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설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말 그대로 황금연휴. 설이라고 해도 특별히 복작거릴 일 없는 우리 집은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 가족들하고 오사카로 자유여행 가.”
“오사카는 먹방하고 폭풍 쇼핑이다. 알지?”
오사카에 간다고 얘기했을 때 친구들의 십중팔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오사카야 예전부터 쿠이다오레(‘음식사치로 파산한다.’라는 뜻)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식도락, 좋다. 그래도 볼거리를 조금 더 찾아보기로 했다.
패키지여행, 자유여행을 막론하고 오사카에 갔다 온 사람들의 인증샷을 보면 구리코상(グリコさん) 전광판, 오사카성, 유니버셜스튜디오는 꼭 들어있다. 이 세 곳이 오사카의 랜드마크 쯤 되는 것 같다.
사진/바람아시아
왼쪽: 오사카성, 오른쪽: 히로시마성
언뜻 봐서는 히로시마 성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도시락을 싸들고 현장학습을 온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다들 간다고 하니까 오사카성을 일정에 집어넣었었다. 조선시대의 감사들이 살았던 관저처럼 일본 각 지에 있는 것이 성이고, 오사카로 오기 전에 히로시마성도 봤던 터라 썩 구미가 당기는 곳은 아니었다. ‘오사카에 왔다는 인증샷 정도만 찍으면 되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막상 오사카성에 들어가 보니 그렇게 가볍게 넘어갈 곳은 아니었다.
오사카성의 핵심 건물인 천수각의 내부는 박물관처럼 되어있다.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대를 먼저 보고 차례로 내려오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생과 오사카성에서 있었던 전투를 관람할 수 있게끔 해놓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진/시사상식사전
관람에 앞서 급하게 그를 떠올려보기로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의 주범”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평범한 한국인인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일본인들은 보편적으로 그를 일본의 전국시대를 통일한 장군으로 떠올리는 것 같았다. 오사카성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이하 히데요시)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성이자 전쟁의 거점이었다.
오사카성은 1583년에 히데요시에 의해 축조된 이후 ‘오사카 여름 전투’로 인해 모두 소실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이하 이에야스)가 새로이 오사카성을 만들었지만 그 역시도 1665년에 소실되었다. 지금의 형태는 이에야스의 천수각에 히데요시 시절의 천수각을 본 떠 온 것을 올린 것이라고 한다.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그의 수하이자 사돈지간이었던 이에야스는 세력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도쿠가와가(家)가 도요토미가(家)에게서 권력을 탈취하기 위한 전쟁이 바로 오사카 여름 전투였다. 우리는 치열했던 오사카 여름 전투를 전시해놓은 5층으로 향했다.
오사카 여름 전투의 피해를 설명해주던 영상. 사진/mistral2님의 블로그
전시장에는 중요한 부분마다 영상과 함께 한국어, 중국어, 영어 자막을 보여주었고 덕분에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영상에서는 오사카 여름 전투의 피해를 상세히 보여주고 있었다. 전투로 인해 수탈당하는 여성의 모습까지도.
“어느 시대나 전쟁의 희생자는 약자다.”
수탈당하는 여성의 모습을 묘사하는 전시관의 자막에는 이런 말이 써져있다. 오사카를 방문하기 전에 들렸었던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에서도 이런 비슷한 문구를 보았었다. 지금은 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까지 가지게 된 일본이지만 ‘평화’헌법을 가진 나라에 걸맞게 ‘전쟁은 절대 나서는 안 되며 뼈아픈 고통을 겪었던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의식이 널리 퍼진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사진/바람아시아
자신들의 나라 안에서 벌어졌던 전투의 피해에 대해서는 전시관의 한 층을 쓸 만큼 의 의식을 가진 나라가 왜 다른 나라에 준 피해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건지. 일본인 여성만이 약자이고, 다른 나라 여성은 약자의 축에도 못 낀다는 소리인가.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작은 소녀상 확산 운동 후원 페이지. 사진/텀블벅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
여행을 가기 얼마 전에, 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작은 소녀상’ 확산 운동의 후원자들을 모집하는 중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일본 정부가 준다던 100억을 거부하고 우리 힘으로 100억을 모으는 것과 일본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소녀상을 작게 만들어 더욱 퍼뜨리는 것이 운동의 목표였다. 오는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는 벌써 목표액 1억의 164%(2월 16일 기준)를 초과 달성하였다.
이렇듯 “돈 먹고 떨어져라.”하는 식의 편치 않은 합의에, 지난해 국민들의 모금으로 어렵게 조성된 공양탑을 찾아가는 길은 폐쇄되었다. 거기다 동해의 일본해 표기 문제와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도 여전히 시끄럽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바다와 나비' 중 일부 발췌-
마흔 다섯의 나비들이 시리다. 오천만의 나비들이 시리다. 8층부터 1층까지를 돌며 ‘그들의’ 히데요시를 보고 들었다. 그들에게선 히데요시가 벌인 임진왜란의 고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장군님이니까. 새삼 그들의 이토 히로부미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우리의 이토 히로부미는 분통한데.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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