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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민주권적 개헌으로 새로운 100년을
2017-06-13 07:00:00 2017-06-13 07:00:00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2019년 4월13일은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제국의 군주제 국가에서 공화정체로 이행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2년 뒤 있을 이 날을 준비하고 새로운 100년을 대비해야 한다. 프랑스는 시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에펠탑을 세웠고, 미국은 독립 100주년을 맞아 자유의 여신상을 올렸다. 우리도 2년 동안 국민적 합의를 거쳐 후세와 세계 시민들에게 동아시아 공화정체 100주년을 축하할 기념비를 세우자. 조급증에 얽매인 날림 공사보다는 차분하게 국민적 합의를 거쳐 세계 시민과 후손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해줄 것인지 숙고해 결정하자. 이것이 촛불혁명을 주도한 성숙한 시민들의 모습일 것이다.
 
지난 100년간 동아시아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이행하고 시민적 공화주의를 성숙시켜 온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1900년대 일본은 입헌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에 공화정체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중국은 1912년 신해혁명으로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공화정체를 모색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국 대통령제와 영국 내각제에 대한 논쟁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권력투쟁을 전개했다. 손문(孫文)과 송교인(宋敎仁)이 이견을 보인 결과, 중국은 대통령제인 총통제와 내각제인 국무원제도를 혼합한 권력구조를 만들었다. '손문헌법'에는 우리나라에 여전히 남아있는 국무총리와 국무회의가 최초로 등장한다. 상해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제1차 헌법 개정 때 국무총리와 국무원 제도를 그대로 수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에도 국무총리의 국정 통할권과 국무회의의 심의권으로 그 원형이 그대로 전해진다. 100년이 지난 뒤에도 군주제에서 공화제로의 이행과정에 나타난 헌법정신과 제도가 계승된 국정운영 모델은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 민주주의에 자랑할 '고래의 헌정(Ancient constitution)'이다.
 
그리고 다시 이 나라의 헌정은 2017년 촛불혁명 이후 6월항쟁 30주년을 넘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예정에 두고 있다. 이번 헌법 개정은 그간 9차례의 개헌과는 과정과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새 헌법은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성으로써 국민주권적 개헌으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 개헌은 정치 지도자나 정당의 합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개헌 내용의 합의 과정에 국민 참여는 생략됐고, 국민들은 투표에서 찬반만 기표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이번 개헌은 촛불혁명을 거친 까닭에, 그 과정에 국민의 참여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2010년 이후 개헌을 한 대표적인 나라는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루마니아 등이다. 이들의 개헌은 모두 국민참여 방식이었다. 내용도 권력구조가 아니라, 기본권과 환경권 등 새로운 헌법적 쟁점이 중심이 됐다. 급격한 권력구조의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새 권력구조로의 개편으로 치러야 할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염려였다. 이들의 개헌에서 주목할 것은 내용보다 오히려 과정이다. 아일랜드 등에서는 헌법 개정이 국회의원보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진행됐다. 국민주권주의 핵심가치를 이행했다. 먼저 100여명의 유권자로 구성된 시민의회가 결성되고 여러 헌법적 쟁점들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은 후 개정할 내용을 논의했다. 이후 개헌안으로 확정하는 헌법회의가 만들어지는데, 100명의 구성원은 1명의 대법관과 33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추첨에 뽑힌 66명의 시민으로 채워졌다. 3분의 2를 차지하는 보통 유권자들은 개헌과정에서 기존 정치인들을 견제했다.
 
2018년 우리나라의 개헌도 이와 같은 국민주권적 절차가 예고되어 있다. 대통령은 이를 공약으로 약속했다. 개헌 준비 차원에서 하반기에는 정부에서 개헌추진기구가 구성되고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국민참여 개헌논의기구가 설치될 것이다. 이 기구가 국민의견 수렴, 관련 부처 의견,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개헌안을 작성하고 이에 부수되는 각종 법적 쟁점에 대한 검토를 시작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들러리가 되지 않고 국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밀레니엄시대에 세계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첫번째 과정이다.
 
새 헌법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자.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을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으로 분명히 명시하자. 국민주권적 헌법으로 이 정신이 분명히 담겨야 광화문의 주권자 민주주의는 세계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자리할 것이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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