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 없던 북한 노동당 대회, '변화의 단초'는 보였다
당이 이끄는 '정상 체제' 복귀 선언…경제 개혁도 추진력 받을 듯
2016-05-10 15:36:03 2016-05-10 18:46:02
[뉴스토마토 황준호기자] '김정은 시대'를 선포한 북한의 제7차 노동당 대회가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9일 폐막하면서 이번 대회의 의미와 북한의 향후 변화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1980년 이후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10일 오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대회 경축 평양시 군중대회를 중계하며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진입을 알렸다.
 
당대회를 통해 67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이 가졌던 직책인 ‘노동당 위원장’에 추대된 김정은은 나흘 간 입었던 서양식 양복 대신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군중대회에 등장했다. 김일성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파는 그를 향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주석단에는 김 위원장과 함께 이번에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박봉주 총리가 얼굴을 나타냈다. 당대회를 거치며 확립된 북한의 최고 권부들이다.
 
◇ 당대회는 ‘원칙’ 천명하는 행사
 
지난 6일 김 위원장의 개막사와 함께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시작된 당대회에서는 ▲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결산) ▲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당규약 개정 ▲김정은 당 최고수위 추대 ▲당 중앙지도기관의 선거 등 5대 의제가 다뤄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언론브리핑에서 이번 대회의 의미에 대해 "김정은을 위한, 김정은 유일체제 강화 차원의 대회"라며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의 말대로 북한은 이번 대회를 통해 김정은을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일부 인사이동을 발표한 것 외에 눈에 띄게 새로운 내용을 내놓지 않았다. 대회 둘째날 김 위원장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철저히 수행해야 한다"고 밝힌 것 정도가 새로운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당대회라는 행사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면서도 김 위원장이 발표한 내용 속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북한문제 전문지 ‘민족21’ 전 대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5년 동안의 과도기를 지나 ‘김정은 시대’가 열렸고 노동당은 김정은의 당으로 변화됐음을 대외적으로 선포한 행사”라고 규정한 후 “당대회는 ‘원칙’을 선포하는 자리로, 북한 내부를 향하는 정치적 수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원칙적인 생각이나 구상을 이번에 그대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제 전략을 발표하며 ‘사회주의 기업관리 책임제’ 등 한 문장으로만 소개된 내용들이 북한 내부적으로는 경제 개선(개혁)의 상당한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제대 통일학부의 진희관 교수는 “김정은은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제1비서가 되면서 당 체제를 이미 정비했고, ‘핵-경제 병진노선’은 2013년 3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미 발표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뭘 새롭게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진 교수는 “그렇지만 당규약상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당대회를 개최한 것은 앞으로 당 운영을 정상적으로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의미가 있다”며 “당대회가 열리지 않던 지난 36년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의 사인 없이 비상사태로 당을 운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이 정부기구보다 우위에 서서 이끄는 사회주의 고유의 ‘당-국가 체제’ 재확립을 선포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핵보유국’ 선언, 기존 주장 되풀이
 
대외관계 문제에서는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며 ‘핵-경제 병진노선’을 재확인한 것이 가장 주목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사업총화 보고에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은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일시적인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최고 이익으로부터 항구적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핵보유국론을 언급하며 “억지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정부 당국자는 "세계 비핵화라는 말은, 전세계가 핵을 포기하면 자기도 포기하겠다는 뜻"이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핵보유국 주장은 그 자체로 문제이지만 북한이 그동안 해왔던 말을 재차 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창현 소장은 “북한이 세계의 비핵화 실현을 언급했는데, 여기서의 비핵화는 '한반도의 비핵화'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핵보유국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뜻을 표방한 것으로 기존의 입장에서 바뀐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핵 문제에서의 구체적인 정책 방향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유연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외관계는 기본적으로 핵보유국 입장에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라며 “모두 기존에 하던 이야기”라고 평가했다.
 
10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대회 경축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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