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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생리대 파동 A to Z…여성 불안 키운 ‘정부 대응’
식약처 1차 전수조사 결과에도 불안한 소비자들
"제대로 된 역학조사와 사전검증 시행해야" 한 목소리
2017-11-13 08:00:10 2017-11-13 08:00:10
1년 중 65일, 평생 2275일. 여성 한 명이 일생동안 경험하는 생리 일수를 평균적으로 환산한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발표한 ‘생리용품 사용실태 및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028명 가운데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비율이 80.9%로 가장 높았다. 탐폰(10.7%), 다회용 생리대(7.1%), 생리컵(1.4%)이 뒤를 이었다. 여성 한 명이 사용하는 일회용 생리대는 40년 동안 평균 1만개. 대다수의 여성들이 일회용 생리대와 얼마나 밀접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회용 생리대가 국내에 정식 출시된 이래 처음으로 위해성 파동에 휩싸였다. 생리대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연구결과나 정부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여성들의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
 
불끄기 급급한 정부, 여성 건강은 안중에 없는 대응
지난 여름 불거진 생리대 위해성 파동은 ‘릴리안 생리대’에서 시작됐다. 온라인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 사용후 생리불순과 생리전증후군(PMS) 등이 심해졌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속출했고, 지난 8월부터 이들의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환경연대가 지난 3월 발표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가 재조명됐다. 여성환경연대의 연구에 따르면 릴리안 생리대에서 독성이 포함된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TVOC)이 가장 많이 검출됐다.
 
당시 시험을 진행한 김만구 강원대 교수 연구팀은 국내 5개 제조사가 만든 10개 이상의 중형 일회용 생리대 제품 모두에서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물질 혹은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생식독성, 피부자극성 물질 등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유해성이 확인된 물질 8종 가운데 특히 스타이렌과 톨루엔은 생리 주기 이상 등 여성의 생식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식독성 물질”이라고 밝혔다.
 
릴리안 생리대 제조업체인 깨끗한나라는 “릴리안은 식약처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조되는 안전한 제품”이라는 안내와 함께 릴리안 생리대의 전체 성분을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공개된 성분은 사용된 원료 이름에 국한돼 생리대 속 유해물질 정보를 제공하진 못했다. 결국 깨끗한나라는 성분 공개 이틀 만에 ‘릴리안 전제품 환불’을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소비자의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법무법인 법정원은 ‘릴리안 생리대 피해자를 위한 소송준비 모임’ 카페를 개설해 집단소송에 나섰다. 8월 21일 개설된 이 카페의 11월 4일 기준 회원 수는 2만9418명이다. 카페 회원들은 “부작용인줄 모르고 있었는데 당했다”, “내 몸만 탓하고 있었는데 너무 억울하다”는 글을 올리며 부작용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늑장대응’이란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정부의 공식 대응은 8월 중순부터 나왔다. 식약처는 지난 8월 20일 릴리안 생리대 제품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고, 24일엔 릴리안 생리대의 제조사뿐 아니라 생리대 제조업체 5곳에 대한 긴급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8월 30일 브랜드와 제조사를 포함한 김만구 교수의 시험 결과에 대해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는 “상세한 시험방법 및 내용이 없고, 연구자 간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김만구 교수의 시험 결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유해성 논란이 지속돼 제조업체의 동의를 얻어 제품명을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의 시험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10개 제품 모두 국내 시장점유율 10위권 내에 있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릴리안’에 국한됐던 위해성 파문은 전체 생리대로 번졌고, 식약처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소비자 불안감이 확산됐다.
 
식약처의 허술한 위해평가, 여성 건강 이상 원인은 ‘오리무중’
김만구 교수의 ‘유해물질 검출 시험’은 생리대 속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밝혔을 뿐, 생리대의 어떤 성분이 여성들의 건강 이상을 일으켰는지를 밝히진 못했다. 김 교수의 시험에서 검출된 VOCs 이외의 물질이 원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주장하는 부작용의 ‘주범’을 밝히기 위해선 생리대 전수조사와 위해평가가 불가피했다. 여론에 힘입어 식약처의 전수조사와 위해평가가 진행됐지만, 식약처의 조사도 생리대와 여성들의 건강 이상 사이의 인과를 밝히기엔 부족했다. 식약처의 전수조사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10종의 VOCs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8일 “국민이 사용하는 생리대 가운데 안전성 측면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은 없다”던 식약처의 결과 발표가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식약처는 2014년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거나 수입된 666개 품목의 생리대와 팬티라이너를 대상으로 VOCs 검출시험과 인체 위해평가를 진행했다. 식약처는 총 84종의 VOCs 가운데 생식독성과 발암성 등 인체 위해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에틸벤젠 등 10종을 우선 검사했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모든 성분에 대한 위해평가 결과를 종합해서 발표해야 하겠지만 이 경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 위해성이 높은 성분부터 평가 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올해 말까지 나머지 74종의 VOCs에 대한 전수조사를, 내년 5월까지 농약류와 기타 화학물질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생리대를 하루 7.5개 씩 월 7일 평생 써도 안전하다”는 식약처의 발표는 결과적으로 모든 조사가 끝나는 내년 5월 이후로 미루는 게 타당해 보인다.
 
