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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 ’는 어떤 느낌인가요?-신림동 복합문화예술공간 작은따옴표
2016-06-17 10:47:38 2016-06-17 10:47:38
“저희는 작은따옴표입니다. ‘ ‘ 이 부호가 진짜 이름이에요. 작은따옴표는 어떤 사람의 속 깊은 감정이나 생각을 담을 때 쓰는 기호잖아요? 오늘 여기 오셔서 느낀 그 감정을 그대로 이 부호안에 담아서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이름을 짓고 싶은 대로 짓고, 그 끝에 작은따옴표만 붙여서 기억해주시면 돼요. 그게 진짜 저희 이름의 의미에요.”
 
2014년 2월 28일. 스물두 살 울산 청년이 ‘나답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신림에 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왕 사는 거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다는 이 청년의 생각이 씨앗이 되어 오늘, 이곳은 4,000여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다. 작은따옴표의 아지트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창의적으로, 예술적으로 풀어 나간다. 
 
작따 1호 내부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1부. 작따를 만나다
 
신원시장 끝쪽에 위치한 건물의 문을 연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칠흑같이 어둡다.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며 계단을 다 내려가자 천장까지 짜인 신발장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문을 열자 보이는 널찍한 공간. 청록색의 벽과 바둑무늬 바닥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치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들어온 것 같다.  
 
서영_저희를 소개 할게요. 이 형은 최휘영이에요. 장편도 찍고 단편도 찍은 영화 감독이기도 하고 작곡도 하고
오!
서영_큰 영화는 아니고…
 (모두 웃음)
휘영_(무심하게) 그치. 큰 영화를 찍었으면 여기 있지는 않겠지. 
서현_(갑자기 발끈하며)왜? 나도 휴학하고 여기 있잖아. 난 엄청난 앤대.
운_(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넌 무슨 얘길하는거야 
화신_(웃으면서) 아니, 엄청 ‘큰’ 애지 넌. 크지 그냥. 
 
(일동 웃음)
 
 
서영_(여전히 차분하게)그 다음에 여기는 김동관 형님이라고. 여기 만들 때부터 같이 함께 했던 형이고, 베이스 치고, 음악하는 형이에요. 
그리고 여기는 하운 형님. 기타치고 노래하는 예술인이에요.  
운_(싱긋 웃으며 양 엄지를 치켜세우며) 페북에 치면 나와요. ‘좋아요’ 눌러주세요.
오!!
서영_(진지하게) 누구나 나올 수 있어요. 하하
서현_(본인을 가리키며) 그리고 그 옆엔!
서영_여기는 박서현이라는 친구인데 TV에도 한 번 나왔던 친구예요. 지금 홍보랑 마케팅 담당으로 함께하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이 친구는 끼가 되게 많아요.
그리고 여기는 장화신이라고 지금 부대표 맡고 있는 친구. 원래 본인 이름 걸고 의류 브랜드 하다가 지금은 여기 합류해서 부대표를 하고 있어요.
저기는 이재경이라는 친구인데 여기서 경영이나 사업 관련된 쪽을 주로 담당하는 친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짝 웃으며) 저는 아시죠? 
소개해주세요
저는 장서영이고 지금 이 단체에서는 대표로, 또 이것저것 많이 하는 종합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들 여기 사시는거에요?
서영_사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요. 다 근처에 살죠. 다들 고향이 신림은 아니고. 작따가 생기면서 이사 오거나 원래 살고 있었거나…
 
서현_(불현 듯, 하지만 활기차게)일해야지
동관을 빼고 나머지. 다 일어난다. 기자와 대표 서영, 인터뷰를 위해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다.
 
 
‘큰따옴표’라 불리는 운영진들의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2부. 작따를 듣다.
 
작따 소개해주세요.
서영_저희는 우리나라와 세계의 사회문제점을 어떻게 창의적이고 예술적으로 풀어나갈까 고민하는 청년들이에요. 작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문화예술의 측면에서 혁명을 일으켜보자!’ 라고 해서 문화예술 혁명단체로서의 형태가 첫번째고, 두 번째로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서의 형태에요.
단체는 세 가지로 구성돼요. 우리 식구, 크루(crew), 그다음에 운영진이 있어요. 식구는 저희가 제2의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40명이 조금 넘어요. 그다음에 크루라고 해서 예술가 공동체가 있는데 크루도 한 40명 가까이 되고요. 운영진은 큰따옴표라고 불러요.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요. 큰따옴표는 9명이에요.
근데 요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이 구성은 조만간 재정립해서 정리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따는 처음에 어떻게 만들었어 졌나요?
서영_그냥 단순해요. 내가 이런 공간을 갖고 싶었어요.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안 하는 건데 우리는 하고 싶은걸 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제한을 받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전시를 한다고 하면 실제로 허가를 받아야 하고, 돈을 내고 내 작품이 통과해 야해요. 그렇게 해서 내 작품이 정당하게, 잘 평가받는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내 인생은 내 인생인데, 누군가에 의해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 공간에서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펼쳐내려고. 
 
