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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추미애 "통합이 정치의 원천, 지지자들 뜻 헤아려야"
"정권 잃고 경제민주화 적기 놓쳐…새해에는 희망 공유하는 세상 됐으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의회정치 중심에 서고 싶다"
2015-12-29 13:52:35 2015-12-29 13:52:39
최초 수도권 선출직 4선 여성 의원, 판사 출신 최초의 여성 의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57) 최고위원은 누구보다 '최초'라는 말이 여러번 붙는다. 지난 1996년 총선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을 때에는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으며 '차세대 지도자'로 꼽혔다. 유세단장으로 정권 교체의 중심에 서서 '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추 최고위원은 20년 동안 한 번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 '지지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기억했다. 민주주의와 민생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통합이라는 가르침을 되새겼다. 추 최고위원은 "정권 교체의 불씨를 살렸던 20년 전에도 야당은 무기력했다"며 "힘을 합쳐도 모자라는 시기다. 2016년 붉은 원숭이의 해에 지혜를 모아 경제민주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최고위원. 사진/뉴시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양김시대'가 재조명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DJ를 어떤 정치인으로 규정하는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말씀을 남겼다. 항상 정치가 앞장서면서도 국민 손을 놓치지 말고 반 보만 앞서 가라고 했다. 국민과 지지자들의 뜻을 헤아리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마음속에 균형과 중용의 도를 가지면서도 국민을 위해서는 시대적 양심을 따라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얘기였다. 실천주의적인 정치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산, 계승할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하다못해 벽에 대고라도 외쳐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자신의 직분이 무엇이든 누구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지세력을 강조했다. '나를 인정해주고, 정치 지향점을 이해해주는 지지세력을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지지자의 힘, 더불어 통합이 정치의 원천이자 힘이라고 말씀하셨다.
 
-통합이라는 말이 요즘 야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민주주의와 민생이 위기다. 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다. 통합해서 힘을 합쳐도 모자란다. 이럴 때 분열한다는 건 말로는 DJ 정신을 얘기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굉장히 안타깝다. 지지세력을 위해 통합해 정치를 해야 할 때 분열하면서 김 전 대통령을 언급하고, 그의 정신을 기린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야권에서 인재 영입 경쟁이 한창이다. 판사이던 20년 전 인재 영입 차원에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기억을 떠올리면, 그때도 정권 교체의 불씨를 살려야 할 시기였다. 당시에도 야권 지지세력이 갈라져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무기력했다. 불씨를 살리고, 통합의 중심추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김 전 대통령이 불씨를 살리겠다고 몸부림칠 때 그 옆에 가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치를 관둔다고 해놓고, 약속을 깼다는 비난 때문이었다. 욕 먹을까봐 두려웠던 거다.
 
-다들 두려워하는 곳에 뛰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기성 정치인들은 자신들도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주저했다. 난 생각이 달랐다. 정치가 실종되고 야당이 무기력할 때 김 전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봤다. 모두가 두려워할 때 망설임 없이 나섰다. 고민하지 않고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래서 도와 달라는 제안을 선뜻 받을 수 있었다. 이심전심으로 맞았던 셈이다.

-대선 때마다 굵직한 역할도 맡았다. 승리와 패배를 곁에서 지켜본 셈이다.
 
1997년을 떠올리면, 다들 정권 교체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자포자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권을 바꾸고, 재창출하는 동안 1분 1초를 아껴가면서 설득하고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지지세력을 응집시키는 역할이 시대를 만든다. 지난 정치 인생을 되돌아봐도 최전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고, 많은 성과를 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

-주된 성과를 꼽는다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입법 발의를 많이 했다. 인권 시대를 연 제주 4·3 특별법, 소비자 시대를 연 제조물책임법, 우리 사회 부패를 청산하고자 했던 부패방지법이 그 예다. 단순히 의원 배지를 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대를 개척하고 주도하는 힘을 키우고 싶었다.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다.
 
-16년 전 대표 발의한 제주 4·3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희생자 결정 무효소송 등 흔들기가 계속됐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이같은 '아픈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뉴라이트 교과서는 제주 4·3 피해자를 반란세력으로 규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8년 뉴라이트의 이른바 '대안 교과서'가 나왔을 때 "이 책의 출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고, 후일 또 하나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고, 독재를 긍정적으로 쓴 책을 호평했다. 이제는 공권력으로 국정화를 밀어붙인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고 했던 말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이다. 20세기의 안경으로 21세기에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 인생 20년 가운데 앞선 10년은 여당, 이후 10년은 야당 생활을 했는데.
 
정권을 놓친 2007년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때를 생각해보자.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빈부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기업이 잘되면 개인소득도 올라갔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소득이 늘어나도 가계소득이 늘지 않았다. 기업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국민 혈세로 막아낸 셈이다. 정작 국민은 가계부채에 허덕여도 빚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기업이 빚진 걸 막아주면서 국민은 빚지는 신세가 됐다. 그때 정권을 놓치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해냈어야 했다. 그러나 실패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도 수출 위주의 단기 처방을 내지만 민생 침체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정권을 놓쳤던 그때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적기였다.
 
-지난 2011년 '중산층 빅뱅'이란 책을 펴내면서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양극화가 아예 굳어졌다. 지역을 다니면 민생 경제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점을 피부로 느낀다. 시장만 가도 경제 한파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지 알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다. 흔히 원숭이를 지혜와 재능의 상징이라고 한다. 지혜를 모아 경제민주화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다. 그동안 대기업 위주의 일방독주,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한 쪽만 키웠다. 다른 쪽은 버리고 간 셈이다. 중국과 경쟁하고, 경제 선진국에 도전장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그렇게 갈 수 없다. 공동체 안에서 상생을 실현하지 않으면 도전할 힘 자체가 안 생긴다. 함께 희망을 공유하는 세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었다. 앞으로 최초로 열고 싶은 길이 있다면.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척박했던 한국 여성정치사에 하나의 롤모델이었다고 자평한다. 앞으로도 길을 여는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직접 말하기 어렵지만 여러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의회 정치의 중심이 되는 국회의장도 그중 하나다.
 
이순민·박주용 기자 soonza00@etomato.com
 
지난 2007년 8월2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찾은 추미애 최고위원이 김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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