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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육성정책, 이대로 괜찮나)②벤처 생태계 가로막는 '규제의 덫' 여전
혁신적인 아이디어·기술로 신영역 개척 해봐도…규제에 막혀 수익 전무
"정부·학계·업계 등 참여하는 규제개혁 상설 협의체 마련 해야"
2017-11-27 06:00:00 2017-11-27 06:00:00
[뉴스토마토 정재훈 기자] "제가 사업하는 나라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이었어도 결과가 지금과 같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벤처·스타트업이 규제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규제 때문에 벤처업계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김정빈 테이스팅앨범 대표)
 
"드론을 활용해 촬영을 하려면 지방 항공청에 촬영 허가를 받고, 국방부에 비행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 빨라야 일주일이 걸린다. 그나마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된 후 기간이 단축된 것이 이 정도다. 예전에는 각 기관에 일일이 팩스로 공문을 보내고 회신을 기다려야 했다."(정우철 엠지아이티 대표)
 
정부가 벤처 생태계 구축과 확대에 그 어느 때보다 역량을 집중하는 가운데 벤처·스타트업 기업 경영자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벤처기업들의 혁신적인 사업 모델은 관련 규제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문에 업계는 '규제의 덫'이 벤처 생태계 조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업계의 규제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벤처·스타트업 관련 포럼에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규제는 벤처인들이 영원히 안고 가야할 문제"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벤처'라는 특성상 필연적으로 규제를 뚫고 가야한다는 의미지만, 반대로 그만큼 많은 규제에 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벤처업계의 현 주소를 짚어낸 말이기도 하다.
 
'테이스팅앨범'은 국내 최초의 와인 관련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의 김정빈 대표는 와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국내 와인 유통체제가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상업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정식 서비스 1년만에 1만명 가까이 회원을 유치하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사업성을 인정받아 투자유치도 두 차례나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 회사는 지금까지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플랫폼 서비스는 무료로 하고, 와인 구매대행 등 유통판매를 통한 수익모델을 계획했지만 현행법상 전통주를 제외한 모든 주류의 통신판매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당연히 주류 통신판매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관련법을 합법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고 1년 넘게 가능한 모든 방법에 대해 법률적인 검토를 했지만 여전히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업용 드론 관련 스타트업인 '엠지아이티'의 정우철 대표 역시 관련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 대표는 "새로운 산업분야가 개척되면, 이에 대한 법률 제·개정 등이 함께 이뤄져야 정상적인 사업이 가능하다"면서 "드론 분야가 유망하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의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벤처·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서 네거티브 시스템(명시된 사항만 위반하지 않으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제 방향을 가져가야 한다"며 "모든 규제는 균형의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에 깊은 이해와 폭넓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스타트업 기업들이 관련 규제에 막혀 어려움을 겪는 부분에 대해, 스타트업 포럼 등을 통해 수시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며 "관련 내용을 소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부, 기재부 등 다른 부처와 관련된 규제 내용은 직접 해당 부처에 접촉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고 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협회 등 여러 단체에서 규제 개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양한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담아내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며 "정부와 학계, 업계 등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한 벤처·스타트업 규제 개혁을 위한 상설 협의체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산업용 드론을 활용해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의 기간이 걸린다. 사진은 지난 1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7 드론쇼 코리아'(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뉴시스
 
정재훈 기자 skj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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