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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감정평가시장 선진화'를 위한 공정한 입법정책 제언
김상윤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ㆍ감정평가사
2016-07-20 14:01:47 2016-07-20 14:01:47
올해 1월 초 ‘감정평가시장 선진화’를 위한 ‘한국감정원법’,‘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 등 3개 법률(이하 3개 법률)이 제정ㆍ공포됐다. 이 3개 법률은 그 동안 감정평가시장에서의 역할 수행을 두고 끊임없이 갈등을 겪어 온 한국감정평가협회와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이 관리ㆍ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의 중재 하에 합의된 내용을 기초로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합의의 중요 포인트는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업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고, 한국감정원이 일정 분야에서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이 후속조치로 국토부가 입법예고한 3개 법률의 시행령, 시행규칙(안)을 두고 감정평가사들이 자격제도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와 여의도에서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집회를 열고, 협회장이 삭발까지 하는 등 그 반발이 거세다. 국토부가 당초 법률 제정취지 및 당사자 간의 합의내용 등을 뒤로한 채 일방적으로 감정원에 유리한 하위 법령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동안 정부출자기관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누려온 감정원이 감정평가업자의 지위를 포기한다는 것을 위안삼아 ‘한국감정원법’ 제정에 동의한 감정평가사들에 대한 명백한 신의칙 위반행위로 보는 것이다.
 
국토부가 당초 마련한 ‘한국감정원법’(안)의 제1조(목적) 및 제12조(업무)에서 ‘보상ㆍ평가 등 적정성 조사’가 법률 심의과정에서 합의당사자 일방인 한국감정평가협회의 반대의견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삭제되었으므로, ‘보상평가서 적정성 검토’ 및 ‘부동산 담보대출을 목적으로 하는 감정평가서 검토’ 등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한국감정원법 제12조제3호’의 ‘부동산 시장 적정성 조사ㆍ관리’ 업무에 억지로 갖다 붙여 법률에 위임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일부 ‘담보 감정평가서’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책목적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또한,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입법예고(안)에서는 법률에서 위임하지도 않은 무작위 추출 방식의 감정평가서 표본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규칙(안)에서는 감정평가사의 사적 정보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평가 선례를 법률의 위임한계를 벗어나 과도하게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등 입법예고(안)의 여러 조항에서 법령체계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리한 입법이 시도되고 있다.
 
이 사태의 핵심에는 감정원의 과잉 생존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국회에서 3개 법률에 대한 심의 당시에는 ‘4.9 대타협’ 운운하면서 합의정신 이행을 강조하더니, 법률이 제정ㆍ공포되자 태도를 바꿔 조직에 유리한 법 시행령 마련 등을 통해 사실상 감정평가 업무를 계속 수행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을 상대로 ‘담보시세조사 업무지원시스템’ 마련해 사실상 감정평가업무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 수행 근거로 ‘한국감정원법’ 제12조제4호의 ‘부동산 관련 정보의 제공ㆍ자문업무’를 들고 있으나, 이는 시장에서 감정평가사의 업무와 경합된다.
 
문제는 국토부 담당 공무원들의 태도다. 감정평가사 자격제도 및 감정평가시장을 지도ㆍ감독하는 부서의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공정한 입장에 서서 법률의 제정취지나 합의정신 등에 맞게 하위 법령을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3법에 대한 입법정책은 겉으로는 ‘감정평가시장 선진화’를 위한 한국감정원의 공적기능 강화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실제는 감정원의 구조조정 없는 기존 조직 살리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본다. 공기업으로써 사실상 그 기능을 다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감정원에게 ‘부동산 시장 적정성 조사 ㆍ관리’ 라는 포괄적ㆍ추상적 개념의 업무를 법률에서 정하고, 법시행령 및 한국감정원 정관에서 이를 왜곡ㆍ확장해 규정함으로써, 감정평가시장을 비롯한 부동산 관련 산업 곳곳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의도로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감정원의 공적기능 강화보다는 현 조직체계의 유지를 위한 수익 보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법률에서 위임하지 않은 것 들을 법 시행령에서 감정원의 업무로 정함은 물론, 감정원 정관에 포괄적으로 재위임하는 등 부당한 입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적정성 조사ㆍ관리’는 감독기능의 업무인데 대한민국 정부의 어느 부서가 이런 업무를 수익사업 형태로 권한을 위탁한 사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오죽하면 일각에서 국토부가 공기업인 감정원을 내세워 부동산 시장에 진출한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겠는가.
 
한국감정원이 사실상 감정평가업무를 행하면서 감독기능까지, 그 것도 수익사업 형태로 수행하겠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떳떳하게 감독기능을 수행하려면 먼저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출발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감정평가 시장을 포함한 부동산 시장의 감독기능 수행은 50~100명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하다.
 
국토부는 ‘한국감정원법’등 3개 법률의 규정 및 제정 취지와 당사자 간 합의정신, 한국감정원의 정체성과 업무수행 능력에 맞는, 그리고 감정평가사 자격제도의 근간을 지켜 줄 수 있는 공정한 법시행령, 시행규칙을 마련해 줄 것을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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