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일본 참의원 투표 결과 집권 연립 여당이 대승을 거둔 것을 계기로 향후 아베 정권이 펼쳐 나갈 정책 방향에 많은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3년 전 기치를 내건 경제정책 패키지 ’아베노믹스‘가 비록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정책의 과실이 여전히 시들해 있는 것을 참의원 선거 승리를 계기로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기회를 맞이했다. 최근까지 일본 기업들의 실적·고용 개선을 견인해온 ‘엔 약세 + 주가 강세’의 흐름이 최근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등으로 역회전을 시작한 것도 주요 변수이다. 일본경제의 향방은 한국경제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일본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박상기 전 숭실대 겸임교수의 진단을 들어본다. [편집자]
◇ 아베노믹스 재가동 기대 부활
아베 총리는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로부터 아베노믹스를 한층 가속시키라는 강력한 신임을 얻었다.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디플레이션 탈출 속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요 민간 연구기관들의 2016년 일본 경제성장률 전망은 실질 +0.7~0.8%(2017년 0.8~0.9%)로, 아베 정권이 지향하고 있는 연 2% 성장률에는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참의원 선거 승리로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책 아젠다가 더 단순화된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은 연립 여당이 의회에서 공고한 기반을 확보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책 초점을 개헌 보다는 경제에 둘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치 상황과 경제적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아베 총리는 당분간 지난한 과제들이 산적한 개헌 작업보다는 경제 회생에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권 자민당 핵심 간부인 고무라 부총재는 아예 당분간 헌법 개정의 핵심 조항인 제9조의 개정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첫째, 국민 대다수가 아직은 전쟁 기피 사상에 깊이 사로잡혀 있어서 개헌의 최대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연립 파트너인 공명당도 근본 정치사상의 배경이 불교인만큼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을 허용하는 헌법 개정에는 적극적일 수가 없고, 개헌을 옹호하고 있는 군소정당들도 개헌 지지 수준에 다양한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 아베 “모든 정책수단 총동원”
아베노믹스는 당초 ①대담한 금융정책 ②기동적인 재정정책 ③민간 투자를 환기하는 성장 전략 등을 ‘3개의 화살’로 삼아 출발했다. 아베 정권은 출범 첫해인 2012년에 13조엔, 2013~2015년에는 3조~5조엔 규모의 추경 예산을 편성해 주로 공공사업에 투입했다. 그런 정책 시행의 영향도 있어서 경제 정책의 주요 목표인 고용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실업자가 점차 감소해 실업률은 선진국 중에 최저 수준인 3.2%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고용 호전에도 불구하고 과거 2년간 경제 성장률은 평균 0.2%라는 지극히 저조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해외 환경 불안의 지속도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경제의 정체가 이어지고 있고,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유럽경제 전체가 심각한 리스크에 휩싸여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한 움직임은 엔화 가치의 급변동을 불러와 정책 대응을 한층 어렵게 만들고 있다.
거의 완전고용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종전에 성장의 최대 제약 요인으로 관측되어 왔던 수요 부족보다는 공급 측면의 구조적 제약에 원인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선거 승리를 계기로 “모든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출동한다”는 각오로 경제 정책의 핵심 엔진인 아베노믹스를 재가동시키기 위해 대규모 추경 예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탈 디플레이션 위해 10조엔 재정 투입 전망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결과를 보고 “내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대담한 경제대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그는 현재 구상하고 있는 종합대책의 기본 원칙으로 “성장의 과실을 필요한 분배정책에 대담하게 투입할 것”을 강조하면서 현재의 ‘제로금리’ 환경을 최대한 살려 재정 투융자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아직은 확정된 추경 예산 규모를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융자 등을 포함해 총사업비 규모가 최소한 10조엔을 넘는, 아베 정권 최대 규모의 종합 대책을 시행해인 아베노믹스의 재가동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다른 여당 간부 의원은 20조엔 규모의 경제활성화 패키지를 주장하기도 했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이번 경기 촉진 패키지가 ‘헬리콥터 머니’의 전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번 경제회생 대책은 주로 수요진작에 치중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일본경제 침체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총수요를 직접 자극하기 위한 중심적인 대책으로 ①비정규직 증가를 배경으로 현재 연금 수급 대상 요건에 미달하고 있는 대상자를 수급 적격자로 대폭 확대하려는 정책이다. 현 기준으로 무연금자들이 연급 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 납부 기간을 현행 25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해 내년부터 시행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현행 법령상으로는 소비세율 10% 인상에 맞춰 실시하도록 되어 있으나, 소비세율 인상에 앞서서 선행 도입할 방침을 굳힌 것이다. 이를 시행하면 현재 약 42만명의 무연금자들 중 약 17만명이 새로 연금을 수급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수요 진작을 위한 대책으로 ②지방경제 활성화에 촉매 역할을 할 인프라 정비 사업으로 일본의 초장기 국책 사업인 리니어 쥬오 신칸센의 전면 개통을 당초 목표 연도인 2045년에서 8년간이나 앞당기는 의욕적인 방침을 결정했다. 한편 ③미래 성장의 새싹인 청년층을 위한 무이자 및 지원형 장학금의 확대 도입도 구체적으로 검토할 것을 언명하고 있다. 또한 ④농산물 수출 증대 및 해외 관광객 수용을 위한 항만 등의 시설 확충과 정비 사업에도 재정을 적극 투입할 방침이다.
