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 삼은 영화를 보면 취조실 안 살인범 앞에 한 사람이 등장해 성적 치부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전까지 담담했던 살인범은 마치 비밀을 들킨 양 어쩔 줄 모르며 이성을 잃고 "네가 뭘 아느냐"며 덤벼든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강력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해 유의미한 진술을 이끌어내고 이들의 검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프로파일러(범죄분석요원)를 정확히 묘사한 장면이다.
현장에서 범죄 재구성
프로파일러는 각종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 및 범죄자의 행동 등을 분석하는 이른바 범죄자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 기법을 활용해 범죄자 유형, 수사 대상자 압축, 심문 전략 수립 등을 통해 수사팀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현장에 나가 범죄자가 어떻게 범행을 벌이고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범죄과정을 재구성해 용의자의 특성을 분석하며 범죄자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한다.
또 여러 연쇄살인·성폭행 사건을 분석한 범죄분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이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보다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돕는다. 경찰은 유영철·강호순 사건 등 사이코패스 연쇄 강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04년 7월 프로파일러 전신인 범죄분석팀을 설치·운영했고 2006년부터 심리학·사회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 46명을 특별채용해 각 지방청 범죄분석팀에 배치했다.
2016 경찰백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내 프로파일러는 총 29명이다. 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이 가장 많은 각각 3명을 보유했고 부산지방경찰청, 인천지방경찰청, 광주지방경찰청, 강원지방경찰청, 충남지방경찰청에 각각 2명이 몸담았다. 대구지방경찰청, 대전지방경찰청, 울산지방경찰청 등에서도 각각 1명의 프로파일러가 프로파일링 업무를 담당했다.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범죄분석담당관 관계자는 "현재는 인원이 늘어 전국적으로 총 35명의 프로파일러가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선 예측으로 거주지 식별도
프로파일러는 HTP(집·나무·사람검사, House·Tree·Persont)·MMPI(미네소타다면성인성검사, 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로샤(잉크반응검사, Rorschach)·PAI(성격검사, Personality Assessment Inventory) 등 다양한 심리검사를 활용해 피의자를 면담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범죄자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심리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동선을 예측해 사이코패스형 범죄자의 거주지를 추측하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GeoPros)과 같은 방식도 사용한다.
범죄 다발지역 분석, 수사대상자 분석, 사건 분석, 연쇄 범죄자 거주지 예측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범죄 다발지역 분석결과를 집중순찰 지역 선정, 범죄 위험 예측지역의 선정, CCTV 설치장소 선정 등에 활용하고 있다. 또 수사대상자 분석으로 범죄 발생지역에 거주하는 유사전과자 및 유사수법 범죄자를 검색해 형사활동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공간통계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연쇄범죄자 거주지 예측기능을 거쳐 중요 범죄자의 거점을 예측한다.
프로파일러마다 기법 달라
2005년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프로파일러마다 프로파일링 기법이 다르고 여러 가지가 있다. 가족 구성원의 생애를 재구성해 그 사람의 트라우마 등을 찾아내거나 현장 중심의 기법도 있다. 저 같은 경우 활동할 때 심층적인 가족관계도 등을 통해 단서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치밀한 수사 기법은 미궁에 빠진 사건 해결에 실마리가 됐다. 2006년부터 3년간 7명의 여성을 살해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강호순 검거가 대표적이다. 2009년 당시 프로파일러는 피해 여성들의 실종 장소와 시간 등을 토대로 범인 행동 특성을 파악해 범인이 경기 서남부지역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이며 차량을 이용해 범행하고 있다는 등 기초 분석 자료를 제시했고 곧바로 검거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2006년 사이코패스 살인범 정남규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2007년 6월 보령 여중생 실종 사건 수사 당시 참고인 진술의 허위성을 진단해 수사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범인 검거에 기여한 것도 프로파일러였다. 또 프로파일러는 2008년 1월 안양 초등학생 유괴 납치 살인 사건 당시 범행동기· 생활방식·범행 장소 등 범인 특성을 제시해 용의자에 대한 심층 면담으로 자백 유도했고 2012년 8월 대구 판암동 주공아파트 살인 사건 수사 때 범죄 행동 재구성 및 진술 분석 기법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수사를 지원했다.
국내 사이코패스 특성 한정 어려워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 범죄 최전선에서 사건 해결에 많이 이바지하고 있지만, 프로파일러를 통한 국내 사이코패스 범죄자 특성 파악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 사이코패스 범죄는 아무래도 가족이나 빈곤과 관련돼 있다. 하지만 가정 내 스트레스와 범죄가 연결돼 있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미흡한 부분이 있어 국내 사이코패스 범죄자 특성을 한정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경우 활발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런 부분을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프로파일러 이상경 경사가 지난해 5월22일 오전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의 심리분석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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