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가 당면한 수많은 과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한국형 장기침체와 소득 양극화, 인구 고령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20대 국회는 싫든 좋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각 정당의 ‘10대 정책·공약’을 훑어보면, 20대 국회가 과연 이 세 가지 과제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명쾌한 비전과 해법을 보았다는 느낌이 잘 안 든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는 매우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지만, 국회가 입법 활동을 통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정의 장기적 지속성을 확보하는 과제다. 이에 대해 각 당의 총선 공약들은 무관심에 가까웠다
20대 국회 임기의 한 복판인 2018년부터 우리는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말로만 들어오던 고령사회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긴 뒤부터 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는 가속화되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르게 진행된다. 그 결과 2060년이 되면 생산가능연령(15∼64세) 인구는 2012년 대비 40%가 적어진다. 그저 노인 숫자가 많아지는 정도가 아니다. 총인구의 40.1%가 65세 이상이다. 80세 이상 인구도 전체인구의 17.2%나 된다.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고 그 중 2명은 80세 이상이란 의미다.
이 정도로 고령화된 사회를 우리 세대는 일찍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지금의 대학 2년생들이 65세가 되는 2060년의 우리사회는 고령화 비율이 40%인 사회가 된다.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이나 풍습, 문화, 경제구조와 정치의 양상 등 거의 모든 면에 걸쳐 지금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사회가 된다. 재정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의 세입·세출구조를 그대로 유지해가지고서는 재정도 절대 무사하지 못한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35~54세 인구가 2012년 대비 47%, 즉 거의 절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통화개혁에 관한 논문>(1923)에서 “장기는 현안문제에 대한 그릇된 지침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2060년이면 당연히 장기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구문제는 장기가 아니라 2060년 보다 훨씬 이전에 경제가 망가지는 상황이 도래하기 때문이며, 이를 방지하려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대비에 나서야한다.
2012년 국회예산정책처의 <2012∼2060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재정구조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치지 않는 한 우리재정은 2034년 무렵부터 지속불가능 상태에 도달할 전망이다. 국가부채가 너무 많아져서가 아니다. 국가부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국가부채가 폭발 궤적에 들어서기 때문이다. 국가부채가 GDP의 60%대에 불과했던 스페인이 재정위기에 빠졌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스페인도 국가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재정 악화를 되돌릴 가망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재정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위기를 맞았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대로 2034년 재정이 정말로 지속불가능상황을 맞게 되고, 그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부랴부랴 재정건전화에 나선다면 그때는 상황을 되돌리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2034년의 우리 사회도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의 28%, 생산가능연령 인구의 46%에 달하는 등 지금보다 훨씬 고령화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고령화된 사회에서 재정건전화의 가시적 성과를 낼 만큼 세입을 늘리고 세출을 줄이기란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부담이 너무나 과중해진다.
35∼54세의 연령층이 18년 뒤에도 지금처럼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그룹이라면 2034년 세금을 가장 많이 내게 될 그룹은 지금의 17∼36세의 젊은이들이다. 만약 재정건전화를 계속 미루다가 2034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재정건전화에 착수한다면 가장 많은 부담은 지금의 17∼36세의 젊은이들과 그보다 나이가 어린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 그리고 갓난아이들, 그리고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지게 된다.
반면 기성세대, 특히 현재 나이가 50대 후반 이상인 사람들은 부담을 질 일이 별로 없다. 이들은 평생 내는 세금보다 재정으로부터의 혜택이 더 많은 세대들이다. 재정이 지속불가능해지는 2034년이 되면 이들의 대부분은 더 이상 세금을 낼 능력이 없는 70대 후반 이상의 고령층이 되어버린다. 무슨 수로 이들이 미래세대의 눈에 재정으로부터의 혜택만 누리고 부담은 다음 세대로 미뤄버린 ‘먹튀 세대’로 비쳐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상황을 맞게 된다면 우리 사회의 세대간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첨예하고 노골적으로 악화될 것이다.
노후대비는 노인이 되기 전에 마쳐야 하듯 고령화 대비도 고령사회에 진입하기 이전에 제도적 기반을 다 마무리 해 놓아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조정 부담도 줄어들고 세대간 갈등요인도 적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20대 국회는 충분한 세입기반을 확충하고 불필요한 지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을 완성할 시대적 책무를 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령화와 관련해 이번 총선에서 제시된 각 당의 공약은 노인층을 위한 혜택을 더 늘이겠다는 약속을 하는 정도였다. 표를 의식해서였을까?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을 유지하고 세대간 부담을 형평하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나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수를 늘이겠다는 정당은 있었지만 자신들이 공약으로 마련한 지출 확대를 보전하기 위해서였지 장기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국가채무를 갚아나가기 위한 용도는 아니었다.
20대 국회의 어느 시점에서는 고령화 문제가 반드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으로 본다. 아무쪼록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 경제의 장래를 위해, 그리고 기성세대가 ‘먹튀 세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기 있고 현명한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국가미래연구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은평시니어클럽’ 회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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