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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의 테마여행)근대문화 1번지, 목포로 떠나는 겨울여행
2015-12-20 12:46:27 2015-12-20 12:46:27
서설이 내린 남도의 포구는 마치 한 폭의 수묵담채처럼 고요하고 담담하다. 단조로운 겨울 풍광의 담담한 필선 안에 소박하고도 짠한 삶의 풍경은 묘한 대조로 어우러진다. 나지막한 유달산의 산등성이에 흩뿌려진 눈발이 아스라하고, 남도 특유의 알싸한 사투리가 배인 포구의 삶에는 여전히 짭쪼롬한 소금기가 묻어난다. 정신이 퍼뜩 날 만큼 톡 쏘는 홍어의 맛과 비릿한 항구의 삶, 가슴 짠한 애잔함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곳이 바로 목포다. 눈발이 흩날린 유달산에 올라 지나간 옛 시절의 빛깔을 반추하고, 이제 다시 햇살이 깃드는 옛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보는 목포항까지 에돌아가는 여정이다.
 
서해 목포는 우리나라 첫 번째 항구도시다. 남도의 짭쪼름한 맛이 배어있고, 100년의 근대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항구도시 목포로의 여행이다. 한 폭 수묵 풍경만 같은 유달산 아래 다소 빛이 바랜 도시 풍경은 100년전 흑백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앞바다에 자리한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목포의 별미인 홍어맛과 항구의 활력을 찾아 떠나는 겨울여행이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풍경(사진=이강)
 
민족정기 품은 유달산의 수묵풍경
 
한 폭 수묵풍경 같은 유달산에 오른다. 심호흡 한 번이면 단숨에 올라서도 될 만큼 야트막한 산경이 다소 빛이 바랜 도시 목포와 어울린다.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다하여 끝단에서 솟구친 것이 바로 유달산이다. 높이 228.3m의 유달산은 노령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 땅끝의 나지막한 산이다. 노적봉 코스로 오르는 길목에 서자 이 충무공의 동상이 앞바다와 목포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보고 있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장군이 돌 위로 거적을 쌓아 군량미처럼 보이게 해 왜군들의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눈발이 살쩌기 흩날린 언덕에서 앞바다를 한 눈에 굽어보고 있는 충무공의 모습이 늠름하다. 장군의 발 아래로 목포시내의 작은 골목길, 그리고 아스라한 남도 앞바다의 풍광까지 한 폭의 절경이 펼쳐진다.
 
유달산(사진=이강)
 
조금 더 오르자 '목포의 눈물'을 노래한 가수 이난영의 노래비와 목포시내의 전망 포인트인 유선각이 나타난다. 유선각은 유달산의 정상인 일등바위로 오르기 전에 쉬어가는 쉼터로 안성맞춤이다. 다닥다닥 구획된 구도심의 모습과 앞바다의 풍경에서 애잔한 옛 시절의 모습이 그려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일등바위로 오르는 산등에 올라서니 남도의 항구풍경과 유달산의 기암절벽이 가히 절경으로 펼쳐진다. 다시 바위 사잇길을 지나면 일등바위다. 먼저 도착한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잔설이 내려앉은 수묵의 설경에 흠뻑 취해있다. 멀리 목포 앞바다와 푸른 다도해의 절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 순간이다. 절로 환호성이 터진다.
 
새하얀 눈발이 흩날린 유달산의 풍경은 마치 남도 전통수묵화의 맥을 이어온 남종화(南宗畵)를 연상시킨다. 대체로 수묵과 담채를 사용하여 남도 지역의 바다와 섬, 그리고 아담한 야산과 그 속에 있는 삶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남종화의 화풍은 간일(簡逸)하면서도 온화하다. 특히 진도 출신으로 목포에서 뿌리박고 살았던 남농 허건(南農 許楗)의 작품에는 자연과 삶에 대한 관조가 깊이 배어 있는데, 유달산은 그의 밑그림이 되는 산이기도 했다. 산 속 누각에 앉아있노라면, 누구라도 시 한 수 저절로 떠오를 것만 같은 풍경이 겨울의 유달산에 그려지는 참이다.
 
근대문화 1번지, 목포근대역사거리
 
한참을 머무르며 유달의 수묵과 남해의 바다를 바라보다 노적봉예술공원 쪽으로 내려선다. 산을 내려오면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목포시 영산로의 근대역사거리가 이어진다. 한반도의 서남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목포는 한반도의 끝이자 시작점이다. 목포행 완행열차로 대변되던 목포를 사람들은 이 땅을 종착역쯤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한도 많고 곡절도 많은 눈물의 땅이 바로 근대도시 목포였다.
 
근대 110년의 기억을 말없이 담고 있는 옛 도시의 골목길들을 따라 걷는다. 1897년 10월 일제의 조선 수탈의 전초기지로 만들어진 항구도시 목포는 도시의 구석구석에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목포 영산로는 식민시대에 첫 삽의 상징으로 대한민국의 국도 1,2번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국도 1, 2호선 기점'이라고 새겨진 커다란 돌비석과 도로원표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일제가 구획한 반듯반듯한 도시 안에 옛 시절의 풍경과 아픔이 곳곳에 배어 있다.
 
'국도 1,2호선 기점' 돌비석(사진=이강)
 
그 중 국도 1, 2호선 표지석 윗 편에 자리한 옛 일본영사관(사적289호)은 원형을 간직한 채 남아 있는 건물 중 하나이다.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목포일본영사관은 일제가 목포항을 개항한 이후 1900년 1월 이곳에 일본영사관을 착공한 뒤 열 달 만에 완공했다. 수탈 물자와 전쟁물자의 수송 근거지로써 목포가 입지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사관 건물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당시 번화가였던 옛 영산로의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쇠락한 식민지 중심가에 남아있는 옛 적산가옥과 당시의 건물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호남 최대의 일본식 정원인 이훈동 정원(유동로 63)과 성옥기념관(영산로 11)을 둘러보고, 번화로를 따라 걸으니 길 모퉁이에 위치한 목포근대역사관(번화로 18)이 자리한다. 일제의 조선 수탈 전진기지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의 옛 건물이다. 목포의 옛 모습, 잔혹한 일제의 기억을 전시해 놓았는데, 박제가 되어버린 100년 전의 시간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100여 년 전 항구도시 목포의 모습과 일제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목포항의 포구 풍경(사진=이강)
 
씁쓸한 마음을 추스르고 목포의 별미인 홍어맛과 항구의 활력을 찾아 목포항으로 발길을 옮긴다. 짭쪼롭한 남도의 맛과 멋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목포항 주변과 인근의 목포수산시장이다. 활력 넘치는 앞바다 풍경과 바다의 생명력이 넘치는 삶, 목포항 포구와 건너편에 자리한 삼학도의 풍경까지 둘러볼 수 있다. 유달산을 배경으로 옛 항구의 풍경과 어우러져 독특한 바다의 풍경을 그려낸다. 여행객의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목포여행은 용산에서 출발한 호남선 KTX를 이용하면 하루 코스 여행으로도 가능하다. 목포까지 소요시간 2시간 15분 내외. 아침에 KTX 호남선을 타고 한나절 남도의 맛과 멋을 즐기고 저녁 KTX 호남선을 타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이다. 하룻밤을 묵는다면, 게스트하우스 '목포1935'를 추천한다. 일제강점기의 건물을 활용한 공간으로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앞 고리의 목포 구도심 루미나리야경은 덤이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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