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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모로우)무관심에 더 추워진 쪽방촌 사람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무료연탄·급식도 절반 끊겨…경기침에 영향 작년보다 더 추워
2016-12-26 00:03:17 2016-12-26 00:03:42
쪽방촌을 파고든 겨울 바람 앞에 얇은 콘크리트 벽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벽에 스며든 한기는 금세 찬바람이 돼 몸 하나 누우면 꽉 차는 좁은 쪽방을 휘감고 돈다. 간혹 마음씨 따뜻한 집주인이 바닥을 데워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몸을 떨리게 하는 추위는 절로 이불과 점퍼를 부여잡게 한다.
 
기습한파가 찾아오는 날이면 누구하나 의지할 곳 없는 쪽방촌 사람들의 체감기온은 더 크게 떨어진다. 최근 뚝 떨어진 기온에 찬바람이 쌩쌩 불어 닥치면서 쪽방촌 독거노인들을 더욱 더 서럽게 했다.
 
미끄러운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 방문을 열자마자 싸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방안에는 연탄으로 난방을 땔 수 있는 연탄 난로가 있었고 바닥에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창문 등 바람이 들어오는 틈새는 조금이라도 찬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 종이 등을 이용해 얼기설기 막아져 있었다
 
서울 주요 도심은 인적이 뜸해 냉랭했다. 최근 옷깃을 여미는 강추위에 도시 전체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난방비조차 버거워 냉골방에 사는 사람들이나 먹고살려고 생업에 나선 서민들은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주민 2000여명이 사는 전국 최대 규모 판자촌인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길목은 어느 때보다 혹독한 모습이었다.
 
최근 유가가 하락해 난방유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난방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한 할아버지는 가스배관 공사를 해 난방을 하면 비용이 덜 들지만 공사비가 300만원이나 들어 포기했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에게 주어지는 한달 수입은 기초수급 20만원, 노인연금 20만원, 기타 수입 5만원으로 고작 45만원이다. 병원비와 약값을 하고 인근 시장에서 구입한 쌀, 반찬 등으로 식사를 하고 나면 사실상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이 할아버지는 “50대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나이가 드니 안 아픈 데가 없다”며 “추운 곳에 계속 있다 보니 피부가 건조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 피부병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쪽방촌 5명 중 1명은 보일러도 없어
 
서울지역 5개 쪽방촌 주민 5명 중 1명은 보일러가 가동되지 않는 환경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겨울을 대비해 지난달 남대문과 동대문, 돈의동, 서울역, 영등포 등 5개 지역 쪽방촌의 난방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전체 주민 3587명 중 23.4%인 841명이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592명) 없는 상태(249명)로 전기장판 등에 의존하고 있었다.
 
보일러가 가동이 어려운 주민이 가장 많은 지역은 남대문 쪽방촌으로 543명이 보일러가 고장 난 상태였다. 다음으로 동대문 지역이 239명으로 많았는데, 모두 보일러가 없었다.
 
보일러 등 난방을 사용 중인 쪽방촌 주민들은 대부분 도시가스(66.7%)로 생활했으며, 연탄(17.2%), 전기패널(10.8%), 기름(4.9%) 순으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따라 서울시는 예년보다 2주가량 빠른 지난달 1일부터 쪽방 주민·노숙인 특별보호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쪽방촌 전기 시설물 678곳과 가스 시설물 271곳을 각각 점검하고, 초고령자 등 건강 취약자 78명을 대상으로 매일 1회 이상 방문간호사 등이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한편 시는 현대엔지니어링 등 59개 기관과 단체 등으로부터 쌀 2만6270킬로그램과 김치 2만1684킬로그램, 연탄 4만9570장, 난방유 6375리터, 전기장판 1061장, 단열시트 1380롤, 내복 등 의류 3886점 등의 후원물품을 쪽방 주민과 노숙인에게 지원하고 있다.
 
