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기자] 초선 130여명을 대상으로 한 국회 오리엔테이션이 열리고 새로운 원내대표를 뽑는 등 국회는 20대 개원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요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자신의 '1호 법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 국회의원 당선 전 자신이 몸담았던 전문 분야와 현안을 연결해 이러저러한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가 남다르다.
1호 법안은 4년 전에도 있었다. 19대 국회에서 자신의 1호 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던 전문가 출신 의원들은 한결같이 '성과는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의료계 전문가 출신인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이 처음으로 대표발의한 법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미약한 동물보호를 위해 화장품을 만들 때 동물실험을 했는지를 화장품 포장에 표시하도록 한 '화장품법 개정안'이었다. 문 의원은 동물보호단체, 화장품업계 등과 소통하며 노력한 끝에 지난해 마지막 날 화장품 동물실험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대체시험법을 적극 육성하도록 한 화장품법 개정안을 본회의 통과시켰다.
문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의정활동 내내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착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착한 법은 이 법을 안 지켰을 때 처벌을 받는 게 아니라 법을 지킴으로써 국민이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착한 정치를 하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모든 식품의 포장지에 나트륨 함량을 비교 표시하도록 한 식품위생법 개정안도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입법 활동 중 하나였다.
법안 가결률이 60% 대에 달하는 성과를 낸 문 의원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는 "4년 동안 입법이나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 정부의 방침이 서야만 되는 것들이 있었다"며 "이번 정부는 아무래도 보건의료보다는 복지 쪽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보건의료도 4대 중증질환 보장을 중심으로 챙기긴 했지만 산업화 쪽에 치중을 한 측면에 있다.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체계가 잘 잡혔어야 하는데 그런 현장의 문제점은 덜 들여다본 것 같다"고 말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기준 의원이 등원하자마자 낸 법안은 '대부업법 개정안'이었다. 당시 39%인 대부업 이자율 상한을 30% 수준까지 낮춰 저신용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였다. 국회는 이듬해 대부업 이자율 상한을 34.9%로 낮춰 통과시켰고, 올 들어서는 27.9%로 떨어졌다.
김 의원은 "서민금융도 관심 있는 법안이었고 큰 틀에서는 금융감독체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법을 냈는데 논의가 진행되다가 멈춰 아쉽다. 금융위원회는 어떤 때는 정책을 펴면서 달려가라고 채찍질하고, 어떤 때는 사고 터지면 딱 스톱해서 거꾸로 감독하고 왔다 갔다 한다.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고 더 크게는 종업원들이 추천하는 사람이 금융기관 사외이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법을 냈는데 금융위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는 '소비자 보호'라는 패러다임으로 과감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재벌과 관료들의 입장에서 기득권을 대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권력을 갖고 있는 측에서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변화해) 나가야 했는데 국회에서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정·조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던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문제가 된 시행령 '꼼수 개정' 문제에서 착안해 대규모 재정사업에서 실시되는 예비타당성 조사의 면제 대상을 법률에 직접 명시하고 면제 사유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첫 대표발의 법안으로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2014년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19대 국회 4년 내내 기획재정위에서 활동한 박 의원은 "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논란이 됐던 게 최경환노믹스였다. 빚 내서 경제를 굴리자는 건데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를 늘렸고, 반짝 누리겠다던 경기부양은 안 됐다. 또 '증세 없는 복지'라는 완강한 기조 때문에 조세소위에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창조경제의 경우도 미래부까지 만들었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하드웨어를 만든 것 빼고는 실체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산업화한지 50년,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지 30년이 넘었다. 우리가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을 못 하고 주저앉고 있는데 발상을 바꿔야 한다. 여전히 하드웨어를 키워서 잘 나가는 놈에게 몰아주고 성장률 같은 경제 외형에 초점을 맞추는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여당에 없는 것뿐 아니라, 그나마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진보정당도 몇 차례의 분당이나 현실적이지 않은 이념적 진보의 노선을 걷다가 비전을 제시하는 기능이 과거에 비해 많이 죽었고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했다"며 "20대 국회에서는 생산적인 정치와 정책경쟁을 통해 한국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19대 국회의 심사를 기다리는 각종 법안자료들이 한 상임위원회 회의장 앞에 쌓여있다. 사진/뉴스1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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