◇ 담대한 통화정책도 동시에 펼칠 듯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도 아베 정권의 담대한 재정 정책에 적극 부응해 현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QQE(양적·질적 완화) 정책을 강화하는 대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총재는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불과 3주일 남짓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대단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베 총리는 금년 후반 시행을 목표로 가능한 최대 규모의 담대한 재정 계획을 완성해 가고 있으나, 일본은행으로서는 아직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정책수단에 대한 암시를 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구로다 총재와 면담한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4월 경제가 비상 상황에 처하게 되면 소위 “통화정책으로 조달되는 재정 프로그램” 전략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극심한 총수요의 부족, 통화정책의 실효, 의회가 채무 증가에 의한 재정확대 정책을 기피하는 상황 등 비상 상황 하에서는 이러한 정책수단이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 처한 현재의 경제 상황 하에서 버냉키 전 의장이 방문한 것은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더 완화된 통화정책을 동원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게 했다. 전문가들은 마이너스 금리 폭의 추가 확대 혹은 ETF 매입 한도의 확대 등을 점치기도 한다. 아베 총리도 버냉키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디플레이션을 탈각하는 속도를 가속하고 싶다”는 희망을 강력히 피력해 새로운 경제 활성화 대책을 취할 것임을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다.
일본은행이 예견되는 많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목적은 최대한 신속히 소비자 물가수준을 전년 대비 상승률 +2%라는 물가안정 목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엔고 등으로 수입물가의 하락, 실물경기의 정체에 따른 수요 부족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 물가수준은 전년대비 마이너스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추가적인 금융완화 정책을 취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것이다.
◇ 일본경제 선순환을 저해하는 3가지 요인
일본이 아무리 적극적인 금융·통화·재정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있어도 경제가 항상 정책 채택 과정에서 상정한 선순환의 경로로만 움직여 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기관은 현재 일본경제가 엄청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성장 + 디플레이션’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제순환 과정에 장애가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첫째, 금융시장의 혼란이다. 지난 1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하기 직전까지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저가 이어져 소기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너스 정책을 도입한 이후 시장에서 양적 정책 수단이 고갈되어 금융 완화가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인식이 확산돼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우호적 투자 환경이 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일본경제의 기대성장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등 구조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장래 불투명성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기업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투자보다는 재무적 안정을 강화하는 것을 중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셋째, 가계의 소비 마인드가 지속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연초부터 엔고가 진행되고 있고 세계경제가 감속 경향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적 부진 우려가 높아지고 기업 실적 악화, 임금 인상 억제 우려, 나아가 고용 감소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개인과 가계의 소비가 활발하게 되살아나기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금융수입 비중이 높은 가계를 중심으로 소비 마인드가 감퇴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 일본 성장 전략의 중핵은 규제개혁
아베 정권은 금융의 양적 완화, 대규모의 추경 예산을 동원한 금융·재정 정책으로 총수요 확대 전략을 강력하게 시행해 오고 있다. 그러나 국내외 상황이 여의치 못한 탓도 있어 일본경제가 아직 뚜렷하게 나아지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종전의 정책수단들이 지향해 온 총수요 측면에서의 효과가 한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이제는 경제의 공급력 확대를 겨냥하는 성장전략에 최우선을 두어야 할 차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경기가 침체되어 있는 시기에 규제개혁을 실행하게 되면 수급 격차를 더 확대시켜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과거 택배서비스, 휴대전화 등을 허용한 규제개혁이 단순히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것뿐만 아니라 거대한 신규 수요를 창출해 낸 사례에서 경험한 바 있다. 이제 더 넓은 범위에서 더 과감한 규제개혁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주택 용적률의 완화, 고령화 시대를 감안한 유연하고 다양한 노동 환경의 조성, 여성 및 고령자 노동 기회의 확대, 외국인 인력의 과감한 도입, 시장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격 통제 철폐 등 주로 종전에 공급력 확대를 저해해 온 각종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는 것이 긴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현재 일본 사회와 경제가 안고 있는 만성적 과제인 주택, 보육 등 주요한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종전의 수요 확대를 중심으로 한 근시적인 경제정책 방향을 과감히 전환해 경제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원시적인 규제개혁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정책 대응이 한층 중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는 각 나라와 지역별로 갖가지 난관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 오랜 동안에 걸쳐 ‘잃어버린 20년’ 이니 ‘장기 경기침체’이니 하는 대명사를 달고 지내 온 일본경제가 아베노믹스 재점화라는 회심의 한수로 얼마나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될지 주목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현지시간) 오전 몽골 울란바토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제11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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