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배우 손예진 "인간 이덕혜를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다"
입력 : 2016-08-10 15:12:37 수정 : 2016-08-10 15:12:37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청순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우 손예진의 실제 모습은 꽤 털털하다. 웃음소리도 시원하고, 대체로 솔직하다.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서 호흡을 맞춘 김남길은 "자기가 본 여배우 중 가장 나이스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영화를 볼 때 특히 더 이성적이다. 연기에서 실수한 점이 없는지, 감정 표현에 과잉은 없는지 등 자신의 연기에 잘못된 부분을 주로 찾아왔다. 그런 그가 신작 '덕혜옹주'의 완성본을 처음 보고는 펑펑 울었다. 자신의 연기를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눈물은 얼마나 그가 이 작품에 몰입했고, 애착이 있는지를 증명한다. 조선 마지막 황녀로 기구한 삶을 살았던 인간 이덕혜를 완전히 공감했다고 한다. 기구한 삶의 한 여인에 대한 공감은 손예진의 연기력을 발전시켰다. 이제껏 미모와 함께 연기도 잘하는 배우로 평가받아온 손예진은 '덕혜옹주'를 통해 자신의 연기력을 뛰어넘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덕혜옹주'로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 손예진을 영화 개봉 하루 전인 지난 2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자신을 향한 칭찬에 수줍어한 그는 "인간 이덕혜의 모습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예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같은 여자로서 덕혜한테 애정과 연민이 가네요"
 
'덕혜옹주'는 기구한 삶을 살다간 조선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의 60여년 삶을 그린다. 어린 시절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견제로 인해 일본으로 넘어가 그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정신병까지 걸린 인물이다. 뚜렷한 독립운동을 한 것도 없이, 저항조차도 하지 못한 채 잊혀졌다. 영화는 한 여인을 통해 부끄러울 수 있는 역사를 그대로 조명한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실존 인물은 처음으로 연기해본다는 손예진의 태도와 자세는 이전과 많이 달라보였다. 자신의 상상과 연주로 만들어낸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는 점이 그 이유라고 했다.
 
"수동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덕혜의 삶에 애정과 연민이 가요.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또 와닿는 것도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을 했다던가 하는 멋진 삶을 산 여자가 아니잖아요. 이전에도 개봉 한 달 전부터는 책임감이 강해서인지 잠도 못자고 걱정했어요. 이번에는 그 강도가 훨씬 더 심해요. 실제 인물이다 보니까 몰입을 좀 더 많이 한 거 같아요. 단지 영화가 잘 되길 바랐던 이전과 달라요. 더 경건해진다고 해야 될까요."
 
경건한 자세는 이 영화의 프리 프로덕션부터 시작됐다. 동명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였던 수 년 전 이미 덕혜옹주를 알게 된 그는 허진호 감독의 제안으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이미 '외출'에서 허 감독과 작업을 한 바 있는 손예진은 덕혜를 연기하게 된 것만으로 영광이라고 했다.
 
"권비영 작가님 작품을 이미 예전에 읽었었어요. 그런 중에 허 감독님이 이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는데, 지지부진 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영화적으로는 보여줄 게 많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영화제에서 만났는데, 시나리오를 주시더라고요. 워낙 역사적인 인물이고 저 역시 흥미가 있었어요. 흥행은 나중이고 욕심이 났어요."
 
