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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다수가 함께 하는 상상과 참여’…배제 없는 ‘포용국가’ 시대로
성경륭 민주당 포용국가위원장 “대화 플랫폼에서 포용과 혁신의 상호작용”
CSR평가 통한 기업 세금 차등화 등 ‘박정희 모델’ 극복 청사진 설계·제안
2017-04-24 08:00:00 2017-04-24 08:00:00
참여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지낸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캠프의 포용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근 10년 만에 현실정치로 돌아왔다. 성 위원장은 포용국가위원회의 기능을 “직접적 현실정치 참여라기보다는 ‘정책’ 기획 및 제안 성격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현실 여건 상 대선 자체를 무시할 수 없지만 ‘대선’과 함께 ‘대선 후’에 필요한 정부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에도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청사진은 한 마디로 포용국가이다. 성 위원장을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포용국가위원회 구상의 배경은 무엇인가
작년 기준 대한민국의 GDP는 세계 11위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근접했다. 말하자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불행하다. 삶 만족도, 자살률, 노인 빈곤율 등 상당히 많은 지표에서 대한민국은 부정적 측면으로 최상위권이다.
 
경제는 성공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이토록 무너져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뜻이 통하는 사람들과 모여 통합적 사회경제모델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찰나 탄핵국면을 맞고 조기대선이 시작됐다. 위원회를 출범시킨다면 우리의 생각을 보다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포용국가위원회가 탄생했다.
 
한동안 현실정치에서 발을 뗀 것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여태까지 정치영역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끊임없이 정책과제를 고민했고, 많은 사람들과 토론했다. 새로운 정책 설계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책설계 중심의 포용국가위원회와 선거 캠프 간에 혼선은 없는가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이후 모든 상황이 급히 돌아갔다. 캠프의 공약 연구자들과 협의할 시간이 다소 부족했다. 포용국가위원회는 개별 공약이 아니라 사상체계, 혹은 시스템 등 청사진을 그리는 기구이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정책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구성하거나 사회적 프로세스를 만들어 체계화한 사례가 그리 많지 않다. 대선까지 시간이 굉장히 촉박하지만 사회의 핵심적인 고민거리를 놓고 대화와 토론을 거듭하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구 시대의 사회 모델이 종말을 고했다고 판단한다.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구체화하는 첫 걸음을 뗀 만큼 이 걸음은 대선 이후로 이어질 것이다.
 
핵심으로 들어가서, 포용국가론은 무엇인가
포용이 안 된 상태, 즉 배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배제는 여러 차원에서 발생한다. 우선 정치가 그렇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 형식을 취한다. 선거 당선자에게 수많은 권력을 집중시킨다. 민주주의의 외양 아래 소수가 다수를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지배하는 체제다. 선거 말고는 국민이 정치참여로부터 배제 당한 상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소유 배제, 임금 배제, 고용 배제, 복지서비스 배제가 우리사회에 만연하다. 불평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포용 이전에 다수를 배제하는 국가 형태를 갖춰버린 것이다. 국민이 민주주의의 주인이자 주권자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표방 아래 배제와 독점의 논리가 만연하다.
 
다수에게 고통을 양산하는 구조를 뜯어 고쳐서 포용성을 향해 전진하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의미에서 끊임없이 정치 포용성을 확대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 약자들의 고용을 촉진하고, 변화한 복지 제도와 개선된 임금 분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스레 다수가 사회경제영역의 주권자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제대로 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포용 국가론이다.
 
‘배제 국가’의 시원은 박정희 모델인가
전쟁이 끝나면 평준화 효과(leveling effect)가 발생한다. 기존의 불평등을 포함한 모든 게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정부는 성장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시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경제 모델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박정희는 만주국 장교 등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하고 집권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채택했다. 소위 위로부터의 산업화, 즉 강력한 국가가 힘을 가진 채 위로부터 끌고 가는 동원형 축적 체계를 택한 것이다. 결국 지도자의 과거 경험과 권력 본능, 한국의 고속 성장과 경제자립을 필요로 했던 미국 고문단의 권고에서 비롯된 판단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선택이 단기적인 빠른 성장을 보인다 한들, 대재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관료와 결탁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약탈경제체제를 만들기 마련이다.
 
박정희 식 경제모델이 결국 1997년 외환위기로 이어진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개혁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정권이 바뀌며 우리는 다시 박정희 시대로 회귀했다. 국정운영철학이 반세기전 박정희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은 그 체제가 얼마나 비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버지가 키운 재벌들을 상대로 박 전 대통령은 권력을 남발하지 않았나. 참담하였지만 반면교사로서 좋은 교훈이었다. 우리 국민이 새로운 방향에 대해 고민을 이어갈 계기가 될 것이다.
 
‘포용 정치’부터 설명하면
우리 사회 모든 영역의 주권자는 곧 국민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국민을 배제한다. 달리 말하면 박정희식 고도성장을 통해 신계급사회, 즉 새로운 카스트 체제가 등장하고 있다. ‘상속자본주의’가 고착되면, 이를 탈피할 방법이 없다. 배제를 벗어나 포용으로 향할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포용적 정치가 실현돼야 한다. 국민이 선거철 외에도 상시적으로 의견을 제안하고 투표할 수 있는 ‘OtoO 플랫폼’(online to offline platform)에 기반한 융합적 민주주의 체계를 갖춰야 한다.
 