 
작따 내부 벽에 붙어있는 작따 사진들. 사진/바람아시아
 
 
작따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거에요?
서영_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걸 좋아했는데, 왜 고민을 이야기할 때 싫어하는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간에 진심을 이야기잖아요. 저는 그 (진심을 듣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느껴왔어요. 그러면서 제 가치관이나 철학이 많이 정립되고 있고요.
그래서 순수함이 담기는 그런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나 단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이름을 지었어요.
 
작따의 신념이나 가치 같은 게 있나요?
서영_저는 저 자신,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진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작따도 같아요. 개개인의 자신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진심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저희 이름이나 활동도 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있어요.
 
작따만의 특징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서영_작따는 굉장히 자유로워요. 각자 자기 할 거 다 알아서 하고 중간에 놀러 오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놀러 와서 놀다 가고. 공간도 자유롭지만, 사람들도 자유로워요.
그래서 저뿐만이 아니라 되게 많은 사람의 순수한 진심들이 많이 묻어나는 곳이에요.
 
 
자유로운 작따 1호 내부 풍경. 사진/바람아시아
 
 
작따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서영_저희는 사회적인 문제를 저희만의 예술활동에 많이 녹여내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제일 메인으로 하는 활동이 ‘ARTRASH’라는 활동도 있고, 작따학당이라고 해서 대안학교도 만들어서 운영했었고, 오드스(오픈드림스테이지)라고 해서 많은 사람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도 했었어요. 신림을 제2의 홍대로 만들고자 했던 많은 활동도 있었고요.
 
올해는 어떤 활동을 기획하고 있어요?
서영_ 작년까지는 다 했었는데 올해는 아직 계획이 없어요. 대신 올해는 집중과 선택을 하려고 해요. 보시다시피 운영진이 지금 몇 명 안 되는데 이 많은 활동을 했었거든요. 현재는 ARTRASH에 집중하고 있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나머지 활동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고시촌 빌라 축제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림역 축제 같은 축제는 연중 행하니까 열 계획이에요. 위안부 할머님 관련된 활동이나 3.1절, 5.18, 세월호 이런 활동들은 꾸준히 계속하는 활동들이고요.
 
ARTRASH는 어떤 활동이에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서영_ARTRASH ‘이 세상 길거리 위 모든 쓰레기와 예술을 맞바꾸다.’ 라는 의미를 가진 ART와 TRASH의 합성어에요. 단순히 정크아트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보통 버스킹을 할 때 돈을 받으면서 노래를 부르잖아요? 근데 기타 가방 대신 쓰레기봉투를 놓고 쓰레기를 팁으로 받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길거리 위에 있는 쓰레기요. 그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주워 버리는 거잖아요? 나중에는 이 시스템을 이름시, 캘리그라피, 캐리커처, 페이스 페인팅 같은 다양한 장르에 적용했죠.
 
ARTRASH를 소개하는 영상을 봤어요. 호응이 좋던데요? 다양한 곳에서 많이 진행하셨나 봐요?
서영_이 시스템을 가지고 축제로 갔어요. 축제 때 발생하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잖아요. 그래서 축제 곳곳에서 체험 부스를 설치하고 체험비 대신 길 위에 쓰레기를 받아봤어요. 결과적으로 쓰레기는 감소하고 축제는 이미지가 좋아졌고, 예술가들은 수입구조가 생겼죠. 축제 주최 측에서 예술가들을 섭외하고 섭외비를 주잖아요.
 
 
작따 상장. 사진/바람아시아
 
 
작따가 여기까지 오게 된 성장 과정을 듣고 싶어요. 처음 시작은 뭐였어요?
서영_소소한 파티에서 시작했어요. 처음 벽에 곰팡이 설어있고, 정리도 안 됐지만 그런데도 자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하고 놀았거든요. 그러다가 “우리 이왕 노는 거 의미 있게 놀자” 해서 이 주변에 1인가구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1인가구 축제를 열었어요. 신림주변에는 1인가구 사람들이 많거든요.
홍보도 그냥 건너건너 했는데 관악구에서 저희에게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그 축제에는 구의원 두 분이 오셔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제안을 했고 지원금을 주기 시작했어요. 처음 받은 지원금이 300만 원이었고 그다음 해에 받은 지원금이 3000만 원이었죠. 서울시에서 관악구랑 함께해서.
 
