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기자] 경찰은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의 원인을 피의자의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내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여성혐오 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을 해소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강남역 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때 '남녀 공용화장실을 과연 그대로 둘 것이냐' 같은 문제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다"고 예시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도 "강남역 묻지마 살인에 대해 여성들의 분노가 결집하고 있다"며 "사회적 분노를 만만한 사회적 약자인 젊은 여성에게 폭력과 억압으로 표출하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반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굉장히 낮았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당 역시 "어린이와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책무"라며 "20대 국회는 약자가 폭력과 불행을 당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법적 대책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입장보다는 개별 의원들이 20대 국회에서 남녀 공중화장실 분리 의무화 법안(심재철 의원)을 발의하거나 범죄 현장에 대한 주변인들의 구조 행위를 규정하는 '착한 사마리아인법'(박성중 당선자)을 제출할 것이라며 여론에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강남역 사건으로 촉발된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대한 국회의 입법적 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혐오범죄에 대한 처벌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에 대한 가중처벌을 가능하게 하는 형법상 처벌 강화 방안과, 성별뿐만 아니라 연령·장애·병력·인종 등을 포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방안이다.
19대 국회 역시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의 특정 지역과 정치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며 관련된 대책을 담은 법안들이 발의됐다.
국회 선플정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새누리당 안효대 의원은 인종과 출생지역 등을 이유로 사람을 혐오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이 혐오에 대한 형법상 처벌 규정을 갖고 있다.
안 의원실은 법안 발의 당시 일베 사이트의 혐오 표현과 더불어 '리틀싸이'로 유명세를 치렀던 황민우 군이 어머니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플 등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지켜보며 이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오래된 편이다. 17대 국회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정부가 정부 입법안을 발의했으며, 노회찬 의원 역시 차별금지법을 제출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 국제인권기구는 2007년부터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2건의 차별금지법안이 제출됐으나 임기 만료 폐기됐고, 19대 국회에서는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각각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으나 '동성애 옹호법'이라는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로 철회한 기록이 있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차별금지법은 해산된 통합진보당 김재연 전 의원의 법안이지만 임기 만료 폐기를 앞두고 있다.
마지막 논의 방안은 현재 규정돼있는 명예훼손죄, 모욕죄의 구성요건에 인종, 출신지역, 성별 등에 대한 혐오 또는 차별 행위를 가중적 구성요건으로 신설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더민주 이종걸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13년 '혐오감을 표현하기 위한 범죄의 경우'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밖에 강남역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 환자였다는 점을 감안해 정신질환자의 약물치료를 의무화하는 정신보건법 등 의료 관련법 개정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검사 출신인 더민주 금태섭 당선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경찰에서 결론 내렸듯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정신장애에 의한 소행으로 볼 수 있지만 지금 수많은 여성들이 공감을 표현하고 똑같이 공포를 느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너무나 위험한 사회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인 안전을 위해 차별금지법 등 법·제도를 통해 고칠 수 있는 부분까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금 당선자는 가중처벌에 관해서도 "인종이나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어 범죄를 저지르는 데 대한 가중처벌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엄히 막지 않으면 자칫 집단범죄로 번질 수도 있어 그 방식에 동의한다"며 "당내에서 강남역 사건에 대해 의원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고 20대 국회에서 대책이 발의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분노한 20대 여성들이 23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여성혐오가 죽였다!'라는 주제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1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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