IT민주주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가늠할 수 있고, 예비 선거를 통한 의견 수렴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상대집단을 향한 적대성이 너무 강한 탓에 이념 및 정파 영역 간의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대 간의 단절이 생겼고, 지역감정 또한 완벽히 해소되지 못하였다. 대통령제와 양당제를 비롯한 대한민국 정치의 제도적 특징, 그리고 특정 집단의 독점 구조로부터 비롯된 문제다.
 
매번 반복되는 상호 대립, 적대감 표출, 분열 조장으로 참다운 대화가 이루어지질 않는다. 공동의 결과를 끌어내려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정당성을 확보하는 근거로서 형식적인 대화의 모습만을 반복했기에 당연한 결과다. 악순환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차이의 인정과 대화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 즉 변증법적 대화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에 도달한다면, 모두가 만족하고 사회의 공익에도 기여할 수 있는 훨씬 높은 수준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원효의 화쟁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대화를 하되 각자의 주장보다 더 나은 결론을 통해 모든 논쟁을 화합으로 바꾸는 것이다. 만연한 적대관계를 넘어 설 수 있는 사상적인 힘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정치라는 것은 대결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국익을 위해 타협하고 대화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포용 정치에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포용적 리더십이 아주 중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설사 적대세력의 음해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도량과 품성의 역량을 지닌 이가 지도자로 선출돼야 한다. 포용국가의 출발은 여기서 비롯된다.
 
힘이 비슷한 이들은 늘 서로를 의심한다. 대화에 앞서 이용과 배신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딜레마 게임에 빠진다. 그래서 안 좋은 결과를 양산한다. 소통이 안 되니 의심과 배신을 반복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포용적 리더십이다. 처음엔 의심이 반복될지라도, 누군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다면 신뢰의 프로세스가 탄생할 수 있다. 신뢰는 협력을 만들고, 훌륭한 사회 자본을 만들 수 있다. 포용은 힘세고 가진 자, 또는 먼저 깨닫고 먼저 마음을 여는 자가 하는 것이다. 포용적 지도자를 바탕으로 정치원로, 사회의 주요 집단들 간의 정책 포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포용국가론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설명하는데
포용의 프로세스를 발전시켜야 한다. IT혁명, 4차 산업이 대한민국을 구원할 것이라 하는데, 그보다 훨씬 큰 성장 동력은 바로 포용국가론이다. 과거와 다른 방식이다. 각자의 주장과 개성, 이념에 따라 사는 건 좋지만 언제나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가 가보지 못한 영역을 향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반대 의견 역시 훌륭한 지적 자극이 될 수 있다. 극단적 주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면 절대로 공동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개별적 이익 획득과 국가 발전의 측면에서도 불신과 적대에 사로잡힌 과거를 뛰어넘어야 한다. 우리는 벌써 적대관계 대립으로 인한 많은 폐단을 경험했다.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중무장하는 과정에서 오는 손실이 막대하다. 대화의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과거 어떤 사례보다 강력하고 위대한 모델이 될 수 있다. 공동체의 탄생은 개인이 부딪힐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엄청난 혁신의 에너지는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문제다.
 
현실로 재벌 문제가 심각한데, 이것도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겠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들은 상속자본주의의 형태를 보인다. 누적된 현상이란 뜻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기간, 즉 플로(Flow)의 성과배분은 대화로 해결하기 쉽지만, 소위 ‘적폐’로도 지목될 수 있는 전체 기간의 누적현상(Stock)에 대해서는 대화로 풀기가 어렵다. 북한의 3대 세습이 대표적이다. 자산과 소유의 불평등, 그리고 이를 통해 반복되는 원천적 계급의 분화는 앞으로도 인류가 풀어나가야 할 주요 당면 과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자산 불평등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 기업의 순환 출자와 같은 독과점 구조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재벌과의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지배, 약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누군가는 갑을관계에 따라 가만히 앉아서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다. 을의 입장에서는 납품단가 자체를 약탈당했기 때문에 정규직 고용이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 역시 이러한 구조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줄줄이 연결된 문제를 해결할 핵심은 재벌의 시장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고용이나 임금체계 개선 실적에 따라 법인세 경감 혜택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CSR평가에 따른 기업 세금 차등화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평가지표를 중심으로 기업을 평가하여 변화를 추동한다면 독과점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자발적인 참여만을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입법을 통해 정책적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재벌 개혁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이 따르지 않나
그렇다. 이른바 금권지배정치(plutocracy)로 불릴 정도로 기업이 비대해진 상태에서 제어와 개혁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독과점은 분명한 독이다. 사유재산제도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시장경제체제를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소유구조를 바꿀 수 있다. 미국은 대공황의 혼란 속에서도 여러 독과점 기업의 분리 명령을 내렸다. 우리도 할 일이 많다. 단지 선택의 문제다. 현 시스템을 유지하며 조금씩 개선하는 성장을 추구할 것인지, 새로운 체계와 질서를 만들어 시장을 재구성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포용국가위원회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포용과 혁신을 적절히 접합시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소수의 상상이 아닌 ‘다수가 함께 하는 상상’과 다수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인적 자원이 굉장히 우수한 나라다. 하지만 뛰어난 잠재력에 비해 안타깝게도 교육의 질은 낮다.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교육체계의 개선 또한 중요하다. 양적 수준의 향상이 아닌, 질적 수준의 향상이 필요하다. 단순 암기식 교육을 버리고 대화와 토론을 통한 포용의 개념이 다음 세대의 기본 소양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대화를 플랫폼으로 한 포용과 혁신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정책을 연구하고 제안할 것이다. 비록 지금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곧 지속가능한 사회 구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성경륭 민주당 포용국가위원장은 대선 이후 포용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KSRN
김태경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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