식약처가 인체에서 흡수율이 가장 높은 질 점막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조사를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식약처는 여성 외음부에 접촉하는 생리대의 위해성을 피부 흡수율로 계산했지만, “‘최악의 조건’을 가정하고 계산했기에 위해성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 존슨앤존슨의 ‘탈크 파동’을 보면 질 점막의 높은 흡수율이 위해성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존슨앤존슨의 베이비파우더에 포함된 탈크 성분은 피부에 바를 때와 달리 여성 외음부를 통해 체내에 들어갔을 때 난소암을 일으켰다. 존슨앤존슨은 지난 9월 난소암에 걸린 피해여성에게 약 4억17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불안감 커지는 여성들, 대체재 찾아 나서다
정부의 졸속 시험으로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자 대체품을 찾는 여성이 늘었다. 여성들이 주로 찾는 대체재는 유기농 생리대와 생리컵이다. 지난 10월 16일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페이스북 계정엔 ‘유기농 생리대와 생리컵 공동구매 안내문’이 올라왔다. 총여학생회는 안내문에서 “국내 생리대 위험성 증가로 인해 안전한 생리대 공동구매에 관한 요청이 많았다”며 “구매 요청이 가장 많이 들어온 유기농 생리대와 생리컵의 공동구매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체재를 원하는 여성은 많지만 문제는 가격과 접근성이다. 유기농 생리대는 국산품이든 수입품이든 일반 생리대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지난해엔 일반 생리대조차 살 수 없어 수건과 신발깔창을 이용했다는 저소득층 소녀들의 이야기로 사회가 떠들썩했다. 생리대의 안전성도 돈으로 사는 ‘계급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깔창 생리대’ 파문 당시 값비싼 일회용 생리대의 대체재로 주목받은 것이 생리컵이다. 의료용 실리콘이나 천연고무로 제작되는 생리컵은 반영구적이라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일회용 생리대에 비해 저렴하다. 하지만 생리컵은 아직까지 국내 유통판매 허가가 나지 않아 ‘해외 직구(직접구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총여학생회의 공동구매를 통해 생리컵을 마련한 경희대생 남경지(22) 씨는 “해외 직구가 번거로워서 생리컵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공동구매가 없었다면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리용품의 다양화는 여성 소비자들의 선택권 보장에 기여하지만, 안전검증이 없는 현실에선 ‘생리컵 위해성 파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리용품과 여성건강의 관계를 검증하는 시험 또는 기준이 전무했다는 사실은 여성건강에 대한 전지구적 무관심을 반증한다.
 
식약처 생리대 전성분표시제 약속했지만
결국 생리대 위해성 파동은 지난 10월 17일 식약처의 국정감사 현안으로 올랐다. 류영진 식약처장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식약처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생리대 파동 재발 방지를 위해 생리대 등의 용기나 포장에 허가증 및 신고증에 기재된 모든 성분의 명칭을 기재하도록 하는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의약품과 의약외품의 전 성분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 ‘약사법(올해 12월 3일 시행)’을 통과시켰다. 이때 생리대, 마스크, 붕대, 반창고 등은 제외됐다. 관련 업계와 정치권 등에서 “해당 제품의 성분은 직접 인체에 흡수되지 않는다. 전 성분을 표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가 생리대 전성분 표시제를 약속하긴 했지만 전성분 표시제가 재발 방지책은 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접촉 부위와 사용 방법 등에 따라 발생하는 수많은 ‘변수’ 때문에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아는 것만으론 위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1968년부터 1980년까지 탐폰을 사용한 여성들 가운데 813명이 독성 쇼크 증후군을 경험했고, 이 가운데 38명이 사망했다.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고분자 흡수체(폴리아크릴산나트륨)’는 일회용 생리대에 사용할 땐 문제가 없었지만 체내 삽입형 생리용품인 탐폰에 사용했을 땐 특정 박테리아의 번식을 일으켰다.
 
여성의 불안감을 잠재울 대안, 역학조사와 사전검증
대학원생 전선영(26) 씨는 이번 파동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국내외 전문가들의 동의를 얻은 표준적인 절차에 따른 전수조사와 위해평가”를 들었다. 공신력 있는 검사를 진행한 뒤 국민에게 결과를 공개하고, 기업들의 시정을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역학조사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여 년 간 피해자를 확산해 온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밝혀진 배경에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는 역학조사가 있었다. 식약처는 “환경부·질병관리본부 등과 협력하여 역학 조사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소비자단체들에선 “제대로 설계된 역학조사만이 생리대 사용으로 의심되는 건강 피해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다”며 역학 전문가, 환경보건 전문가, 젠더 전문가를 포함한 역학조사 진행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생리대 파동에서 정부는 “공인된 연구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소극적 대응으로 신뢰를 잃었다. 검증된 연구방법이 없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역학조사와 사전검증제도 마련에 힘써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환경연대 고금숙 팀장은 “제품이 시장에 판매되기 전 사전 위해도 평가나 전임상실험 등을 거쳐 문제가 될 소지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10여 년간 피해가 확산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왼쪽에서 다섯번째),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왼쪽 네번째)와 생리대 안전과 여성건강을 위한 행동네트워크 관계자들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생리대 유해성 관련 책임있는 국정감사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예람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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