두대론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냥 내려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규제마다 설정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이 반영된 것도 있고, 논리적인 배경이 깔려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규제자들의 신념과 확신이 반영된 규제는 정책을 구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심지어 규제자의 상당수는 규제를 만들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른바 ‘확신범’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속성을 지닌 규제들을 개혁해 나가려면 규제자들을 그냥 채근만 한다고 해서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개혁 대상이 되는 규제라 할지라도 섣불리 ‘암 덩어리’라고 부르면 안 되는 이유다.
 
규제개혁은 규제자의 인식 및 속성과의 투쟁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설득력 있는 논리와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논리적으로 규제자들을 설득해 나가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규제는 특정한 행정 목적을 위해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만고불변의 규제란 있을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추구해야 하는 행정 목적이 달라질 수 있고, 이에 따라 권리의 제한과 의무의 부과 방식과 범위, 적용 대상 등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 당국을 대상으로 시대가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고,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부단하게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금융, 운수, 의료 등 인·허가 분야에서는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에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고, 전통산업을 관할하는 정부 부처와 IT정책 부처 간에 규제의 중첩 현상도 발생한다. 시간이 지나면 규제가 시의성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시대 변화, 상황 변화, 정책우선순위의 변화를 반영해 여전히 살아있는 규제인지 아니면 죽은 규제인지를 수시로 가려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규제개혁 방향도 바로 이러한 인식 하에서 추진돼야 바람직하다. 지금 이 시대에 규제개혁을 주창하고자 하면 ‘계절이 바뀌었고, 체형이 바뀌었고, 트렌드가 바뀌었으므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논리’로 규제개혁에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규제개혁, 이벤트성 아닌 시스템으로 진행돼야”
 
규제의 속성은 당국자의 신념이나 확신, 그리고 정책구현의 수단에 따라 달라진다. 게다가 정부는 칸막이 영역의 구축과 영역 확장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정부는 또한 각급 기관의 감사로 인한 면책과 여론, 그리고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아 규제를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이러한 정부 및 규제의 속성과 일종의 투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규제의 속성상 규제개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작업이고, 정부가 존재하는 한 규제개혁은 영원한 숙제다. 바로 그런 점에서 볼 때 규제개혁은 몇 차례의 이벤트성 행사나 강력한 경고를 통해 성사될 수 있는 사안이 결코 아니다. 규제개혁은 상시 진행되는 정부 혁신으로 연결돼야 하는 것이다.
 
기업친화적이라던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구성해 덩어리 규제, 다수 부처가 관련된 복합 규제, 정책성 규제를 중심으로 개혁에 나서고자 했다. 박근혜정부 역시 규제개혁을 강조하며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진행 과정을 TV에 장시간 생중계하기도 했지만, 막상 그 성과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러한 회의체의 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례화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인 기구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개혁이란 한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므로 일정한 원칙 하에서 시스템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무리 집권자가 강한 정치적 의지를 실어준다해도 이벤트성 행사나 기구보다는 상시적,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규제개혁 그 자체보다 규제에 대한 인식, 규제개혁의 과정과 접근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국가적으로 시급한 과제는 기업의 단순한 애로를 해소하는 것보다 4차 산업혁명의 도래에 대비해 신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피규제자들이 요구하는 개별 개혁과제보다 신산업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춰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규제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 더욱 긴요하다. 신산업 규제를 기존의 규제 부처에서 맡게 되면 기존 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들이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기존 패러다임을 그대로 적용하기 마련이다. 상시적인 규제전담기구를 통해 규제시스템의 설계 작업을 해야 네거티브 규제 등 기존 담론들을 어떻게 실제 개혁활동에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부 내 의견수렴과 노하우 축적이 가능해진다.
 
“규제개혁도 투자해야 성과 기대 가능”
 
규제개혁은 돈을 안 들이고도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논리는 쉽게 빠져들기 쉬운 오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규제개혁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기 때문에 규제개혁 자체를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규제개혁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경우도 있다. 기존 규제에 따른 영향을 추계하거나 평가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규제완화에 따른 보완 시책에도 많은 노력이 투입돼야 하는 등 규제 이행을 위한 집행 비용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면 여객선의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규제를 완화한 뒤, 이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다른 보완 규정들의 설정과 집행에 소홀했던 때문에 참극이 발생하고 말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정부가 규제개혁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강조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의 도입도 비용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시장진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되 시장에서의 사후 감독이 철저하다. 우리나라도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장 감시 기능을 확충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상당한 수준의 행정력을 추가로 뒷받침해야 하고, 철저한 사후 규제에 따른 추가비용도 당연히 지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때 규제자뿐 아니라 피규제자들도 이를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제도로서의 규제는 하나의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규제개혁을 통해 사회적 자본을 새롭게 구축하려 한다면 투자가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규제개혁에 나서는 모든 활동, 심지어 박근혜정부 당시에 진행된 이벤트성 행사, 예를 들면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등과 같은 회의체에서조차도 규제를 어떤 방향으로 개혁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규제개혁을 위해 얼마만큼의 행정력과 예산이 투입될 용의가 있는지도 동시에 보고돼야 마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규제혁신 토론회가 열린 청와대 충무실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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