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년차를 앞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40% 중반의 박스권 안에 있다. “박 대통령은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야당 복 하나는 타고 났다”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과거 대통령들보다는 높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이 지지율을 등에 업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례적일 정도로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거의 매주 직설적 언어로 국회를 비판하고 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여론전의 일환일 것이고, 좀 더 장기적으로 내다보자면 내년 총선을 ‘정권 심판’이 아닌 '국회 심판‘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전 정지작업일 게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정의화 국회의장이다.
여당 의원들이 의원총회장에서 의장 해임건의안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초선 의원 출신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 뜻은 아니”라며 국회의장을 찾아가 법안 직권상정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청와대 대변인까지 “의장은 국회를 정상화시킬 책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 의장은 “내가 직권상정을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면서 ‘법’을 방패막이로 버티고 있다.
정 의장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법과 원칙’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85조는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여야 합의’로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나 친박계는 “지금 상황이 비상사태에 준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율배반적 이야기다. 역시 ‘비상사태’에 가능한 대통령 긴급경제재정명령 발동 가능성에 대해선 손사래를 치면서 “지금은 비상사태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장을 보고 있자니 다른 인물 한 명이 겹쳐진다. 바로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다. 유 전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여야 합의를 도출했고 의원총회를 통해 추인을 받은 후 법제화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청와대가 나서 법을 파기시켰고 유 전 원내대표를 끌어내렸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정치인들은 많다. 야당 의원 전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당에도 드물지만 없진 않다. 하지만 대통령이 찍어서 압박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박정희가 김대중을 총선에서 낙선시키기 위해 목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것,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15년의 경우 상반기에는 유승민, 하반기에는 정의화 딱 두 사람이 그렇다. 두 사람 사이에선 구체적 공통점도 보인다. 두 사람 다 정파성을 뛰어넘는 '명분'과 '합리적 원칙'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유승민과 정의화의 핵심 메시지는 간명하다. “법대로 정치하자”, “여야 합의를 따르자” 말고 다른 것 없다. 이 두 사람이 대통령에게 부러 각을 세운 것도 아니고 막말을 한 것도 아니다. 명분과 원칙을 지키고 있을 뿐인데 대통령이 와서 들이받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이러니 대통령 골수 지지층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며 응원할 수밖에. 여당 내에서도 “말이야 정의화 의장 말이 맞지”라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유승민 파이팅’에 이어 ‘정의화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야당이다. “간판만은 우리가 야당이라 전해라”는 노래라도 불러야 할 판국이니 말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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