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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감독 "영화 '재심'은 진정한 데뷔작품"
2017-02-09 13:07:36 2017-02-09 13:36:25
[뉴스토마토 신건기자]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윤 감독은 영화 '재심'을 '진정한 데뷔작'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014년 '또 하나의 약속'으로 이름을 알린 김태윤 감독이 이번에는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을 들고 3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 감독은 "첫 번째 영화였던 '마이 페어 레이디스'에서 자신은 제작만 하는 역할이었고, 두 번째 작품인 '또 하나의 약속'은 투자나 캐스팅, 배급에 있어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번 영화는 기획부터 시나리오까지 어떤 방해 없이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서 결과가 많이 기대된다"고 답했다.
 
이어 "실화 소재의 영화라고 해서 많이 무겁고, 보기 힘든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즐겁고, 재미있게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이디오플랜 제공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 전라북도 익산시 약촌 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모 씨가 범인에게 흉기로 12군데를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목격자였던 청소년 최모 군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최 군은 1심에서 징역 15년, 2심에서 징역 10년형을 받아 지난 2010년 출소했다.
 
이 사건은 발생 3년만인 2003년, 진범으로 추정되는 김모 씨와 임모 씨가 체포되면서 상황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지만 검찰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김 씨와 임 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며, 임 씨는 2011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 씨는 출소 3년 후인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6년11월17일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은 오는 15일 개봉한다.
 
 
다음은 김태윤 감독과의 일문일답.
 
-언론 시사회에서 '또하나의 약속' 이후 상업영화 안하겠다고 다짐했으나,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당시 결심을 깨고,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사건 개요가 기가 막힌 사연이라고 생각했다. 또 박준영이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의 캐릭터가 매력이 있었다. "저 캐릭터가 이 사건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라는 영화적 욕심이 생겼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사건을 알게 된 것은 2012년이었고, SBS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사건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 당시에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가 가지고 있는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범인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었다. 또 이 사건이 비밀을 파해치거나 굴곡이 있는 복잡한 사건은 아니다. 다만 증인이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에 대한 문제들은 조금 있었다.
 
-작품 속 현우(강하늘)의 집을 바닷가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현우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을 최대한 가려주고 싶었다. 어디 살고 있다거나, 무슨일 하고 있다던가, 가족들의 관계. 이런 것들을 최대한 노출 시키지 않는 것이 그분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을 했다. 캐릭터에서도 사건 당사자의 감정만 가져오고, 배경이나 엄마의 관계는 영화적 상상력이 들어간 부분이다.
 
-정우와 강하늘 그리고 한재영을 캐스팅하게 된 배경이 있나?
 
▲작품 속 변호사 캐릭터가 호감형으로 시작되진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 사건을 맡는다"라는 설정이었는데, 젊은 배우 중에 찾아보니 정우 씨를 알게 됐고, 과거 정우 씨가 출연한 '바람'이라는 영화가 박준영 변호사의 옛날 모습과 굉장히 비슷한 것 같았다. 철없고 놀기 좋아하고 친구가 사법시험 공부하면서 변호사됐고, 이렇게 연결을 시켜 보니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강하늘씨는 착한 이미지가 있지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착한 인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주변 세상과 담을 쌓은 캐릭터였다가 점차 벽을 허물면서 원래의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하늘씨에게 시나리오를 드리게 됐다.
 
한재영 씨는 술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그의 매니저랑 술을 한잔 하다가 재영씨가 왔는데, 그 배역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냈다. 재영씨가 연기를 하는데 사투리도 잘하고, 내가 생각한 형사역과 너무 잘 어울렸다. 그러다보니까 거기서 거의 즉석에서 캐스팅을 결정하게 됐다.
 
 
-본인은 휴머니즘 영화라고 했지만 재심이 사회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
 
▲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소재를 만났을 때,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라는 게 있어야 한다. 전작인 '또 하나의 약속'도 그런 느낌이 왔고,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실화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 안하려고 했지만, 작가로써 "이것은 안할수가 없다"라는 느낌이 왔고,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시작하게 됐다.
 
-지금까지 영화를 3편 제작했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 제작이 어려운 부분은?
 
