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호기자] 36년 동안 열리지 않던 조선노동당 대회를 치른 북한의 앞날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당대회 후 20여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변화의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는 남측을 향한 거듭되는 군사당국회담 제안이다. 두 번째는 김정은 위원장이 29일 북·중 친선 농구경기를 관람하며 약 3년 만에 중국과 관련된 외부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앞으로 대외환경의 변화를 꾀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에 부합하는 동향으로 볼 수 있다.
당대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지 북한 문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한반도평화포럼(임동원·백낙청 공동이사장)이 지난 26일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분석한 내용을 정리했다.
◇ "당대회는 국방개혁 선언"
-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의 7차 노동당 대회에 알맹이가 없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이번 당대회를 한 마디로 ‘국방개혁’이라고 규정한다. 국방개혁은 크게 두 가지 영역이 있다. 하나는 군의 구조(인사와 조직)를 개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용(돈)을 개혁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에 그 두 가지 개혁을 모두 단행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대회를 통해 북한을 당 중심의 체제로 돌려놓았다. 아버지인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추진했던 ‘선군정치’를 이제 버리고 당 중심의 체제로 바꿨다. 이것은 국방개혁 중 구조 개혁에 해당한다.
또,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했는데, 말이 병진이었지 실제로는 경제를 포기하고 국방에 힘을 쓰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여기에 칼을 빼들었다. 비슷한 용어인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국방에 우선 투입했던 체제, 50년 이상 북한을 지배해왔던 군사 중심주의를 탈피하고자 했다. 이것은 국방개혁 중 운용을 개혁하는 것에 해당한다. 어찌 보면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쌓아 온 것을 뒤엎는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일각에서는 당대회를 거치며 군을 우선한다는 ‘선군’에서 당을 우선하는 ‘선당’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는 분석 수준을 헷갈린 것이다. 북한에서 당은 항상 우위에 있었다. 당이 우위인 상태에서 군이 먼저냐(선군) 민이 먼저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당대회를 거치며 북한이 ‘선군’을 버리고 ‘선민’을 택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경제강국을 얘기하면서 추가로 인민생활 향상과 문명국가를 말했다. 그것이 바로 선민이다.
7차 당대회를 할만큼 경제적으로 성과가 있었는지는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당대회에서 성과를 가지고 미래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 군 중심주의를 탈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국방개혁) 이벤트를 한 것이라고 본다.
당대회가 끝난 다음날 노동신문에 차기(8차) 당대회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호소문이 실렸다. 자강력 제일주의와 경제개발 5개년 전략, 사상기술문화 3대 혁명을 통해 ‘당 중심의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토대로 과학기술 강국, 경제 강국, 문명 강국이 되어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완성하겠다고 되어 있었다. 여기에 군사 문제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체질 개선(국방개혁) 시도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과학기술 강국 안에 국방과학 기술 항목이 들어가 있을 정도였다.
북한이 당대회를 통해 얘기한 희망사항대로 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그 희망사항을 현실화하기 위해 유리한 대외 환경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한 국면 전환을 위해 다섯 가지가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을 희석시키려고 할 것이다. 둘째, 평화협정 논의를 위해 미국과 대화를 개시하려 할 것이다. 셋째, 김정은이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고자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접근할 가능성도 있다. 넷째, 대내적으로는 경제개발에 매진하기 위해 남측에서 위협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려 할 것이다. 다섯째, 남북간 재래식 군비경쟁 해소를 통해 내부적으로 경제적 재분배를 하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남측에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한 것은 이러한 국면 전환을 위한 것이었고,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개성공단 문제나 이산가족상봉, 인도적 지원 등을 위한 회담을 제안해도 남측은 받지 않을 것임을 북한도 알고 있다. 그러나 군사적 사안에서의 대화는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볼 것이다. 군사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지난 16∼17일 남측에 통보도 없이 임진강 본류에 있는 황강댐을 방류해 남측 임진강의 수위가 갑자기 높아진 일이 있었다. 남측이 북한과의 통신선을 다 끊어놨기 때문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고 북한에 항의할 명분이 별로 없다.
그런데 앞으로 장마철이 되면 더 위험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상호 오인과 우발사태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다 없어진 상태다. 5~6월 꽃게잡이철에 중국 어선 때문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교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북한이 우연을 가장한 모종의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사람이 죽어 나가면 회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하는 군사회담은 모든 것을 잃고 하는 것이다. 북한의 진정성을 따지지 말고 지금 군사회담을 수용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북한에 따질 것을 따지면서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 "김정은, 대외정세 비교적 정확히 파악"
-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
나는 다르게 해석한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이제 정치군사강국을 이뤘으니 이제부터는 경제다’라는 식으로 선언했다면 남측이 움직일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정치군사강국을 더 튼튼히 다지자’고 했다. 핵무기를 중심으로 한 군사력 재편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 분야에 예산이 더 많이 투입될 수 있다. 핵 폭발장치(nuclear devices) 몇 개를 만드는 것보다 핵무기를 실전 배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만드는 과정은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따라서 선군이 아니라 선경으로 갔다는 평가는 무의미하고 성급하다. 여전히 신중히 봐야 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있다. 김정은은 남측에 군사당국회담을 제의하면서 크게 두 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현안으로 대북방송, 대북전단, 드론(무인기) 등 당장 해결해야 할 민감한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평화협정이라는 법·제도적인 문제다. 우리는 이 제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핵 문제가 엄중하지만 재래식 전력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위험을 줄여가는 노력도 해야 한다. 따라서 핵문제와 재래식 전력의 문제를 적절히 분리시키고 때로는 연계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북쪽의 회담 제의는 우리가 중요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져준 셈이다.