손예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덕혜의 텅 빈 동공을 온전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제 인물을 표현해야하는 상황은 연기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 됐다. 성격이나 표정, 말투 등 캐릭터를 상상으로 만들어왔던 손예진은 실제 인물 그대로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최고의 연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 손예진은 일제의 견제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덕혜의 나약함과 친일파 앞에서 자존심은 굽히고 싶지 않았던 강단, 생이별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한국에 돌아오는 데 실패한 뒤의 광기, 정신병이 걸리고 난 뒤의 흐리멍텅한 눈빛과 굽은 등까지 실제 덕혜를 떠올리게 하는 연기를 선보인다. 손예진의 얼굴과 눈빛 모두가 덕혜 그 자체로 보인다. 연기력이 엄청났다는 칭찬에 손예진은 부끄러운 듯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칭찬을 해주시는데, 어쩔 줄 모르겠어요. '인생 작품'이라고도 해주시고, 이렇게까지 칭찬 받아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사실 찍으면서는 감정이 너무 오버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관객들이 과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했는데, 허진호 감독의 특유의 거리감이 절제를 만들어낸 거 같아요. 편집되는 과정에서 허 감독의 역량이 나온 거 같아요."
 
이전 작품의 인터뷰를 할 때 손예진은 자신이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똑바르게 설명했다. 어떤 의도가 있었고, 어떤 표현을 하려고 했으며, 감독과는 무슨 대화를 나눴었는지 취재진에 늘 정확히 설명해온 그다. 하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서 말을 아꼈고 박해일과 윤제문, 허진호 감독에게 그 공을 돌렸다. 대화를 나누던 중 답답함이 느껴져 "왜 이렇게 자신의 연기에 대해 설명을 안 하냐"고 물어봤다.
 
"사실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른 인물들은 상상하고 내가 연주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덕혜는 마지막 황녀로 사실이 있잖아요. 그냥 그 사실에 맞춰서 연기했을 뿐이에요. 최대한 덕혜옹주를 진실적으로 접근해서 온전히 보여주는 것만 생각했어요. '얼마나 이 인물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까'만 고민한 거죠. 그러다보니까 막상 할 말을 못 찾겠네요."
 
'명량'의 최민식은 단 5분만이라도 이순신을 보길 원했고, '변호인'의 송강호는 노무현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 차례 출연을 거부했었다. '동주'의 박정민은 송몽규를 표현하기 위해 중국 연변에 있는 묘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배우에게 압박감을 주는 듯하다. 손예진 역시도 이 압박감에 몸을 맡겨 연기를 한 듯했다.
 
"덕혜가 한국에 왔을 때 사진을 봤어요. 그 때는 이미 정신병에 걸려 있을 때였는데, 동공이 텅 비어있는 느낌이더라고요.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어보였어요. 등도 굽어있었고요. 정신병이 걸렸을 때는 그저 그 동공만 표현하고 싶었어요. 슬픔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걸 정말 잘해내고 싶었어요."
 
손예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제는 10억원이 아깝지 않아요"
 
손예진은 촬영 기간 중 이 영화에 10억원을 투자했다. 배우가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에 투자를 직접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영화의 흥행이 예상돼서라기보다는 애정 때문이었다.
 
"선뜻 10억원을 내놓은 건 아니고, 회사와 치열한 고민 끝에 투자한 거예요. 제작비가 빡빡하면 배우나 스태프나 힘들어지거든요. 전 이 영화가 정말 좋은 평가를 받길 원해서 그렇게 결정했어요."
 
국내 최고의 배우이지만 10억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손예진에게 10억원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물어봤다.
 
"글쎄요. 저에게도 큰 돈이죠. 그런데 이미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영화도 만족스러워요. 그래서 10억원이 아깝지 않아요. 저는 거창한 꿈을 갖고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니에요. 다만 연기적인 부분에서 완성된 배우가 되고 싶었을 뿐이죠.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연애시대''외출'을 할 수 있었어요. '덕혜옹주'는 그런 저의 목표에 한층 다가서게 한 작품이에요. 영화를 본 입장에서 조금도 아깝지 않아요."
 
차기작이 없는 손예진은 한동안 휴식기를 맞이할 생각이다. 쉬는 기간 동안 영화와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차기작을 고심하겠다는 계획이다. '덕혜옹주'를 통해 자신을 뛰어넘은 그가 다음에 돌아올 땐 또 얼마나 발전해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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