또 '디딤돌하우스'라는 현대엔지니어링과 서울시가 주민들의 자활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저가의 월세로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하며 쪽방촌에 위치한 리모델링해 샤워실과 화장실, 휴게실 등을 갖춘 공용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디딤돌하우스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후원하는 저렴쪽방 사업으로 서울시는 기존 쪽방 건물을 임차해 개보수한 뒤 시세 70% 수준에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엄의식 서울시 복지기획관은 "여러 민간 기업들과 단체들의 도움이 저소득층 생활안정 지원 사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쪽방촌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덜 추운 겨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 '뚝' 떨어진 사랑의 온도
 
김영란법 여파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어수선한 경기 침체 그늘은 추운 겨울을 맞은 쪽방촌에도 어김없이 드리웠다. 종로구 돈의동,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 등 서울 주요 쪽방촌에서는 눈에 띄게 줄어든 봉사단체·기업들 지원 탓에 주민들이 겨울 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 생활을 지원하는 이화순 사랑의쉼터 소장은 “불경기라 기업들 관심이 확 줄어든 데다 올해 세월호 참사에 많은 지원이 쏠리면서 쪽방촌에 돌아오는 관심은 더 많이 줄었다”며 “대기업 지원이 체감상 50% 이상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현물 지원은 줄고 생색내기식 지원만 남은 사례도 있었다. 한 주민은 “200명 넘는 주민 중에 고작 20명을 모아서 송년 파티를 해준다더라”며 “이런 쓸데없는 지원 대신 이불·옷 같은 걸 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쪽방촌의 따뜻한 겨울을 책임지던 ‘연탄은행’도 기업들이 기부를 줄이며 허덕이고 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은 올해 10월까지 연탄 총 176만4182장(1만543가구)을 지원했는데 지난해 401만2114장(2만3386가구)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적이다.
 
겨울 전에 미리 연탄을 지원하던 9~10월 실적이 바닥을 친 데다 기부를 중단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 연말과 내년초 실적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수년째 꾸준히 지원하던 기업들이 올해 들어 손을 내젓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미 연말 예산 편성까지 마친 회사들이 계획을 수정해 지원 규모를 조정하는 일도 생겼다. 봉사를 나와도 예전보다 봉사 직원 수를 줄이거나 쌀·라면 등 다른 지원 물품을 없애는 게 대부분이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관계자는 “2만장 넘게 후원하던 기업이 절반으로 지원을 줄이는 등 연탄 수급에 어려움이 많다”며 “최근 개인 기부자들이 늘고는 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뚝 끊긴 지원 여파는 곧바로 쪽방촌 주민들이 피부로 느낀다. 한 주민은 “올해 유독 연탄이 안 와서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며 “기초연금 몇 푼 더 받으면 뭐하고, 동네 재개발이 추진되면 뭐하느냐. 정부가 탁상에서 정책 놀음만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올겨울 어떻게 버티나 하루하루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곳곳에 도사리는 쪽방촌의 화재위험
 
쪽방촌 주민들이 화재 위험을 안은 채 위험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쪽방촌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골목이 비좁아 소방차 진입이 쉽지 않은 데다 소방장비도 부족해 화재 발생 시 큰 피해를 볼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 
 
이곳 돈의동 쪽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천장까지 쌓인 이불과 옷가지로 어수선한 상태로 기름 난로로 겨울을 나고 있는 쪽방촌은 화재가 발생할 경우 탈출하기 어려워 보였다. 좁디좁은 골목으로는 화재가 나도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다. 큰 길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4분 정도로 집 사이의 길이 좁아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민들이 사용하는 전기장판 역시 구석이 검게 눌어붙어 있어 누전으로 화재가 날 위험성이 적지 않아 보였다.
 
현재 소방당국에 따르면 쪽방촌 등 재난취약지역으로 관리되는 곳은 서울에만 11곳에 이른다. 한국전력이 관할 소방서와 함께 쪽방촌 전기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이 아닌 봄에 시행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기점검은 전선이나 누전차단기를 검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소방당국은 소방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쪽방촌에 비상소화장비함을 설치해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함 위에는 물건이 쌓여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장비함에는 비밀번호를 알아야 열 수 있는 자물쇠를 채워 비상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관리 주체가 없어 비밀번호를 아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매년 주택에서 발생하는 화재가 6000여건에 이른다”며 “이 가운데 70%가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 취약계층 가구”라고 말했다.
 
또 “쪽방촌과 같이 인화성 물질이 많고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은 늘 화재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며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해 입주민들의 주의와 정부의 수시 점검을 통해 화재 예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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