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인들이 흔히 말하길 "멋있는 주인공은 멋있는 악역이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형편 없는 악역으로 이야기를 재미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바로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악역' 부산시 이야기다.
서병수 부산시장. 사진/뉴시스
약 2년 전 영화 '다이빙 벨'로 촉발된 영화제 측과 부산시 간 갈등의 핵심은 단순하다. 당연직으로 지정된 조직위원장을 누가 맡느냐의 문제다. 현재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된 서병수 부산시장은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시장이 사퇴한 이후 누가 조직위원장을 맡게 되느냐에 대해 양측이 대립 중이다.
영화제 및 영화계는 총회에서 경선 방식으로 위원장을 선출하자는 입장이다. 가장 경쟁력이 있는 인물을 총회에 모인 사람들의 투표로 뽑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부산시는 부산시가 추대한 인물(부산의 대표성을 띠는 사람) 중 한 사람을 총회에서 임명하자는 입장이다. 이번 4.13 총선 전 더불어민주당 비례 공천 당시 논란이 된 '칸막이 공천' 논란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총회를 통해 선출된 인물을 앉히자는 영화제의 입장과 부산시가 임명하는 사람을 앉히자는 입장이 부딪히고 있다.
부산시가 이러한 주장의 이유로 BIFF가 국가 재정을 받고 있으니 행정적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부산시가 말하는 행정적 책임이란 바로 BIFF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손상시킬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BIFF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영화계는 부산시의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영화제가 임시 총회를 열기 위해 제출한 68명의 자문위원에 대해 부산시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자 최근 영화 관련 단체 9곳이 소속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영화인 비대위)는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다. 영화인 비대위 관계자는 "부산시가 BIFF에 지속적인 간섭을 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 내세운 마지막 보루"라고 밝혔다.
영화계의 전면 보이콧에 대해 부산시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규옥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자문위원에 대해 잘 몰랐다. 나중에 보니 영화제에 대한 주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가처분 신청을 했다”며 “가처분 신청을 취소하지 않은 것이 영화계가 과연 보이콧을 할 정도의 사안인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태도는 다소 의뭉스럽다. 앞서 영화계는 부산시에 가처분 신청 취소를 요구했고, 취소하지 않을 경우 보이콧을 할 것이라 분명히 밝혀왔다. 그럼에도 이런 입장 표명이 나왔다는 것은 그간 부산시가 영화계를 무시해왔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부산시는 영화계가 전면 보이콧을 한 이 상황에도 “대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6일에 열린다.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영화제 측 한 관계자에 따르면 혹시 영화제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소한의 기본적인 업무는 추진 중이지만, 업무가 풀가동되고 있지는 않다. BIFF는 워낙 큰 행사라 온 힘을 다해 준비해야만 온전히 치를 수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행사를 못 치를 것이라는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부산시는 "앞으로도 영화제를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올해 BIFF는 최근 10년 간 가장 조촐한 영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색이 없고, 뚜렷한 색깔이 있다는 장점으로 20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의 위상을 갖춘 BIFF는 올해를 기점으로 그 위상이 쇠락할 위기에 처했다. BIFF가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영화제가 사라진다면, 서병수 부산시장을 비롯한 현 부산시 공무원들은 훗날 문화의 역사 속에 영화제를 없앤 악역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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