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사법부가 만만치 않은 위기를 맞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성매매로 경찰에 입건돼 망신을 사더니 정운호(51·구속 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현직인 김모(57) 부장판사가 지난 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던 중 긴급 체포되기까지 했다. 그는 재판 청탁 등 명목으로 정 전 대표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총 1억7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사채왕 판사', '재테크 판사' 논란 등에도 침묵하던 대법원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지난 2일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심야에 성명을 냈다. 대법원은 "누구보다도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갖춰야 할 법관이 구속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점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비통한 심정으로 깊은 유감과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여기에 덧붙여 대법원은 오는 6일 전국 법원장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할 예정이다. 대법원장이 법관의 비위로 대국민사과를 한 것은 2012년 10월 서울동부지법 유모 부장판사의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막말 사건에 대한 사과 이후 4년만이다. 두 번 모두 양 대법원장 재임 중에 일어났다. 이에 앞서서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2008년 9월 군사독재시대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이 대법원장도 재임 당시 법조비리에 서울중앙지법 조모 부장판사 등이 연루된 것이 드러나면서 2006년 8월 대국민 사과했다. 이 사과가 사실상 법관비리에 대한 대법원장의 첫 사과다. 그 전까지는 대법원장이 법관의 법조비리 연루로 공식 사과한 예는 매우 드물었다. 윤관 전 대법원장이 1995년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법관이 직접 연루된 사건은 아니었다. 때문에 양 대법원장의 이번 대국민 사과는 법관 법조비리 연루사건에 관한 한 10년만의 사과인 셈이다.
김 부장판사의 구속과 양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 표명에 대한 법원 내 심경은 침통하다 못해 치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그나마 남아있던 국민적 신뢰가 모두 무너졌다"며 "아무리 재판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한 들 '재벌들에게 뒷돈이나 받아먹는 판사'라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개탄했다. 수원지역의 한 부장판사도 "대법원장이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은 사법부로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개인적 일탈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법관들의 윤리 의식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 대한변호사협회 임원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는 "이번 사태는 오래 전부터 변호사 업계에서만 떠돌고, 법원이나 검찰이 쉬쉬하면서 키워 온 법조비리의 연결고리가 결국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나와 드러난 것"이라며 "법원·검찰·변호사단체가 각각 개혁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법조 3륜의 수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TF를 만들어 전반적이고 통합적인 개혁안을 마련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이인복 대법관 퇴임식에서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사진/뉴스1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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