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제도보다 문화다
입력 : 2018-01-23 06:00:00 수정 : 2018-01-23 06:00:00
지난해 초에도 대한민국은 어수선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둘러싸고 광화문은 촛불로 가득했고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낼지를 놓고 정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올해는 또 다른 전직 대통령 문제로 정국이 술렁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는 중이다. 이 전 대통령은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의 수사를 정치보복과 보수의 괴멸로 규정지었다.
 
매번 대통령의 말로가 비극으로 끝나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이와 같은 악순환이 재현되고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만 이러한가. 기업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대기업 총수 중 감옥에 다녀온 사람도 상당수다.
 
이러한 문제의 책임을 그들에게만 물어야 하는가.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도 이와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 아닌 명성과 부를 가진 자를 동경하고 지지한 뒤, 뒤늦게 ‘사람을 잘못봤다’고 통탄하며 단죄하는 문화가 사회에 파다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요인이 가장 크다.
 
국회는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개헌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백날 제도를 바꾼들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철학의 부재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에서 신생 정당인 앙 마르슈(En Marche)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승리하면서 기존 정치지형에 큰 변동이 일어났다. 수십 년 간 헤게모니를 쥐었던 사회당과 공화당은 형편없이 무너져 회복할 길을 잃었고, 같은 해 6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명성 높은 기성 정치인들이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가 내세운 신인 정치인들에게 참패했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선택 앞에 참회의 시간을 갖는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사르코지 공화당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나탈리 코시우스코 모리제(Nathalie Kosciusko-Morizet)와 올랑드 사회당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나자트 발로 벨카셈(Najat Vallaud-Belkacem)은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정치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고자 정치를 과감히 접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모리제 전 장관은 르 파리지앵(Le Parisien)과의 인터뷰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정치생활을 접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44세인 모리제 전 장관은 지난 총선에서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의 질 르 장드르(Gilles Le Gendre)에게 패한 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그녀는 몇 개월간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하며 “이 시간들은 나를 살찌우고 자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게 했다”고 털어 놨다. 폴리테크닉(기술자) 출신인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신기술 분야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한 민간 기업과 협정을 맺고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예정이다.
 
올해 40세인 벨카셈 전 장관은 오는 3월 사회당대표 선거에 도전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일 옵쇠르바퇴르(L‘OBS)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친구들의 압력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생각하길 원하고, 정치계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서 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다…나는 정치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벨카셈 전 장관은 파이아르(Fayard) 출판사에서 ‘진보주의의 문화적 투쟁’을 다룬 수필집 출간을 위해 일할 예정이다. 그녀는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나는 최근 몇 년간 공공토론이 너무 취약한데 대해 괴로웠다. 토론이 다시 활기를 띄도록 미래 삶의 일부를 할애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시사평론가와 정치논객, 정적들이 매일 언론의 흥행물로 정치를 왜곡시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집단적으로 우리를 더 사고하게 돕는 사상가, 연구자들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젊은 전직 두 여성 장관들이 프랑스 정치계에 부는 새바람 앞에서 내린 결정은 신선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한 뒤 정치가 아닌 다른 분야에 진출해 국가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탄생에 주역이었던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의원들이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해하며 연일 옥신각신 다투는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선거 참패나 국정 실패 앞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지에 대한 사고도, 철학도 없는 듯하다. 한국의 개조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철학 교육일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제도 혁신에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교육을 통한 인적 쇄신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끄러운 역사를 단절하고 새 역사의 장을 열 수 있다. 제도보다 문화의 개혁이 시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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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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