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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국민 봉사가 임무인데 근무시간이 따로 있나요”
10년 장애인 ‘목욕봉사’로 서울시복지대상 받아…“남은 여생 봉사 활동 집중하고파”
“나는 2년 뒤 퇴직하지만 후배들 국가직 꼭 전환됐으면”
2017-09-14 06:00:00 2017-09-14 15:47:50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라문석(58) 소방위는 지난 30년간 현장을 떠난 적 없는 베테랑 소방관이다. 현재 서울 강북소방서 화재진압대장으로 근무 중이다. 라씨는 근무가 없는 날엔 어김없이 목욕봉사에 나선다. 서울중랑소방서 근무 당시 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목욕봉사도 횟수로 10년을 맞았다. 지금까지 라 소방위가 한 목욕봉사 횟수는 632회. 시간으로 환산하면 2432시간에 달한다. 서울시는 그런 라 소방위를 올해의 서울시 복지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라 소방위가 업무나 생활과 관련해 후배들에게 늘 조언하는 것은 봉사하는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다.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국민을 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늦게나마 소방관들 처우가 나아지고 있지만 라 소방위는 소방공무원들의 국가직 전환과 인력 충원을 소망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국민 역시 보다 나은 소방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목욕봉사 한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4~5년간은 성북구 길음종합사회복지관에서 봉사했다. 당시 복지관에 목욕차량이 있었는데, 선배 권유로 시작해 지금까지 하고 있다. 틈틈이 장애인 국토순례에도 참여했다.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분들을 모시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는 노원구청에서 만난 방문간호사들과 주변에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목욕봉사를 병행했다. 지금은 목욕봉사에 더 집중하려고 일주일에 3분 정도 찾아 뵙고 있다.
 
힘들거나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나.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몇 년간은 목욕봉사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있었다. 전날 화재 진압하고 녹초가 됐는데도 다음날 비번에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미 그분 약속한 걸 어떻게 하겠나. 또 힘들 때마다 목욕봉사를 처음 소개해준 선배가 끝까지 잡아줬다. 선배는 이미 7년 전에 퇴임하셨지만 늘 ‘라 후배, 복 많이 받을 거야. 자기가 안 받으면 자기 아들이라도 받을 거야’라고 격려해줬다. 아들도 3년 전부터 서울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힘들다기 보다 오히려 봉사를 통해 활력을 얻는다.
 
봉사생활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30대 초반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로 몸이 불편한 남성분이 있었다. 집에만 누워 있었는데, 목욕을 시켜드린 적이 있다. 당시 그분이 목욕을 마치고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목욕을
했다’고 한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내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하던 목욕이 누군가에게는 이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또 한 분은 일주일 후 다시 목욕을 시켜드리고 연락을 드렸더니 보호자가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가 있었다. 알고보니 그 사이 돌아가셨다. 그럴 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목욕봉사는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소방관은 국민에게 생활안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업무 때는 당연히 봉사 하는 거고 비번일 때는 목욕봉사를 하는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10년 가까이 해드린 분도 있다. 이미 그분들에게는 내가 기다려지는 존재가 돼 버렸다. 2년 후면 퇴직인데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 중이다. 고향에 내려갈까도 생각 중인데 만약 서울에 남아있게 된다면 더 많은 분에게 목욕봉사를 하고 싶다. 특별히 제2의 직업을 구하지 않으면 여생을 봉사활동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오히려 지금은 나를 위해 봉사를 하는 것 같다. 봉사를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할 정도다.
 
서울 강북소방서 라문석 화재진압대장(왼쪽)이 지난 2011년 서울 강북구 수유 3동에서 발생한 노래방 화재를 진압한 후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진/강북소방서
 
요즘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은 어떤가.
 
지방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서울은 시설적인 면에서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 개인장비 지급도 만족스럽다. 예전에는 개인장비라는 개념이 없었다. 장비가 보급되면 두세 사람이 같이 쓰는 경우가 빈번했다. 지금은 안 그렇다. 종종 언론에 소방관 안전장갑이나 개인 방화복이 부족하다고도 소개되던데 일부 시골의 경우는 그럴 수 있지만 서울은 다르다. 지금 근무하는 후배들은 70~80%는 만족해한다.
 
정부가 소방관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30년 가까이 소방관으로 근무했지만, 대통령의 그런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너무 감사하다. 어찌 보면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선배 소방관들이 묵묵히 일 해 오셨기 때문에 저나 우리 후배 소방관들도 좀 더 나은근무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거라고본다. 과거에는 소방관 하면 3D직종이라고들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화재진압 한번 나가면 화상 입는게 비일비재했고, 일도 고되다 보니많이들 시험을 보고 일반직으로 옮겼다. 지금은 시민의식도 나날이 높아져서 소방관들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다. 또 과거보다 현장에 출동하면 통로 확보도잘되는 편이다. 과태료권이 있지만 양보위반 차량을 적발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개선이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큰 부분은 인력이다. 인력이 확보돼야 어느 정도의 현장 출동도 이끌어 나갈 수 있다. 현재 3교대 시스템에서의 인력도 적정 수준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원이 생기면 누군가는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일종의 희망근무라고 해서 지원을 받지만 결국엔 비번인 사람이 나오는 상황이다. 악순환이다. 응급과 비응급 환자에 대한 대응체계 마련도 절실하다. 지금은 웬만한 비응급 신고는 다 출동한다. 전체 접수된 신고 중 나중에 비율을 따져보니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가 2대 8정도다. 전화상으로 응급과 비응급을 구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접수가 들어오면 무조건 나간다. 문제는 응급차와 인력이 한정돼 있어 정말 시급한 응급 환자에게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 노안이나 단순 내원환자도 병원까지 태워다드린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편하고 좋을 순 있지만 그로 인해 정작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지난 6일 오후 라문석 소방관이 본인의 개인장비를 착용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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