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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동생, 그의 이름 “조수”
오늘 부는 바람은 / 시선
2016-06-09 10:34:49 2016-06-09 10:34:49
사실이 충돌하진 않는다. 조영남의 이름을 내걸고 팔린 그림의 다수를 무명화가 송기창이 그렸다는 데 이견이 없다. 주로 조영남이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주면 이에 따라 송기창이 그림을 그렸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인정한다. 둘 모두 이 사실이 드러나길 않길 바란 것 같다. 사건 이후 조영남이 사실상 잠적했다는 점과 SBS와의 인터뷰에서 송기창이 한 말을 보면 그렇다. 그는 “원치 않은 일이 벌어져서 지금 만신창이가 됐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충돌하는 건 호칭이다. 조영남은 ‘미술계의 관행’을 운운하며 송기창 화백을 자신의 ‘조수’라고 표현했다. 자신은 그림의 내용적 측면을 담당하고 송 화백이 기술적 측면을 맡는 분업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또 앤디 워홀이 자신의 ‘팩토리’에서 여러 조수와 공동 작업을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받으려는 전략이다. 동일한 사실을 접근하는 송기창 화백의 호칭은 전혀 다르다. 그는 자신을 조영남의 ‘동생’이라고 표현했다. 친한 형을 돕겠다는 생각에서 조영남이 그려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말했다. 그림이 팔리고 나면 조영남이 ‘용돈 삼아’ 주는 돈이 고마웠다고 한다. 그림 값의 10%도 못 미치는 액수였지만.
 
같은 사실을 두고 충돌하는 두 호칭 사이에 진실이 있다. ‘조수’가 공적인 이름이라면 ‘동생’은 사적인 이름이다. 조수에게 주어져야 하는 건 ‘용돈’이 아니라 공동 작업에 대한 임금이다. 무엇보다 그림이 둘의 협업에 의한 것이었음이 어떤 방식으로든 명시되어야 한다. 공적으로 말이다.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고 판매될 때 그들의 협업은 더 이상 형과 동생의 사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공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 사적으로 은폐되어 있던 셈이다. 그렇기에 조영남이 해명해야 하는 건 자신의 그림이 어떤 방식의 작업을 통한 결과였느냐가 아니다. 대신 그가 밝혀야 하는 건 숨겨진 그의 ‘동생’이 세간에 알려졌을 때 갑자기 ‘조수’가 생긴 이유다. 
 
아마도 조영남은 사적인 영역에 숨겨져 있던 동생 송 화백이 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길 바랐을 게다. 왜냐하면 송 화백은 사적으론 동생의 대우를 받는 조수이면서 공적으론 절대 조수여선 안 되는 동생이기 때문이다. 공과 사를 넘나드는 애매한 이중주가 세간에 알려지자 조영남도 새 이름을 얻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화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사기꾼이라 칭한다. 공적으로 말이다.
 
조영남 그림 대작 사태를 다룬 MBC 리얼스토리 눈의 한 장면. 캡처/지속가능 바람
  
 
 
윤호연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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