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추진을 보는 차가운 시선
북핵·인권 등 돌파구 마련 불가능…“이제야 움직이니 오해받아” 혹평도
전문가들 “북한 발언 기회 주는 무대로 활용될 가능성 더 높아”
2015-11-22 09:52:42 2015-11-22 09:52:42
“반기문 사무총장은 북한에 가서 많은 것을 가져오고 싶겠지만, 북한은 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방북 일정이 잘 잡히지 않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이 예상되면서 그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날 경우 의제는 무엇이며 성과는 어떨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한 외교문제 전문가의 말처럼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이 처음은 아니지만 반 총장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북한 문제의 특징 ▲미국의 입장에서 벗어나는 일을 도모하기 힘든 유엔의 처지 ▲반 총장이 한국인이며 잠재적인 대선주자로 꼽힌다는 점 등에서 유엔 사무총장 방북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반 총장은 한반도의 대화를 촉진하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 위해 북한 방문을 포함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며 방북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반 총장 방북을 둘러싼 최근 며칠 동안의 설왕설래를 정리한 셈이다. 하지만 반 총장의 일정으로 볼 때 방북이 최종 합의된다 하더라도 빨라야 12월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22일 동아시아정상회의(말레이시아)에 참석한 후 23일 뉴욕으로 돌아갔다가 26일 영연방정상회의(몰타)와 28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프랑스)에 참석할 예정이다.
 
반 총장이 김 제1위원장과 만날 경우 피해갈 수 없는 의제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다. 북한은 지난 10월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7일), 외무성 성명(17일)을 통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이에 성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평화체제 전환에 앞서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하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3일 “북·미 교전관계 때문에 1980년대에 핵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미국이 비핵화가 먼저 되어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순서 타령을 하는 것은 결국 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반 총장이 평양에 가서 성과를 내려면 미국이 평화협정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그의 손에 들려줘야 한다”라며 “그렇지 않다면 평양에 가도 김 제1위원장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만난다 하더라도 원론적인 얘기만 나누고 돌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이어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에 대한 국제사회의 첫 번째 요구사항이자 관심사는 북핵 해결의 돌파구를 만드는 것”이라며 “그러나 미국이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반 총장이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의제는 북한 인권문제다. 이는 양측의 마찰 가능성이 더 높은 쟁점으로 반 총장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수밖에 없다. 유엔총회에서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는 19일 북한의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결의안은 12월 중순 쯤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며,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뤄질 수도 있다. 유엔총회 산하 위원회에서는 북한 인권결의안이 2005년 이후 11번 채택되는 등 유엔은 이 문제를 다루는 주요 무대다.
 
서방 국가들은 반 총장이 북한에 간다면 무엇보다 인권 개선 요구를 강하게 할 것을 바란다. 반면 북한은 유엔 사무총장의 방문을 계기로 유엔의 인권 논의에 강력 항의하는 한편 서방이 비난하는 것만큼의 인권문제는 있지 않음을 선전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리흥식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17일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기자회견에서 해마다 유엔총회와 인권 관련 기구들이 '북한의 입장에 반하는 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면서 "현 시점에서 유엔과 북한의 상호 관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리 대사는 “만약 반 총장의 평양 방문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한반도 상황을 개선하고, 유엔과 북한 간의 관계를 증진시키는데 도움과 지원이 돼야만 한다"며 압박성 발언을 했다.
 
북한은 반 총장의 방북 이벤트를 자신들의 기존 주장을 국제사회에 다시 강조하는 기회로 활용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반 총장을 만나는 김 제1위원장은 유엔이 공정성을 가진 국제 평화 기구가 돼야 한다고 주문할 것”이라며 “특히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 대북제재 등 제재와 압박에 앞장서온 유엔에 대해 항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 총장과 적잖은 친분이 있는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그의 방북 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전문가는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그토록 많았다면 유엔 사무총장이 됐을 때부터 북한에 갔어야 했다”라며 “임기 끝날 무렵이 돼서야 움직이려고 하니까 대권 행보라는 오해가 나오는 것이다. 북한 인권결의안도 통과된 마당에 북한이 줄 것도 없고, 관광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북한 방문 카드는 여러 의미를 가진 행보로 읽혀진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반 총장에게 줄 ‘선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사진은 반 총장이 지난 10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외교장관과 기자회견을 하던 당시의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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