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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에 내몰린 '전력망'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
자격증 4만개 이상 발급…현장 근로자는 3000명 미만
10년간 공사 중 549명이 다치거나 사망…80% 협력업체 직원
2016-05-30 16:08:42 2016-05-30 16:08:42
[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송·배전 등 전력망 건설 현장의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주로 야외에서 작업을 하는 데다 고전압 전류를 다뤄야 해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기존 근로자들에게 업무가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부상, 사망 등 인명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협력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고가 잦다. 
 
30일 전국건설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압, 지중 배전협력업체는 477개로 근로자는 5200여명에 달한다. 3년 전인 2012년 5600여명에 비해 400명 이상 감소한 수준이다.
 
전력망 건설 현장을 기피하는 젊은층이 증가하면서 현장 평균 연령도 50대 이상으로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존 근로자들에게 업무가 몰리고 이로 인해 사고발생률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 분야별로 11명이 맡아야 할 공사를 2~3명이 맡는 등 기존 근로자들의 업무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지금까지 송·배전 관련 자격증이 4만개 이상 발급됐지만 현장 근로자는 3000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일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높아 젊은층 인력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전력 등 원청기업들이 기존 공법에 비해 공사비를 20%가량 줄일 수 있는 활선공법(전선이선공법)을 적극 권장하면서 사고 발생률이 더 높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활선공법은 고압전류가 흐르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만큼 매우 위험하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감전사고로 총 5928명이 사망했고, 그 중 송·배전 공사 중 감전사고로 549명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고의 80%는 협력업체의 비정규 근로자로 나타났다.
 
일반 건설근로자에 비해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도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기산업이 국가 기반산업이다 보니 안전과 보안을 이유로 내국인 근로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 인정하는 전기 관련 자격을 갖춰야 해 외국인 근로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비싼 교육비와 부실한 교육제도도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석 위원장은 "사설학원에서 송·배전 관련 교육을 모두 이수하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며 "이마저도 현직 근로자들이 노동부 지원금을 받았을 때 기준"이라고 말했다. 일을 새로 배우려는 청년들이 관련 교육을 받으려면 최소 1000만원 이상의 교육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교육기간도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짧아 숙련된 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현장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송·배전 관련 교육의 경우 미국은 4년, 일본은 13개월 이상 교육을 거쳐야 현장 투입이 가능한 반면 우리나라는 6개월 안에 모든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안전복 등 안전보호장비 지급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 등 원청기업이 공사비 외에 안전보호장비 구입을 위한 비용을 따로 협력업체에 지급하지만 장부 상에만 기재할 뿐 현장 근로자들에게는 원활하게 지급이 되지 않아 작업 시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절연 작업복이나 장갑 등은 오래 사용할 경우 절연 기능이 확연히 떨어져 주기 별로 교체가 필요하다.
 
송·배전 등 전력망 건설 현장에 젊은 인력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전남 나주에서 열린 제26회 전국 전기공사 기능경기대회에서 출전 선수들이 전봇대에 올라 배전선로 불량을 가장한 외선가공선을 개설하는 경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최승근 기자 paina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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