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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민적 레임덕' 극복하려면
2016-05-01 11:03:01 2016-05-01 11:56:37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 그럭저럭 정돈된 꼴을 갖추려면/ 뭐든 저절로 되는 법은 없으니.”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의 ‘끝과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20대 총선이 끝난 지 3주 가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선거 결과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민심 빅뱅’이라 부를 만한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안은 박근혜 정부는 또 다시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위기를 슬쩍 넘어가려 한다.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은 했으나 그것에 상응하는 그 어떤 행동도 뒤따르지 않는다.
 
누가 봐도 명백한 ‘정권심판’으로 표현된 민심의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그저 답안지를 외듯 ‘국회심판’이라고 우긴다. 그러니 국무총리가 됐든, 비서실장이 됐든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어야 할 핵심 관료와 참모들 가운데 누구 하나 사의를 표명하지 않는다. 처절한 반성은 커녕 성난 민심을 달랠 최소한의 행동조차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충성심도 뭣도 아니다. 대통령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국정동력을 완전히 상실하든 말든 자리를 지키고 보자는 권력의 사유화 현상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선거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게임이지만, 선거 이후 정부의 태도는 답답함을 넘어 절망감을 자아낸다. 도대체 어디서 이보다 더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통 그 자체인 정권을 마주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최악의 상황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세월호 같은 국민적 대참사를 진영 편가르기 프레임으로 모욕해 국민들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악용했고, 메르스 같은 국가재난에 대한 대응은 정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국회와의 소통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 대통령은 국회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협박으로 일관했다. 대통령이 그러니 장관과 일선 공무원들마저 국회와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회의원들의 정당한 자료제출 요구마저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일이 잦아졌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20대 총선 결과를 받아든 직후 국민께 깊이 사죄하고 핵심 참모와 관료들은 즉각 사의를 표명해야 하며 국민을 슬픔과 절망으로 몰아넣은 세월호특별법 정책기조부터 전면 재조정했을 것이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겸허히 수용한다는 것은 기존의 잘못된 정책기조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뒤따라야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성을 인정받아야 절름발이로나마 앞으로의 국정을 끌고갈 최소한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비판이나 비난이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비판이라도 받을 때가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인은 칭찬이든 비난이든 관심의 영역 안에 스스로를 놓아둘 줄 알아야 한다. 하물며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인 한국에서 대통령의 존재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벌써 비판의 단계를 넘어 냉소와 무관심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부분의 시기에 소셜 빅데이터 언급량 1위에 있었고 그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키워드 언급량은 이제 야당 유력 인사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떨어졌다. 총선 이후 4월14일부터 30일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량은 36만여 건으로 총선 이후 진퇴논란에 휩싸인 문재인 전 대표의 82만여 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안철수, 김종인 대표의 언급량에도 한참 미달한다. 대통령의 존재감 자체가 급격히 주저앉았다. 권력구조가 아니라 국민에 의한 심각한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이럴 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은 여야 지도자들과 국정운영을 논의하기 위한 상시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다. 소통의 모멘텀을 찾고 정치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대통령 자신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쇼라고 해도 그러한 최소한의 장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미우나 고우나 남은 기간만이라도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른바 정국돌파 카드로 내세운 양적완화 추진은 이런 최소한의 기대마저 포기하게 만든다. 내용을 떠나 방법과 형식이 옳지 않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최소한의 현실적 감각을 갖고 있다면 여야정 대화로부터 실마리를 찾는 것이 기본이다. 내용도 그렇다. 이른바 한국형 양적완화는 누가 봐도 재벌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붓겠다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분노한 서민의 외침, 무너져가는 중산층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대통령은 재벌 대기업의 구원투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돌보는 끈질긴 선발투수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 노동절에 ‘오직 노동자를 위한’ 감동적인 메시지를 내놓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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