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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인사이트)'순환경제'로의 전환…쓰레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다
폐기물 재활용으로 자원절약·비용절감·환경보전 이루는 기업들
2016-05-25 10:42:12 2016-05-25 14:00:26
하루에 전 세계에서 약 350만톤의 폐기물이 배출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폐기물 배출량은 지난 100년간 10배가량 늘었고, 2025년까지 두배 더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의 증가 추세가 계속된다면 2100년에는 하루에 1100만톤이 넘는 쓰레기가 배출된다고 볼 수 있다. 폐기물이 이렇게 증가하는 것은 지난 수십년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주도한 경제모델이 ‘처분’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선형경제(Linear Economy) 구조에서는 모든 물품이 대안 없이 ‘폐기’로 이어져 자원고갈, 기후변화 등의 환경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소모적 경제구조와 대조적인 형태의 ‘순환경제(Circular Economy)’가 논의되고 있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순환경제의 원리를 도입해 환경파괴 영향을 줄이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이야기와 기업들이 순환경제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도 소개했다. 
 
순환경제란 폐기물을 재활용해 천연자원의 소비를 줄이고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경제구조를 말한다. 소모된 제품을 버리지 않고 수리하거나 개선함으로써 자원을 순환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다. 희소자원의 고갈을 막을 수 있는 자립적 경제 생태계로 평가받기도 한다. 최근 산업발달과 경제성장이 가져온 문제를 해결할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말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회의에서 6억5000만유로의 기금을 조성해 순환경제를 도모하는 혁신적인 방안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칼메누 벨라 EU 위원은 그간의 경제성장이 자원 낭비와 고갈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자원의 생산성을 연장·확대시키는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연설했다.
 
미래지향적 글로벌 기업 중 몇몇은 이미 순환경제 원리를 도입했다. 가구계의 거인 이케아는 벨기에에서 ‘가구를 살리자’라는 프로그램으로 버려지는 가구의 재활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케아는 사람들이 낡은 가구를 가져오면 상품권과 교환해 준다. 그리고 싼 가격으로 다시 중고가구 시장에 내놓아 가구의 수명을 연장한다. 스티브 하워드 이케아 최고지속가능경영자는 “모든 중고 가구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라며 내년 미국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해 소비자의 반응을 살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케아는 못쓰게 된 가구를 수리하고 보수하는데 필요한 부품들도 제작·판매한다. 이 밖에도 이케아는 현재 29개의 풍력발전단지와 80만개의 태양전지판을 가동 중이며 재생가능에너지에 16억유로를 투자하며 친환경 사업에 힘쓰고 있다. 하워드 회장은 “에너지를 비용이 아닌 수익으로 보고 있다”며 매장에서 LED 전구만을 판매하는 것도 친환경 소비를 주도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공정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다른 제품의 원재료로 투입한다. “폐기물이란 자리를 찾지 못한 또 다른 자원”이라고 정의하는 GM의 폐기물감소담당자 존 브래드번은 직원들에게 “폐기물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GM은 한 조립 공장에서 폐기된 종이 판지를 모아 세단 차종인 뷰익의 지붕 충전재로 사용했다. 자동차가 수송될 때 쓰이는 플라스틱 보호막 뚜껑을 다른 플라스틱 병 뚜껑들과 섞어 쉐보레 실버라도의 공기 편향장치를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GM은 2014년 한 해 동안 250만톤의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이산화탄소-배기가스 배출량을 1000만톤이나 줄이는 성과를 이뤘다. GM은 ‘비매립 프로그램’도 시행하며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본사를 포함해 전 세계의 131개 설비시설에서 매립용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있다.  
 
친환경적인 '자립적 경제 생태계'
 
순환경제는 폐기물의 재활용을 근간으로 하지만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버려진 제품이 크게 손상돼 복구하는데 새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면 재활용의 경제적인 가치는 없다. 순환경제는 말 그대로 물건의 생산-소비-폐기 과정이 순환돼 경제 시스템이 자체적인 생명력을 가지는 체계다. 따라서 내구성 높은 상품을 생산해 자원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나 수리와 보수가 쉬운 상품을 제작·판매해 재활용을 쉽게 유도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 분해와 재조립이 수월한 상품도 재료의 재사용 가능성을 높인다. 
 
