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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업무상 재해 판단 시 내성적 성격 등 고려해야"
근로복지공단 상대 소송 상고심서 원심 파기 환송
2017-06-18 09:00:00 2017-06-18 09: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기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 스트레스 외에도 내성적 성격도 고려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울증 발현과 발전 경위에 망인의 유서 내용, 자살 과정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보면 망인은 우울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비록 망인이 다른 지점장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한 업무를 수행했다거나 이 사건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질책을 받는 등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했던 것이 아니어서 업무상 스트레스란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한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남편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자 업무상 스트레스로 중증의 우울 증세로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우울증은 인정되나, 통상 업무를 초월해 자살에 이를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보기 어려워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고, 이에 A씨가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B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B씨가 20년 이상 회사에 근무했고, 다른 지점장으로 약 2년 6개월간 수행한 경험이 있어 해당 업무와 근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것으로 보이고, 특별히 가혹한 환경에서 근무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B씨가 사망할 무렵까지 신체적·정신적으로 뚜렷한 이상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고, 사건 당일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해 오전 업무를 수행했던 점, 사망 당시에 불안감, 우울감 등의 증상이 동반됐을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심신상실 혹은 정신착란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의학적 소견이 제시된 점 등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추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B씨는 지점장으로 근무한 지 4개월여 만에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 등을 진단받고, 정신과 상담 과정에서 자살 가능성을 언급한 지 10일 만에 사망했다"며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로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를 겪었고, 스스로 치료를 받았음에도 계속된 업무상 부담으로 중압감을 느껴 증세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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