여기 운영은 어떻게 해요? 수입이 있어요?
서영_일단 여기 공과금이나 월세는 여기서 사는 세입자들이 내요. 공간운영비나 기본 운영비는 그렇게 채워요.
우리가 이런 활동을 하면서 쌓은 신뢰로 외주나 기획이 들어올 때도 이 있어요. ARTRASH도 1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로 받아요. 많으면 한 건 수당 2000만 원 받기도 해요. 이제 받을 예정이에요.
이렇게 돈을 받는다고 해서 작따로 들어오는 돈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그 행사를 함께하는 식구들이나 주변에 많은 예술가에게 골고루 분배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공간 대관도 해요. 근데 저희는 대관 규칙이 조금 독특해요. 대관하는 사람이 대관비를 정해요. 그니까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돈이 많든 적든 이 공간을 대관해서 뭘 하든 다 할 수 있어요.
 
 
작따 회의하는 모습. 사진/바람아시아
 
 
운동권이라고 하죠? 사회에 관심을 갖고 나가서 직접 행동하고 하는 단체를. 작따의 이런 사회 참여적인 모습과 운동권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서영_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신중하게 행동하는 편이기도 하고 아직 배울 것도 많아서…. 이런 차이는 있어요. 이 위안부 할머님 팸플릿이나 3.1절 프로젝트의 경우, 우리는 위안부 할머님을 생각해서 하는 거지 일본에 대한 공식적 사과 같은 것을 저희 활동에서 요구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할 일은 이런 팸플릿을 만들어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러한 사건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알리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 중에 위안부 할머니나 이런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위안부 할머님들도 여생만큼은 건강하고 편히 쉬다 가실 수 있도록 바라는 거죠.
 
 
3.1절 팸플릿. 사진/바람아시아
 
 
작따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에 있어 혹은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로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영_작따가 사회적인 활동 직접 참여하기도 하지만, 저는 작따의 식구들처럼 자유롭고 ‘나 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위해서 이런 공동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대 사회에 많은 청년이나 사람들이 하기 싫은 것을 견디는 삶이 당연한 삶이 되어버린 게 이해가 안 돼요. 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물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비중이 높아야죠. 요즘에는 나를 위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때그때 나를 포기한 삶을 많이 사는 것 같아요.
여기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이런 곳이 많아지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계기나 기회도 늘어날 테니까요. 모든 사람이 정말 나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곳. 
 
앞으로 작따의 계획
서영_그냥 변함없이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정말 변함없이 지금처럼 장난치고 일할 땐 또 일하고 설레면서 재밌게 살아갔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아까 말했듯이, 선한 영향이 되면 좋겠고.
아, 프로젝트 측면의 계획을 이야기하자면 ARTRASH를 아마 집중적으로 하게 될 것 같고 그리고… 그리고… 이런 게 다겠네요.
 
 
작따의 1주년 기념 단체. 사진/바람아시아
 
 
앞으로 작따의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에 사람들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대표 장서영에게 작따는 그저 사회적인 활동을 같이하는, 선한 일을 하는 본인의 단체가 아닌 것 같다. 장서영에게 작따는 사람이다. 24살. 아직은 어린 나이에 작따2호점까지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장서영이 사람을 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따를 나오며 장서영 대표와의 대화를 곱씹어본다. 그의 말처럼 점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는 청년들이 주변에 많이 보인다. 이런 현실 속에 ‘사회문제들을 예술로 해결한다’는 작따의 모토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서만 통할 것 같다. 그러나 작따는 실제로 존재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뛰어들기에 가장 현실적인 공동체이다.
 
작따에게는 허울 좋은 거창한 이유도, 그 어떤 정치적인 욕심도 없었다. 문화예술혁명단체 작은따옴표는 그저 나답게 살아가는 삶이 기왕이면 선한 영향력이 있길, 또 다른 사람도 그들처럼 나답게, 인간답게 살 수 있길 바라는 청년들의 큰따옴표이다.
 
작따 팸플릿에 나온 마크와 약도. 사진/바람아시아
 
 
 
이윤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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