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이카로스의 종말
입력 : 2017-09-26 06:00:00 수정 : 2017-09-26 06:00:00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이 있다. 빅토르 위고는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이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역사학자 샤를르 피노 뒤클로스(Charles Pinot Duclos)는 “정직은 가난한 자들의 선이고, 선은 부자들의 정직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성경과 대문호, 그리고 역사학자는 왜 부자들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일까.
 
지난 21일 전세계 여성 중 제1의 부자로 꼽히는 프랑스 로레알(L'Oreal) 그룹 릴리안 베땅꾸르(Liliane Bettencourt)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 앞에 남은 것은 오명뿐이었다. 지난 달 말 생을 마감했던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 미레이유 다르크(Mireille Darc)가 프랑스인들을 슬픔에 빠지게 했던 것과는 꽤 다른 풍경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에 의하면 베땅꾸르의 재산은 330억유로(한화 약 45조원)로 세계 부호 랭킹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의 재산은 우리나라 제1의 부자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13조원)보다 약 3.5배, 이재용 부회장(4조6000억원)보다 무려 10배 더 많다.
 
릴리안 베땅쿠르라는 이름은 자연스레 화장품의 제국을 연상시키고 프랑스에서 거부가 된 성공신화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2007년 12월19일 베땅꾸르 회장의 외동딸 프랑수아즈 메이에르가 “심신이 취약한 베땅꾸르를 이용했다”며 어머니의 측근들을 고소했다. 특히 심복이자 사진작가인 프랑수아-마리 바니에는 베땅쿠르의 ‘허약한 상태를 남용’해 10억유로(약 1조3600억원) 상당의 자산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 법정 공방을 벌였고 로레알 그룹은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2010년 6월16일 인터넷신문 메디아빠르트(Mediapart)는 릴리안 베땅꾸르의 자택에서 그녀의 주방장 파스칼 보네포이(Pascal Bonnefoy)가 비밀리에 녹음한 파일을 공개해 또 한 번의 스캔들을 터뜨렸다. 그 파일에는 정치적 개입과 탈세 혐의가 담겨져 있었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7년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캠프 회계담당자였던 에릭 웨르쓰(Eric Woerth)가 현금 15만유로(약 2억358만원)를 받은 정황이 들어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파일은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고 프랑스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됐다. 이 사건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대선 자금에 관한 의심에 불을 질렀고 그가 끊임없는 법적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사르코지 대통령과 웨르쓰 예산담당 장관에게 흙탕물을 끼얹는 대형 스캔들이 됐고 베땅꾸르는 불명예의 화신이 되었다. 결국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3년 ‘허약자의 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결과는 기각이었지만 혐의에 대한 의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때부터 베땅꾸르라는 이름은 스캔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돼 버렸다.
 
베땅꾸르 스캔들은 한국의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의 스캔들과 오묘하게 닮아 있다. 전세계 여자부호 1호인 베땅꾸르가 정경유착으로 오명을 쓴 것처럼 이재용 부회장 또한 부패한 전 정권에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다. 삼성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말을 사주고 독일의 승마훈련 등을 지원하는데 들어간 돈은 77억원에 달한다. 베땅꾸르가 사르코지에게 준 것으로 추정되는 돈의 30배가 넘는다.
 
현재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64억원 횡령 혐의를 인정했지만 법정 싸움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의 위신은 이미 세계적으로 실추되었다. 추락하는 이카로스처럼 말이다.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촘촘하게 붙인 날개였기에 태양열을 조심해야 했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에 자만해진 이카로스는 더욱 높이 태양 가까이 올라 결국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마는 슬픈 전설이다.
 
세계 여성 중 재산을 가장 많이 가진 베땅꾸르 회장의 싸늘한 종말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치소행을 바라보며 우리는 인생에 있어 돈이 주는 의미가 결코 결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불경기에 힘이 빠지고 돈에 허덕이는 우리 서민들은 결코 잘 못 살아 온 것이 아니다. 단지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병폐에 희생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부자가 못 되었다고 자기 인생을 자책하지도 말고 학대할 필요도 없다. 부패한 부자들보다 정직한 서민이 더 떳떳하고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송이의 꽃을 위한 10개의 가시’에서 프랑스 작가 아돌프 두데토(Adolphe d‘Houdetot)는 “가난한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어떤 부자들에게는 오히려 적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고 했다.
 
경제적 부를 제일로 치는 자본주의 병폐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정직이다. 뒤클로스의 말처럼 정직은 가난한 자들의 선이고, 선은 부자들의 정직이어야 한다. 이를 우리 모두 되새길 수 있는 훈훈한 한가위를 맞이했으면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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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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