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거산(巨山))이 갔다. 정치의 한 시대도 갔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말을 한 것은 1979년 8월이었다. YH여공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한 이후 최연소 야당 총재이던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철회할 것을 공식 요구한다. 이에 대해 민주공화당과 유신정우회는 김 대통령을 이른바 ‘반국가 행위’라는 이유로 의원직에서 제명한다.
시골에서 닭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나는 고등학교 때 이 말을 들었다. 한 시대를 관통한 정치적 수사였다. 정치란 무릇 목숨걸고 세상을 바꾸는 행위다. 급기야 대통령이 된 그는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실시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 정책을 단행함으로써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초석을 놓았다. 3당합당, IMF 구제금융 신청 등 무수한 정치적 과실에도 불구하고 그가 ‘큰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36년 뒤 뉴욕타임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치의 퇴행으로 비판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적 자유를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민주주의적 자유는 한국을 북한의 꼭두각시 체제와 구별해주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카카오톡 등 소셜 미디어에 대한 통제 시도와 독재를 미화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민주주의 후퇴의 팩트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처”라고 혹평했다.
2015년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정치의 몰락’이다. 우리 정치는 뉴욕타임스의 비판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거로 질주하는 ‘설국열차’에 탑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적 가치는 낡은 이념의 패러다임 속에서 시들고 있다. 종편 등 주류 미디어가 추구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파시즘적 양태다. 섣부른 효율과 낡은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사회 전체를 파국적 퇴행으로 이끌고 있다.
당연히 국가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당신들의 국정교과서가 중국에 대해, 일본에 대해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그것이 ‘민간의 해석’이 아니라 이른바 ‘국가의 생각’이라면 이 소모적 논쟁이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왜 상상하지 못하는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낡은 정치체제의 상징인 북한체제를 두려워하는 세력은 현정부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87년 이후 당당하게 국제사회 선진국의 일원으로 참여한 대한민국을 70년대 빛바랜 시절로 회귀하려는 시도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싱커스 50 행사에서 수퍼스타가 된 날 위클리비즈는 참석한 경영 석학들 중 25명에게 한국 경제 전망과 산업 경쟁력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은 한국이 아직 중국에 앞서 있다는 전제를 깐 '샌드위치'라는 말 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석학은 "한국은 이미 중국에 뒤떨어졌고, 한국의 새로운 경쟁 상대는 인도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색깔몰이’로 문제를 일으킨 자유경제원 이사직을 전격 사임한 것이 우연이겠는가. 4대그룹이 퇴행적 이념논쟁과 거리를 두는 것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을 매순간 맞닥뜨리기 때문일 터이다.
올해 대종상 시상식은 이런 퇴행적 징후가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 풍경이다. “시상식에 참여하지 않는 배우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는 주최측의 선언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국정화 추진과 꼭 닮았다. 그 결과는 남녀 주연상 후보의 전원 불참이었다. 공영방송인 KBS는 이 살풍경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올해 대종상 시상식은 권위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블랙코미디 그 자체였다. 권위주의는 권위 자체를 무너뜨린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스파이 브릿지>는 공존과 다양성이라는 미국의 헌법적 가치를 유장한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낸 걸작이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던 1957년 극단적인 냉전의 시기에 소련 스파이 변호를 맡은 도노반(톰 행크스)은 미국 헌법정신의 상징처럼 보인다. CIA가 변호사를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요식행위자로 취급하자 도노반이 CIA 요원에게 내뱉는 말은 우리 정치에도 매우 시사적으로 다가온다.
“내 이름은 도노반이오. 아일랜드인이죠. 당신은 독일인이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둘 다를 미국인으로 만들까요. 단 하나 때문입니다. (당신이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 규정, 우리는 이것을 헌법이라고 부릅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듭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헌법적 가치를 전진시킨 거산 고 김영삼 대통령이 그리운 까닭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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