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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중앙은행의 아브라카다브라
2016-02-19 06:00:00 2016-02-19 06:00:00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중세시절에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면 사람들은 열병을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 병과 재앙을 물리치길 염원했다고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 마법의 주문, 바로 ‘아브라카다브라’다. 아브라카다브라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의미를 가진 헤브라이어(語)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현재 글로벌 경제가 상당히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급격히 추락한 글로벌 경기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선진국과 신흥국 정부가 시장개선을 내놓는 다양한 처방전도 도무지 약발이 듣지 않으면서다. 만성질환이 돼버린 탓이다.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위기의 치료를 위해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주문을 가장 큰 소리로 외우는 사람은 아마도 드라기(Mario Draghi)와 구로다(黑田東彦)일 것이다. 드라기와 구로다는 중병에 걸려있는 유럽경제와 일본경제를 살리기 위해 상당히 위험하고도 과감한 정책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대규모 양적완화는 물론 마이너스 금리의 적용과 같은 극단적인 통화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카다브라와 극단적 통화정책 간에는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먼저 사람들의 믿음이 결과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강력한 의지가 불치병을 이겨낼 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한다. 말한 대로 될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신비스러운 주문도 효력을 가질 수 없고 극단적 통화정책은 그저 신기루로 사라져버릴 것이다.
 
둘 모두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도 공통점이다. 잘 쓰면 마법의 주문이 되지만, 잘못 쓰면 흑마법의 주술이 돼버린다.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는 아브라카다브라를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주문으로 사용했다. 병과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바램의 주문을 한순간에 치명적인 흑마법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같은 극단적인 통화정책은 원활한 자금흐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금흐름의 쏠림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위기상황에 대한 극약처방이 아니라 그냥 극약이 돼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드라기와 구로다가 외우는 주문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생각해 본다. 안타깝지만 점차 흑마법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앞선다. 드라기와 구로다의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두 사람 본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신뢰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의 급진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하다.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로 ECB는 위기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들을 지나치게 남발했다. 아베노믹스의 기치 하에 BOJ도 비슷한 정책적 노선을 따랐다. 하지만 시장의 모습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정책의 효용성에 관한 회의감만 더 강해지고 있다. 정책성공의 중요한 기반인 신뢰확보에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ECB와 BOJ의 통화정책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간벌기보다는 나의 문제를 다른 국가로 떠넘기려는 의도가 강해보이기 때문에 흑마법의 색채가 더욱 뚜렷하다. 통화정책은 국가경제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거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에 적합한 수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극단적인 통화정책을 위기해결을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한다면 의도한 정책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더군다나 의도된 정책목표가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주변국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는 내가 가진 곤란함을 다른 곳에 떠넘겨서 문제를 해결하는 흑마법 주술의 전형이라 봐야 한다.
 
의학이 발전해 우리는 몸이 아플 때 더 이상 마법의 주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바이러스를 없애는 약을 먹거나 수술을 받는 것이 제대로 된 치료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가 앓고 있는 중병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카다브라만 외칠 때가 아니다. 정확한 진단과 제대로 된 수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수술의 고통은 크겠지만 이것만이 가장 확실한 처방이 될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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