최근 북측에서 군사당국회담을 하자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하지만, 뜯어보면 기관이 아니라 개인 명의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나는 굳게 결의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것은 충성맹세의 형식이다. 따라서 북한이 남측에 ‘대화 공세’를 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나 북한의 대화 제의를 우리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과거 남측이 추진했던 긴장 완화의 노력들은 사실 북한이 던진 그런 계기를 우리가 잡고 전략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북한이 늘 하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당대회 총화보고에서 주목된 부분은, 북한이 정세를 상당히 객관적으로 잘 보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데 기초해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군사력을 건설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북아에서의 미·중 경쟁을 뜻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도 자신들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구도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또 내부적으로 교육이나 보건 같이 인민생활과 직접 관련된 부분을 굉장히 강조했다. 쿠바가 최근 개혁·개방을 하면서도 튼튼히 버티는 중요한 이유는 보건 인프라 같은 것들 때문이다. 잘 살지는 못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낫다는 자부심이 주민들에게 있다.
김정은은 정세를 정확히 보면서 의제를 잘 제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효과적인 의제를 뽑아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변에 조언하는 참모들이 있겠지만, 김정은 자신도 학습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지금 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불안정한 정권이고 지도자라는 말을 더 이상 꺼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물론 멀리 보면 사회경제적 권력이 분산되는 상황에 당이 어떻게 적응할지가 관건이지만, 일단 단기적으로는 불안하게 봤던 요소들을 해결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김정은은 당의 부정부패와 관료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했다. 당을 쇄신하겠다는 것이다. 당의 위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이 현장에 뿌리박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제기한 것이다. 당 대표자회 구성을 봐도, 현장에서 일하는 핵심일꾼들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0년 3차 당대표자회의 때는 현장에서 일하는 핵심일꾼의 비중이 7%였지만, 이번에는 그 비중이 21.4%로 늘었다. 김정은이 핵심적인 문제를 잘 짚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방 통일이 될 것처럼 혹은 붕괴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끝으로 경제통이자 민간인인 박봉주 내각 총리가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들어간 것은 의미가 있다. 핵무력-경제 병진을 하려면 군과 민의 조율이 잘 되어야 하는데, 거기서 박봉주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당장은 자원(예산) 배분에 있어 국방이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고, 민이 군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민간 부분의 건설을 위해 군이 동원되기도 할 것이다. 국방기술이 민수용으로 전환되는 식으로 민과 군을 조율하는 매커니즘을 만들어가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 "서열파괴 인사를 주목하라"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은 ‘항구적 전략노선’이라며 세 가지를 꼽았다. 핵무력-경제 병진노선과 선군혁명노선, 자강력 제일주의 등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현에만 집중하는 것은 해석학적 접근이다.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신성시하며 계속 강하게 고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선군혁명노선의 경우 이미 반쯤은 형해화(껍데기만 남음) 됐다. 자강력 제일주의도 과거 ‘자립적 민족경제’를 강조하다가 그것 가지고는 말이 안 되니까 완화시킨 표현이다. 모토로 제시했지만 나중에 형해화 된다.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그처럼 형해화 된 노선들과 같은 수준으로 거론하며 항구적 전략노선이라고 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1962년 국방-경제 병진노선도 처음에는 금과옥조처럼 모셨지만, 6~7년 해보고 안 되니까 결국 바꿨다.
당대회에서 특히 주목을 끈 부분은 인사였다. 그간 북한 노동당의 인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하고 중요한 현상이 있었다. 조선노동당은 당대회에서 중앙위원들을 뽑고, 그 중앙위원회 안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위원-후보위원을 구성한다. 원로이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 몇명을 제외하면 중앙위 서열대로 정치국이 구성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놀랍게도 28명의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을 뽑으면서 중앙위 서열 85위에 불과한 리수용 외무상을 정치국 위원 겸 당 중앙위 부위원장에 임명했다. 또 중앙위 서열 98위인 외무성 부상 리용호가 정치국 후보위원에 들어갔다. 중앙위 서열 100위권에 있는 3명이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들어간 경우도 있는데 평양시당 위원장, 평북도당 위원장, 평남도당 위원장이 그들이다.
특정한 전문 분야의 인사들이 당의 중앙위 서열까지 파괴하면서 대거 요직에 등용된 것은 조선노동당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들의 능력이 특출하거나 그들에 대한 김정은의 신뢰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김정은이 향후 국정 운영과 관련해 해당 분야 사업의 중요성을 특별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치로 해석된다. 외교와 지방(행정)이 중요한 관심 영역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경제 문제였다. 북한이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36년간 당대회를 열지 못한 것은 역시 경제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 당대회를 열었다는 것은 경제적 성과에 대해 총화를 했고, 향후 비전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번에 발표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국가 차원의 전략으로 봐야 한다. 경제 영역에 한정된 것으로 보면 안 된다. 대북 제재 7~8년 동안 북한 경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재 국면이 계속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대회를 여는 배짱은 뭔가를 따져봐야 한다. 북한의 전략이 어떤 조건일 때 실현 가능하고, 어떤 조건에서 실패할 것인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즉, 이번 당대회의 포커스는 결국 경제전략이다. 북한은 조만간 최고인민위원회를 열어 당이 제시한 ‘5개년 전략 과업’을 구체화해 내각이 수행해야 할 5개년 계획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문수지구의 류경안과종합병원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27일 보도했다. 보건 인프라는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유용한 소재로 평가된다. 사진/뉴시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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