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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갈매기를 잡는 법
2016-02-15 06:00:00 2016-02-15 06:00:00
'열자(列子)'의 '황제편(皇帝篇)'에 해옹호구(海翁好鷗)라는 고사가 있다. 해변가의 갈매기 떼들과 매일 더불어 노니는 사람이 갈매기를 잡아 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다음 날 해변으로 갔으나 갈매기들이 머리 위를 맴돌 뿐 내려앉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바다의 노인이 갈매기를 좋아하다로 직역되는 이 고사는 평소 친한 갈매기도 잡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면 이를 눈치 채고 접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잡고자 하는 마음은 의도이며, 이는 욕심이나 야심 등에서 생겨난다. 갈매기로서는 위험이다. 욕망을 비운 잔잔한 마음의 상태인 무심(無心)과 무위(無爲)를 통해서만 갈매기와 융화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윤기 선생은 그의 단편소설 '갈매기'에서 이 해옹호구 우화를 인용하며 항심(恒心)과 기심(機心)을 끌어낸다.
 
"마음에는 늘 중심을 오로지 하여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으니 이를 항심(恒心)이라고 하거니와, 기회를 엿보아 사특하게 움직이는 교사한 마음이 있으니 이를 기심(機心)이라고 한다. 네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그것은 갈매기에게 물을 일이다."
 
매일 아침마다 갈매기와 노니는 사람의 마음은 항심이었다. 갈매기를 잡고자 하는 그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는 무심의 마음이었기에 갈매기는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탁을 품은 사람의 마음은 의도를 가진 기심이었기에 갈매기는 높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갈매기는 항심과 기심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우리 시대의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CSR)을 수시로 강조한다. 특히 그룹 총수나 CEO들의 신년사에 이 CSR은 매년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CSR을 강조하는 기업의 언어는 맥락상 항심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항심의 CSR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먼저 배신당하곤 한다. 기업들이 올해 CSR 조직과 예산과 사업 등을 축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떤 기업은 그들의 핵심적인 사회공헌 사업 수행 인력을 1/4 수준으로 줄였다고 한다. 전반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비용절감이 가장 큰 이유다.
 
'유항산(有恒産) 유항심(有恒心)'이라고 했다.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 상편(上篇)에 나오는 말이다. 안정된 생산활동이 있어야만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뒤집으면 '무항산(無恒産) 무항심(無恒心)'이다. 경제적 곤궁은 항심이라는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적(敵)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제위기에 직면해 비용절감 논리를 내세우는 기업의 입장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항심만을 고집하는 건 지나치게 당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실 기업은 그 특성상 기심에 더욱 유혹되기 쉬운 조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용절감과 단기적 성과주의라는 논리에 CSR이 희생되어도 될 만큼 간단한 가치가 아니라는 점을 기업은 반추동물처럼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미래다'는 메시지로 CSR을 추진해 오던 두산그룹은 두산인프라코어의 무자비한 인력해고 단행으로 신뢰와 명성과 진정성을 순식간에 잃고 말았다. 불가피한 해고에도 CSR의 정신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
 
CSR은 기업이 공동체의 지속가능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장기적 비전이며 부단한 실천 과정이다. 때문에 항심이 기본이다. 해옹호구와 이윤기 선생의 '갈매기'에서는 항심을 역설하고 있다. 이 항심만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심을 필요로 할 때가 더욱 많다. 역설적이지만 항심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말이다. 맹자의 '유항산 유항심'은 이를 말해 준다. CSR이 경제적 성과로도 연동되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심만 그득한 사회는 끔찍한 정글 자본주의다.
 
필자는 항심의 반석 위에서 기심이 발휘될 때 CSR이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른 바 전략적 CSR(Strategic CSR)이다. 공유가치창출(CSV)는 그 방법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전략(기심)은 원칙(항심)을 훼손해서는 안되며 원칙을 강화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 원칙을 손상시키는 전략은 간계(奸計)의 영역이다. 항심은 먼 데를 바라보며, 기심은 눈 앞을 바라보는 일이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병서인 '육도·삼략'은 "현실의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도모하는 자는 수고로우나 공(功)이 없고, 먼 것을 버리고 가까운 것을 도모하는 자는 편안하기는 하나 끝이 있다"고 말한다. 갈매기는 항심만으로도, 기심만으로도 잡을 수 없다. 항심의 굳건한 원칙 하에 수행되는 기심으로 가능하다. 당신 기업의 CSR 경영이 어떤 마음인지는 갈매기에게 물어볼 일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KSRN 집행위원)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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