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일본의 강소기업, 장기불황을 이겨낸 힘은 '현장'
"무조건적 혁신보다 현장에서 미세한 차이를 찾아라"
2016-03-24 18:19:51 2016-03-24 18:19:57
[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연초 중국으로부터 촉발된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기업들은 고민을 넘어 위기감에 직면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에 수출길마저 막히면서 도무지 활로가 보이질 않는다.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조선, 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은 물론 전자, IT, 자동차 등 첨단산업도 좌표를 잃고 있다. 일본의 부활도 간단치 않다.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이 일본의 장기불황을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우리보다 앞서 불황의 늪을 헤쳐 나간 일본의 사례는 분명 타산지석 이상의 교훈이 될 수 있다. 어두운 저성장의 터널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기업들이 시사하는 바를 쫓았다. 불황을 넘어 강소기업으로 나아가는 밑거름 속으로 들어가 본다.
 
싸지도 않은데 팔린다'무인양품'의 힘은 '현장'
 
최근 일본에서는 '혁신'보다 '현장'이라는 단어가 경영진 사이에서 인기다. 혁신이라는 단어의 연호가 기업의 현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경영자가 '혁신'에 매몰돼 있다 보면 현장에서 일하는 대다수는 주인의식 없이 수동적에 머물게 된다는 것. 일본 경영서 '현장력'의 저자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엔도 이사오는 "경영진들이 혁신이라는 말을 많이 할수록 직원들은 속으로 ‘혁신’과 자신과는 관계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혁신은 극소수의 대단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혁신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토요타를 비롯한 대기업은 역동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일 작은 개선·변화, 꾸준한 노력만으로도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는 기업이 존재한다. 무인양품이 대표적이다. 무인양품은 1989년 설립된 이후 장기버블 속에서도 일본 경제성장률과 반대 곡선을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성장률을 보여줬다. 수년전부터는 동남아와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면서 26개국 300개로 지점을 확대했다. 지난해에는 영업이익률이 역대 최고인 17%까지 올라갔다. 2001년 중반 38억엔 적자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적자의 무인양품은 어떻게 V자 회복을 할 수 있었을까. 외부에서는 콘텐츠와 브랜드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현장력을 최대 경쟁력으로 보고 있다. 무인양품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결정은 구조조정 대신 기업문화를 바꾸는 것, 전형적인 5S 활동이었다. '정리, 정돈, 청소, 청결 그리고 습관화'를 뜻하는 5S 활동은 일본식 경영혁신과 현장관리의 대명사로 통한다. 현장에 강하다는 일본 기업들이 활동을 더욱 강조하는 이유는 오히려 어렵고 새로울수록 현장의 마음가짐 자체가 혁신의 기본이 된다는 의미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무인양품
 
무인양품은 위기 당시 '아침 8시에 인사하기'로 기업 문화를 바꿨다. 우선 인사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마쓰이 무인양품 전 회장은 "아침 8시부터 회사 1층 현관에 서서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시작했다"며 회장인 자신도 두 달에 한 번은 당번 순서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인사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으로, 그것을 할 수 없는 조직은 무엇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믿음이었다. 
 
이어 실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는 ‘노 잔업데이'다. 매일 오후 6시30분에 퇴근하는 제도다. 업무량을 줄일 요량으로 시작된 계획이었지만 아침 인사보다 더 어려웠다. 무인양품은 인센티브 제도까지 동원했다. 이를 통해 무인양품이 의도한 것은 특정 개인의 성공 체험을 보편화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우수한 직원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다 보면 그 장점에만 매몰되고, 이를 토대로 매장 디스플레이가 달라지는 등 전체 구조에 뜻하지 않은 변형이 올 수 있다는 우려였다.
 
또 유능한 직원으로 다수의 평범한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장기적으로 조직에는 유리하지 않다는 결론도 한몫했다. 가령 매장의 실적이 나쁘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고 "점장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얘기되기 쉽고, 그 결과 점장이 여러 번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악순환이 가져오는 구조적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마쓰이 회장은 “성공 체험이 강렬할수록 기업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힘들어지고 하나의 성공경험은 시대가 바뀌면 회사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되기 쉽다”며 “이를 바꾸려면 시간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인양품의 성공신화는 개선사항과 고객의 요구사항을 바로 기록한다는 데 있다. 무인양품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주의해야 할 사항과 고객들의 개선사항을 기록하는 점포 운영 매뉴얼인 '무지그램(MUJIGRAM)'을 운영한다. 이를 실용화하기 위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요구를 흡수하는 '개선제안 리스트', 다른 하나는 매장에서 고객으로부터 전해진 의견 등을 입력하는 '고객 시트'를 구체화했다. 상시 업무에 쫓겨 현장에서 주의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간이 없거나 직원들의 열정과 관심에 편차가 있는 등 어려움도 뒤따랐다. 하지만 시행착오와 연구를 거듭하면서 현장에 정착시켜갔고 '무지그램'은 매장의 디스플레이 방법에서 접객 및 주문에 이르기까지 점포 운영에 관한 모든 문서가 망라됐다. 페이지 수만 2000페이지가 넘는다. 현장의 모든 Q&A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무지그램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약 5년이 걸렸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각 매장의 매출이 고르게 성장을 이뤘고 직원들의 만족과 참여도 역시 훨씬 높아졌다. 고객 의견이 반영된 제품이 히트를 친 사례도 나왔다. 무인양품이 고객 의견을 반영해 만든 '빈의자'는 역대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혁신이라는 공허한 외침을 이어갈 것이 아니라 작은 미세한 차이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좌우된다"며 무인양품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현장에서의 꾸준한 개선·개량을 유지하되 지혜를 공유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결론이었다. 
 
주어진 자리에서 핵심경쟁력 키워라 
 
현장에 집중해 불황의 늪을 탈출한 일본기업의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수 있는 1989년부터 2013년 사이에 매출은 3.1배, 순이익은 15배,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은 무려 5배 정도 증가한 기업이 있다. 바로 자전거의 변속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시마노다. 웬만한 자전거의 변속기는 시마노 제품일 가능성이 클 정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전세계 경주용, 산악용 자전거 변속기의 절반 이상이 시마노 제품이다. 
 
시마노는 금속가공 기술을 자전거 부품 분야에 특화해 나갔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매우 편리한 변속기를 개발했다. 이 변속기는 시마노 토털 인테그레이션(STI) 시스템이라고 불렸는데, 자전거를 운행하면서 핸들에 장착된 레버로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이는 변속 레버와 변속기·체인·기어를 일체화할 수 있는 기술로, 시장의 표준기술로 도약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금속가공에서도 기존의 열간 단조를 냉간 단조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비용도 대폭 절감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매를 먼저 맞은 일본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김도훈 일본기업연구센터 연구원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무조건적인 확장이나 혁신보다 후발 기업이 따라가기 힘든 명확한 핵심 역량을 가지고 치열한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프리즘’의 저자 전영수도 "일본이 절치부심의 10년을 보낼 때 한국은 유력한 성장모델로서 각광을 받았다"면서 "지금은 미국식 발전표본으로 바꿔버리면서 일본을 도외시하고 있지만 다시 전통과 혁신을 결합한 일본 모델을 참고할 때“라고 말했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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