순환경제가 천연자원의 재사용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 후 생태계로 돌아갈 수 있는 생체 재료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쓰레기 매립을 최소화하거나 친환경 방식을 적용해 메탄가스 발생을 줄이는 것이 한 방법이다. 미국 최대의 슈퍼마켓 체인 월마트는 트레일러 2만5000개 분량의 음식물 쓰레기를 혐기성 미생물로 분해하고 있다. 음식물의 매립과 메탄가스 발생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월마트는 또한 생산자들이 정밀농업 기법을 적용해 비료 사용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 포장지에 표기된 유효기간을 판매 시점에서 사용 시점 기준으로 바꾸기도 했다. 간단한 변화였지만 식품 폐기 시점에 관한 혼란을 해소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판매보다 '대여'…수명 다한 제품도 책임져
 
상품을 ‘판매’하는 대신 ‘대여’하는 것도 순환경제 원리를 따르는 방법이다. 일부 기업들은 물건을 팔지 않고 대여 혹은 리스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상품 대신에 상품의 사용권을 판매하는 것으로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이라고 부르는데, 제품과 서비스의 결합 혹은 서비스의 상품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때 제품의 소유권은 기업에 있다. 소비자들은 다 쓴 물건을 판매자에게 돌려주고 기업은 폐기된 물건을 재활용에 이용할 수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 르노는 부품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부분적 리스 방식을 채택했다. 르노는 전기차를 팔 때 주요 부품인 배터리를 팔지 않고 리스한다. 수명을 다한 배터리는 수거해 재설계하거나 재활용한다. 르노는 배터리 이외에도 버려진 자동차 부품 중 43%를 재활용해 신차 제조에 활용한다. 매년 엔진 3만개와 기어박스 2만개, 연료분사장치 1만6000개가 재사용된다. 이를 통해 르노는 자동차 부품 가격을 30~50% 이상 낮추고 물 사용과 유해화학물질 및 쓰레기 배출을 80% 이상 절감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청바지 제조업체 머드진스는 서비타이제이션을 의류에 적용한 케이스다. 머드진스는 청바지를 팔지 않고 대여해 준다. 소비자가 입지 않게 된 청바지를 상점에 반환하면 기업은 청바지를 재활용해 새 상품을 만들거나 빈티지 청바지로 고쳐 재판매한다. 이를 통해 머드진스는 원재료 비용을 절감하고 쓰레기를 줄여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했다.
 
네덜란드 의류업체 머드진스는 순환경제 원리를 도입해 청바지를 팔지 않고 대여한다. 사진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낡은 청바지를 수거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사진/머드진스

'폐기물 공유경제' 실현될까
 
순환경제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폐기물을 공유하기도 한다. 쓰다 남은 원재료나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필요에 따라 재분배하는 것으로 ‘원재료 매칭(materials matching)’이라고 부른다. 미국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USBCSD)의 앤드류 맨건 회장은 “파리기후협정 이후 기후변화 해법을 찾으려는 욕구가 상승해 원재료 매칭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머티리얼즈 마켓플레이스(Materials Marketplace)’는 순환경제 원리에 기반을 둔 미국의 폐기물 네트워크로 USBCSD와 세계지속가능발전협의회(WBCSD), 기업환경포럼(CEF)이 협력해 만든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중고폐기물시장이다. 기업들은 폐기물 내놓고 교환하며 재사용 가능성을 공유한다. 자투리 옷감이나 나무 조각 등 수많은 잠재적 재료들이 새로운 사용자를 찾고, 기업은 이 재료를 싼 가격에 사게 된다. 또한 폐기물 매립을 막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순환경제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비용 때문에 도입을 꺼리는 기업들도 있다. 글로벌 물류업체 UPS의 지속가능성 담당자인 에드 로저 선임위원은 “복잡한 물류, 폐기물 해체 및 재제조 비용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경제적인 이득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경미디어 그린비즈(Greenbiz)도 순환경제 도입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로 물류비용, 낮은 우선순위, 소비자와 최고경영자의 인식 부재 등을 지목했다. 순환경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판매수익을 포기하고 상품을 대여하는 제조업체가 수익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도록 금융 상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 있다.    
 
신지선 미국공인회계사(AICPA)·국제경제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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