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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는 죽었다
2016-12-22 18:12:28 2016-12-22 18:12:28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신은 죽었다.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상실감을 노래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허무주의를 설명한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당위성에 비추어 본다면 세상은 정의롭지 못해 보이고 사회는 모순투성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면 이런 부조리한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편으론 모든 일에는 완벽한 구조나 최적의 대안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도 숨어 있다. 탄핵정국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신은 존재하는가. 신의 영역에 다다르기 전에 인간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마저 상실한 모습이다. 탄핵을 당한 대통령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헌법재판소에 답변서를 제출하는 상황도 이해하기 어렵고 국가 최대의 위기 상황 속에서 각자의 이해를 쫓아 하이에나처럼 이합집산하려는 정치권의 모습도 납득하기 힘들다. 위기 관리 능력과 부패 자정 능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책 제시 능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정치는 죽었다.
 
우선 위기 관리 능력이다.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면 여당과 야당이라도 제 몫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은 탄핵열차에서 분당열차로 갈아타려고 한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있었지만 국민들에게 충분한 사과는 없었다. 올해 초 40%대를 넘나들었던 새누리당 지지율은 2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대통령의 국정 농단 문제에 대해 더 책임지는 목소리를 내야 하는 쪽은 여당이다. 그렇지만 사태 수습에 대한 능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이제는 탄핵열차에서 분당행 열차로 갈아타려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권한 대행체제로 정부의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야정 협의체를 본격 가동해서 불완전한 권한 대행 체제와 협력해 국가적 위기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 위기 관리 능력의 핵심은 초당적, 초정파적 접근이다.여야정 협의체마저 난항에 봉착한 상태에서 여당내의 갈등, 여야간 대립은 국민들에게 볼썽사납고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정치는 죽었다.
 
다음으론 부패 자정 능력이다. 정치권에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청렴이다. 그렇지만 한 때 정치권에 몸담았던 전 경제수석은 기업과의 정경유착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기업인들의 청문회 출석과 국민들의 실망은 데자뷰처럼 재현되었다. 제 13대 국회의 ‘5공화국 청문회’ 당시처럼 기업인들은 권력을 쥔 정치권의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었던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졌다.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고 국민들의 일터가 되고 있는 경제 분야를 유린한 정치권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대통령, 국회, 사법부와 함께 제 4부의 기능을 하고 있는 언론의 폭로가 없었다면 과연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지금만큼이나 폭발력 있게 폭로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정치는 죽었다.
 
세 번째로 정책 제시 능력이다. 촛불 민심은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다. 정치권에서 대통령이 나락으로 떨어진 농단 사태를 끊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더라면 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정치권에서도 국민들과 다름없이 충격을 받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을 일이다. 그렇지만 국민을 대신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국회라면 분노에만 그치지 말고 산적해 있는 현안에 대해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탄핵 직후 한 여론조사에서는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결과도 있었다. 굳이 기존 정당을 선택할 의무감은 더욱 낮아지게 되는 셈이다.
 
닉슨의 사임은 정치적 선택이었다. 상원의 심판과정에 승부수를 걸 수도 있었지만 ‘국민과 국회 활동이 자신으로 인해 더 이상 에너지가 소모되어서는 안된다’는 짧은 퇴임의 변으로 마무리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나가는 과정에 대해 시시콜콜 할 이야기가 많았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다. 한국의 엘리트 지식사회는 이미 생명을 다했다. 물질만능주의의 금력 추구와 기득권 보호의 권력 추구로 사회 지도자적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다. 니체는 혼돈의 시대를 신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 신의 죽음도 인간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복잡한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정치적인 타협과 조정은 불가피하다. 만약 앞으로도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회복불능이다. 정치야말로 심폐소생술로 회생시켜야 하는 첫 번째 상대다. 경제보다 먼저 살려야할 대상이 정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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