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전문가칼럼] 한반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북·미·중 심상치 않은 움직임…한국 방관자적 태도 일관 우려
2016-03-06 11:38:17 2016-03-06 11:38:17
휴전 중인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은 지속적으로 제의되어 왔다. 1980년대부터 북한은 휴전 당사국만이 참여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요구를 해 왔다. 휴전 당사국들은 미국, 중국, 북한인데 북한이 중국의 위임을 받아 공산측을 대표하게 되면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처럼 남한을 배제하려는 북한의 고집이 아직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요구를 남한과 미국에 대한 평화공세로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남한이 휴전협정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북·미 평화협정 방침을 봉쇄하기 위해 남한은 평화협정보다는 평화체제라는 용어를 선호해 왔다. 개념적으로 평화협정은 단발적으로 협정을 체결한 후 체결국들이 협정 내용을 준수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이고, 평화체제는 상시적인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구조 내에서 대화와 협력을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둘은 상호 연관되는 측면도 있다.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고, 평화체제라는 큰 틀을 만들고 그 내부의 한 부분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될 수도 있다.
 
평화체제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같은 안보협력체와 유사하다. CSCE는 헬싱키 의정서에 의해 1975년 동·서 유럽국가들 거의가 참여한 안보협력체였으며, 유럽의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CSCE는 유럽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비롯해 경제 문제, 국경선 문제, 군사 문제까지 거의 모든 안보 분야에 대해 유럽국가들이 대화하고 협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이 협력체의 키워드는 ‘신뢰’였으며, 정치적 신뢰 구축으로부터 시작해 군사적 신뢰구축까지 이어졌다.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유럽재래식무기감축협정(CFE)을 체결해 실질적인 군비 축소까지 나아갔다.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수립되면, 유럽에서 CSCE가 수행한 역할을 동북아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신뢰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한반도 평화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느냐, 평화체제를 수립하느냐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대체로 남한이 주장하는 평화체제를 선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1996년 4월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는 북한 핵문제가 1994년 10월21일 북·미 제네바합의에 의해 일단락되고, 미국과 북한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중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북한의 협력에서 소외되어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미 관계가 남·북한 관계를 앞서면 안 된다는 태도를 강하게 보이고 있었다. 당시 클린턴은 관련 국가들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남한의 입장을 살려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4자회담을 제의했다. 그 대신 미국은 남한의 방해를 받지 않고 북·미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또 다른 사례는 6자회담의 결실로 발표된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2007년의 2·13 합의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언급한 것이다. 북한의 핵 불능화를 조건으로 5개국이 제공할 조치들 중에는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이 문제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중국은 이에 대해 적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하면 한반도 문제는 거의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봐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너무 방관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정부는 우리가 평화협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만 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 소극적인 태도다. 그동안의 입장인 평화체제를 고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고, 만약 북한의 비핵화를 조건으로 북·미 평화협정이 추진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대응책을 마련하고 이에 상응한 외교를 해야 한다.
 
김계동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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