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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 패러다임을 바꾸자)②불법증여 수단으로 전락한 재형저축
ISA는 70% 이상이 깡통계좌…햇살론·사잇돌, 중금리 상품에 밀려 유명무실화
2017-10-26 06:00:00 2017-10-26 06:00:00
[뉴스토마토 김형석 기자] 과거 정부들이 취약계층과 서민들을 지원한다며 내놓은 정책금융 상품인 햇살론, 사잇돌 대출, 재형저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은 당초의 취지가 퇴색되거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보다는 기존 정책금융 상품을 일부 수정·보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대표적인 정책금융 상품은 재형저축이다. 박근혜정부는 서민과 중산층 재산 형성을 돕는다며 지난 1995년 폐지한 재형저축을 지난 2013년 3월 부활시켰다. 재형저축은 7년 동안 저축을 유지할 경우 4%가 넘는 우대 금리와 이자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보장한다. 가입자격은 근로소득 5000만원 이하 또는 사업소득 등 종합소득금액 3500만원 이하다.
 
하지만 가입 연령 제한이 없어 미성년자의 불법 증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만 19세 이하 고객의 재형저축 1계좌당 평균잔액은 2992만원으로 전체 계좌(152만개)의 계좌당 평균 잔액(760만원)보다 4배 가량 많았다.
 
특히, 이중에서는 1세 때 사업소득으로 가입해 3세인 현재 계좌잔액이 2000만원이 넘는 사례도 표함됐다. 4세때 사업소득으로 가입해 8세인 현재 잔액이 5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다.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형성이라는 기존 취지도 무색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재형저축 전체 계좌 중 잔액이 10만원 이하인 계좌는 전체의 23%에 달했다. 재형저축의 4개 중 1개는 깡통계좌인 것이다. 재형저축 해지도 빈번하다. 지난해 3월부터 올 8월까지 재형저축 계좌 중 18만9022개의 계좌가 해지됐다. 해지로 반환된 금액도 1조2574억원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가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대국민 재산늘리기 프로젝트로 추진했던 ISA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ISA 보유 상위 6개 은행의 계좌를 잔액별로 분석한 결과 전체 계좌 중 잔액이 10만원 이하가 73%를 차지했다. 이중 잔액 1만원 이하의 계좌도 51%에 달했다.
 
햇살론, 사잇돌 대출 등도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햇살론의 경우 정부가 중금리대출을 강조하면서 기존 중금리대출과 큰 차이가 없어졌다.
 
현재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이 햇살론 금리 상한선(각각 연 7.27%·연 9.07% 이내)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중금리대출 금리(연 5~6%)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취약계층 처지에서는 햇살론을 신청하기 보다인터넷전문은행에서 손쉽고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허술한 심사를 악용한 사기도 발각됐다. 경찰은 최근 문서 위조 등 혐의로 대부중개업자 김모(39)씨 3명을 구속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대출금 상환을 담보하는 햇살론의 특성상 은행 대출심사가 형식적이라는 점을 노려 모집책, 위조책 등 역할을 분담해 대출 사기를 저질렀다. 이들이 정부로부터 대출받은 금액은 15차례에 걸쳐 1억8800만원에 달했다.
 
사잇돌 대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6월 사잇돌대출 확대를 위해 일부 상호금융기관에서 취급하기 시작했지만 호응을 받지 못했다. 사잇돌대출은 상환여력에 따라 1인당 최대 2000만원 한도로 빌릴 수 있는 반면, 기존에 판매되던 상호금융기관의 중금리대출은 최대한도가 4000만원으로 2배 가량 높다. 금리의 경우 사잇돌대출은 연 6~14%인데 반해 절반 수준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승인율도 지나치게 낮다. 저축은행의 사잇돌대출 승인율은 30.6%에 불과했다. 대출 발급 시 신용등급이 평균 1.7등급 하락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정부가 사잇돌대출 자격을 최근 확대하고 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라며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금융 상품의 경우 이들 취약계층이 최대한 대출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근본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으며, 취약계층별 세분화한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김형석 기자 khs8404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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