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6자회담 한·미 수석대표 간 회동 이후 한국 측 수석대표는 “무엇보다도 철저한 제재 이행에 집중해야 하며 대화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라면서 “(한·미·중·러·일) 5개국 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중·러와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계속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화를 하기에는 때가 이르다고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언젠가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말이다. ‘도발’의 당사자와 대화를 해야만 문제의 본질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최악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남·북 간에는 비공식 비밀접촉이 진행되었으며, 지도자들은 서로에게 예를 갖추었고, 비밀특사가 교차 방문했으며, 심지어 선물도 교환했다.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모든 정권이 그렇게 했다. 현상적으로는 무장 침투가 발생하고 일촉즉발 위기가 있었지만, 최고 지도자 간에는 비공식 채널이 가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비공식으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대화 채널을 통해 공개적으로 소통했을 뿐이다.
과거의 비공식 접촉을 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 이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통치 행위일 수 있었다. 결국 냉전기의 군사적 대결 구도 속에서도 남·북 사이에 국지전 도발이 적었던 것은 바로 이런 비공식적인 노력의 결과였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북 간에는 공식·비공식이 모든 채널이 막혀있다. 사소한 위기가 곧바로 전쟁으로 이어진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다 북한의 쏟아내는 발언의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과거 그 어떤 정부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이러한 표현들을 사용한 적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말 중에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아라”(非禮勿言)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남·북 간에는 예의는 고사하고 ‘전무하고 후무해야’ 할 언어들이 횡횡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선언 다음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개성공단 폐쇄를 선언하면서 내뱉은 말들과, 지난 8일 남측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안이 발표된 후 10일 나온 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의 표현들은 참혹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웠다. 여성 대통령을 비난하는 표현의 수준이 인간으로서의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말았다. 조평통 대변인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내뱉어진다는 것은 지금 정부와는 통일을 논하지 않을 것이며, 결단코 관계를 개선하지 않겠다는 ‘발악적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말을 듣고도 우리 정부는 북한과 대화하자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6자회담 우리측 대표는 아직은 대화를 언급할 때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상 지금 남·북 정권 사이의 대화는 물 건너 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한·미·중·러·일 5자회담 방식 언급은 불가피한 최선책일 수도 있다. 남은 임기 2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대 북제재에 집중하고 대화는 차기 정부에 넘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적 행동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남·북 간의 불편함은 주변국의 대북 접촉에도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는데, 남북관계 악화는 미국의 운신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며, 미국 역시 대선 국면으로 들어서면 ‘골칫덩어리 북한’에 접근할 여력이 없다. 대선 이후에도 새 정부가 안정될 때까지 당분간 북미관계에 변화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북한은 더 강력한 도발적 행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시기상조의 시기’를 지나도 출구전략을 찾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정부 시기에 발생한 두 차례의 핵실험은 이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렸다. 차기 정부에게 기대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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