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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예방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2016-04-27 13:56:05 2016-04-27 14:04:49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오는 6월 개원하는 20대 국회는 어느 때보다 변화무쌍한 글로벌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부터 세계 경제의 위기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한국 경제는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외부적 충격을 겪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평생고용의 안정적인 직장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본격화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한 번의 충격을 던졌다. 그리고 다시 2016년 올해 반복적인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점증하고 있다.
 
1997년 위기에서 한국은 감내할 내부적인 힘이 있었다. 든든한 저축이 가계를 받치고 있었고, 정부 재정도 여력이 있었다. 해외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건실한 공기업도 있었다. 2008년에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 다른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을 때 한국의 주력산업은 오히려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전자,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철강 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글로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올해나 내년 쯤에 외생적인 경제 위기가 밀려오면 한국은 그 파고를 넘어설 여력이 있을까. 가계부채가 작년 기준으로 1천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와 대기업 지원으로 300조원 이상의 국채를 발행해 국고가 비었다. 위기 때 사용할 수 있는 국채의 수단을 이미 소진했다. 기업은 경영활동으로 이자조차 감내하지 못하는 재정 위기에 처해있다. 국가 경제의 3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가 새로운 위기를 버틸 재간이 없어 보인다.
 
위기임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쓰나미가 몰려 오는 것이 눈 앞에 보이지만 뗏목을 미리 만들어 놓지 않으면 넋 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 조선과 해운은 이미 구조조정과 대량실업의 몸살을 앓고 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2013년 경부터 누구나 예상했던 위기가 현실화된다. 단지 올해인지, 내년인지 아니면 3~4년 뒤일지는 모르지만 예고된 위기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 대선이 끝나는 11월 이후 미국의 금리인상은 쉽게 예견된다. 미국 금리가 인상되면 한국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 나가고 환율이 인상된다.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과 대량실업이 우려된다. 중국에서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그 여파를 한국 경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예고된 위기에 대응하는 중장기적인 컨트롤 타워가 없다. 유동적인 글로벌 경제에 취약한 우리나라 구조를 생각하면 위기에 대비할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방적 거버넌스(anticipatory governance)다. 2004년 엘 고어 미국 부통령과 함께 대선을 준비했던 레온 펄스(Leon. S. Fuerth)는 세계적인 제국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 정치에 필요한 예방적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그는 걸프전과 같은 위기가 일어나기 이전에 변화하는 국제정치경제의 상황을 진단하고 예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할 것을 역설했다. 예상되는 변화 요소들을 진단하고, 이에 대한 예방적 체계를 갖추고,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책들을 준비해 두는 것이 1차적 과제였다. 엘 고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아 미국 국가운영 시스템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조지타운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대 국회 하반기에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에 관한 법안이 제출됐다. 한국 사회의 미래 발전 전략을 조망하는 장기적 연구기관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에 대한 기관을 국회 내부에서 설립하자는 취지였다. 정당 연구소들이 한국의 미래 비전보다는 당면한 현안인 선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 정당이나 정파를 넘어선 국가미래비전을 공동으로 모색해 보려는 노력의 일단이었다.
 
이 ‘국회미래연구원’을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설립을 서둘러서, 가깝게는 예고된 위기에 정치가 종합적이고 예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위기는 기업의 대규모 부도와 대량실업을 낳을 것이고, 이에 대해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과 재교육, 재취업의 국가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재교육과 재취업은 지금까지 산업구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이 화두였다. 포럼은 2020년까지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의 신규일자리가 생겨서 전체적으로 500만명의 실업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헌정사에서 한국 의회가 위기를 선제적으로 준비한 선례는 없다. 언제나 사후약방문이었고, 위기 시에 행정부는 수습조차 버거웠다. 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 권한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권한이 확대되는 만큼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길 유권자들은 기대한다. 그 단초는 ‘국회미래연구원’을 설립해서 닥쳐올 위기에 대응하는 ‘예방적 거버넌스’의 구축이 아닐까.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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