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아무나 출마하는 대선 안 돼
입력 : 2017-03-21 06:00:00 수정 : 2017-03-21 06:00:00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19대 대선이 오는 5월9일 치러지게 됐다. 언론은 이번 선거를 ‘장미대선’이라 이름 붙이며 흥행몰이에 나서고 있지만 뒤숭숭한 정국은 화려한 장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예상 밖의 조기대선에 후보 경쟁력 문제도 눈에 밟힌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그런대로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TV토론에서 전혀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에도 토론은 유권자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하고 그저 선거철마다 벌어지는 액세서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한 낭비이자 공해임이 분명하다.
 
특히 자유한국당 경선은 참으로 가관이다. 참회를 해야 할 그들이 반성은커녕 다수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총 9명의 후보가 등록해 15분간 공약 발표를 한 후 여론조사로 3명을 탈락시켰다. 탈락자들의 경우 1분 연설하는데 700만원이 넘는다는 계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나머지 6명이 남아 TV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들어볼 말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박근혜를 아웃시켰으니 이번에야말로 멋진 리더를 뽑아야 할 판인데 선거판은 구태하기 그지없고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누가 난세의 영웅이 될 것인가. 우리를 구해줄 영웅은 과연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다. 국정농단의 주역이었던 박 전 대통령을 퇴진시키기 위해 지난겨울 1500만 명의 시민이 광장으로 나와 추운 날씨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한국당의 김진태 의원은 “촛불은 꺼지게 되어 있다”면서 촛불혁명을 짓밟고 폄훼했다. 이런 김 의원마저 대통령이 되겠다고 후보로 나서는 선거상황을 지켜보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란 무엇인지 새삼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든 원하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인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자유의 엄중함을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그런데 김 의원의 자유에는 왜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인가?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므로 대선에 자유로이 입후보 할 수 있다면 이 자유는 궤변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인가.
 
프랑스 공화국의 신조는 그 유명한 “자유, 평등, 박애”다. 이 신조는 1958년에 제정된 프랑스 헌법 제2조에 등장했다. 자유와 평등은 1789년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조의 원칙이었으며 여기에 1948년 형제애를 덧붙였다. 사실 이 세 단어가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에서였고, 1848년 프랑스 제2공화국에서 처음으로 공식 채택했었다. 이렇게 자유를 국가의 신조로 삼아 오랜 역사를 거쳐 온 프랑스에서 조차 자유는 때때로 큰 제약을 받는다.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받는 자유의 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대선은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뽑는 만큼 엄격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의 피선거권 요건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한국보다 더 자유로울지 모른다. 후보자는 꼭 프랑스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와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에서는 한 정치인이 어느 날 길몽을 꾸었다고 바로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 수 없다.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101개 데파르트망(departement, 우리의 도) 중 30곳에서 500명(상·하원의원, 유럽의원, 지방의회의원, 시장 등)의 추천을 받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추천인은 직접 추천서를 써 헌법재판소에 우편으로 보내야 하고 단 한 명만 추천할 수 있다. 이러한 장치는 1976년 프랑스 제 5공화국 쇄신의 일환으로 대선 주자들의 경쟁력을 필터링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오는 4월23일 1차 선거를 치르는 프랑스 대선 후보들은 지난 2월24일부터 3월17일 오후 6시까지 추천인들을 모았다. 추천인들은 특정 후보를 추천하는 추천서를 직접 헌법재판소에 보냈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추천인들의 적격 여부를 심사하고, 대선 후보들 자신이 신고한 재산을 확인한 후 3월20일 관보에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몇 명의 유명 정치인들에게는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지만, 그렇지 못한 정치인들에겐 무척 어렵고 긴 여정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500명의 추천인 조건을 채우지 못해 대권을 포기한 정치인은 족히 10명이 넘는다.
 
선거 문화는 각 나라별로 다르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대선 문화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은 감히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번 ‘장미선거’에 우후죽순으로 등장해 향기가 아닌 악취를 풍기는 후보들을 보면서 한국 대선에도 필터링 장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부활을 위해 촛불을 든 사람들을 능멸하고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파면을 ‘마녀사냥’이라며,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고 몽니를 부리던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는 현실 앞에 많은 유권자들의 가슴은 무너진다. 다음 대선부터는 한국 대통령이 되고 싶어 도전장을 내미는 후보들의 자격 요건을 좀 더 강화하는 법적장치를 마련하라고 감히 조언하고 싶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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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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