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에서 불평등을 묻다)⑪'작은 형제들(Chiquitanos)'과 공유가치성장
입력 : 2017-07-07 07:00:00 수정 : 2017-07-07 07:00:00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동시에 세계 어느 곳도 부럽지 않은 3개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3개의 영혼이란 20세기 청년들의 로망이 된 체 게바라, 300년 전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보편적 사랑의 이상을 품고 과라니족과 치키타노족 속으로 들어간 예수회 신부들, 티티카카 호수 가운데 태양의 섬에서 태어난 잉카문명이다.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의 정신적 가치를 품고 있는 나라는 찾기는 쉽지 않다.
 
놀라운 점은 이것들이 민족주의나 특정한 지역만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보편주의와 세계주의의 이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는 개별 국가의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적 인류의 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볼리비아는 가난하고 라틴 아메리카 한가운데에 위치해 사방이 가로막힌 내륙국이지만 그 정신은 세계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체 게바라와 예수회 모두 보편적인 정신을 갖고 볼리비아로 찾아 들었다. 잉카는 볼리비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문명이라는 시원적 질문을 인류에게 던지고 있다.
 
일국주의를 넘어 세계혁명을 꿈꾼 체게바라
 
체 게바라는 청년들에게 21세기의 영원한 자유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간 수많은 혁명가와 영웅들이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어떻게 청년들의 가슴을 울리는 자유의 로망을 꿈꾸게 했을까. 다국적 기업 스타벅스에서는 체 게바라를 마케팅에 활용한 상품을 출시했고, 젊은이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체 게바라를 추억하고 동경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체 게바라는 다국적 기업이라는 자본과 일국주의를 넘어서는 세계혁명을 꿈꾸었다.
 
볼리비아 바예그란데 지역 이게라 마을에 있는 체 게바라의 흉상. 이곳은 세계의 청년들이 라틴 아메리카로 여행하면서 우유니 소금사막만큼이나 찾고 싶어 하는, 체 게바라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사진/임채원 선임연구원
 
그의 삶과 정신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정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은 세계주의의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였다. 지금의 청년들은 휴학을 해서라도 세계 일주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는 그와 같은 로망을 가장 선명하게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부보다는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했고, 라틴 아메리카를 오토바이로 종주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20살의 이 청년은 남미의 끝인 칠레에서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를 지나 멕시코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 당시 갓 23살의 청년이었던 체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라틴아메리카를 오토바이로 종주한다. 이때 방랑여행은 나중에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금 볼리비아 이게라에 있는 체 게바라의 기념관에는 당시 종주를 영화로 만들 때 배우가 입었던 옷도 전시되어 있다.
 
이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곳이 바로 볼리비아의 포토시(Potoci)였다. 체 게바라는 해발 4000m가 넘는 포토시 광산 노동자들이 겪는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삶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1548년에 포토시 은광이 개발된 후 노동자들은 400년간 수탈당하고 있었다. 포토시에는 은광 개발을 위한 지하 갱도가 여기저기 뚫려 있고, 노동자들은 1000m 아래까지 내려가서 작업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부터 노동자들은 힘겨운 노동을 견디기 위해 코카잎을 가성소다와 함께 씹고 있었다. 코카잎이 주는 각성효과로 중노동을 견딘 노동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낙은 금요일 저녁에 값싼 증류주를 한잔 마시고 '보라쵸(borracho)'가 되는 것이다. 보라쵸는 우리나라 말로는 '취하다'는 뜻이다. 체 게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