▲감독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고, 그 시나리오로 캐스팅을 하는 것이고, 투자를 받는 부분들이다. 수많은 시나리오 중에 영화가 되는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 "내가 2년, 3년 영화를 준비를 하는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어려움과 고독감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워야 된다.
 
시나리오를 쓰면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거절을 당해야 된다. 배우는 적지만, 배우의 몇 배수가 되는 감독들이 있기 때문에 캐스팅을 한다기 보다는 캐스팅을 당하는거라고 보면 된다. 다행히 이번 작품에서 정우 씨와 하늘 씨는 단박에 캐스팅을 당할 수 있었다. 영화가 잘되려는 신호라고 본다.
 
투자를 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재심'과 같은 영화를 만들 때도 50억이라는 큰 돈이 들어간다. 그 돈을 시나리오 몇장으로 투자 받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다행히 이번 작품에서는 메인 투자자가 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억 넘는 돈을 투자받았다. 손익분기점인 160만명만 넘었으면 좋겠다.
 
-최순실 사태와 더불어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가 세간의 화제다. 감독의 입장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나.
 
▲내가 그 명단에 올라갔냐 안올라갔냐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재심'같은 영화를 투자 받을 때도 문화계 전반에 "사회 비판성 영화를 만들지 말라"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영화 만든다고, 정부에서 압력을 넣는 것은 문화융성 정책과 동떨어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 정부가 블랙리스트로 겁을 줘도, 문화예술인들이 작품을 안 만들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약속', '재심'과 같은 영화 제의 온다면 다시 한 번 도전할 용의가 있나?
 
▲감독으로써 좋은 소재를 만나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를 만드려면 몇년을 쏟아 부어야 하지만 감독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많지 않다. 내가 3년만에 영화를 만들어서 갖고 나왔는데, 다들 "빨리 만들었다"라는 반응들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돈보다는 시간이라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런 시간을 들일만한 작품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재심처럼 "꼭 하고싶다"는 영화가 있으면 다시 한 번 제작해 볼 것이다.
 
-작품 끝나고 따로 세운 계획이 있나?
 
▲계획을 안세우고 사는 사람이라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충무로에 들어와서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면서 살았던 것 같아서 좀 쉬어보려고 한다. 석달동안 아무 생각 안하고, 쉴 예정이다.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나?
 
▲원칙을 세워놓은 것이 있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은 밥먹고, 빨래하고, 운동하고, 놀자.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남들 자는 시간에 자고…. 시나리오 쓴다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게 잘 안되더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나리오 쓰고 때되면 밥 먹고, 운동하고, 남들 잘 때 자고 그렇게 살고 있다.
 
요즘은 동네 동호회분들과 등산하고 클라이밍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낸다. 그분들과 함께 있으면 감독이라는 감투를 내려놓을 수 있어서 편하다. 대중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 눈높이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재심', 흥행할 수 있다고 보나? 
 
▲흥행은 누구도 알수 없는 부분이다. 정우씨와 항상 하는 얘기지만, 그냥 본전만 넘었으면 좋겠다. 160만명이 손익분기점인데 그렇게만 봐도 엄청난 거다. 촛불집회 다 나오고, 상암 축구장 30개를 꽉 채워야 160만 명이다.
 
한국영화에서 관객수가 500만, 천만 넘어야 흥행되는 건줄 아시는 분들이 있는데, 200만이라는 숫자를 넘는게 굉장히 어렵다. 200만이면 대한민국 국민 25명 중에 한명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재심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인가?
 
▲'진정한 데뷔작'이라는 느낌이 있다. 첫 번째로 찍었던 영화는 회사에서 기획하고, 나는 연출만 하는 좀 기획영화 형태였다. 두 번째 영화는 투자나 캐스팅, 배급에 있어서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다. 이번 영화는 기획부터 시나리오까지 어떤 방해 없이도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서 결과가 많이 기대된다.
 
-영화 '재심'을 볼 예정인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실화 소재의 영화라고 해서 많이 무겁고, 보기 힘든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즐겁고, 재미있게 영화를 보는게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보신 다음에 한 번쯤은 이 사건과 박준영 변호사에 대해서 그리고 소외받고 고통받는 분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건 기자 hellog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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