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동아시아 정상회의와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끝으로 열흘간의 다자회의 순방 일정을 마무리했다.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15~16일)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8~1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22일)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및 한·아세안 정상회의(22일)까지 박 대통령을 비롯한 회원국 정상들은 긴 ‘다자회의 시즌’을 소화했다.
G20과 APEC은 경제 문제를 주로 논의하는 기구들이어서 올해는 모두 ‘포용적 성장’을 주제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파리 테러에 이어 아프리카 말리에서도 테러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관심이 테러대응 이슈로 크게 쏠렸다. 이에 따라 G20 정상들은 16일 테러 관련 성명을 별도로 발표해 “국가간 협력을 강화하고 정보공유 운영, 여행경로 추적을 위한 출입국 관리·예방 조치, 적절한 형사 사법적 대응 등의 조치를 강구함으로써 테러 위협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APEC 정상들이 19일 발표한 공동선언문에서는 “테러리즘이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를 지탱하는 근본 가치를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 성장과 번영과 기회는 테러주의와 급진화의 근본 원인을 다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문제와 함께 당초 APEC 무대 등에서 미국과 중국이 첨예한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 남중국해 문제도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9일 마닐라에서 7개월 만에 미·일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공조를 하겠다는 뜻을 확인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중국해에 대한 언급을 피한 채 중국이 주도하는 아·태 자유무역지대(FTAAP) 문제에 집중하면서 정상 차원의 갈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시 주석은 이슬람국가(IS)가 중국인을 살해한 문제에 대한 성명을 19일 발표하고, 이틀 후에는 말리 테러에서 중국인들이 사망한 데 대해서도 규탄 성명을 발표하며 테러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곤란한 입장인 남중국해 갈등이 정상회의에서 표면화하지 않은 것은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19일 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아·태 지역 경제통합 논의를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가 아닌 APEC 경제통합론의 관점에서 풀어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미·일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논의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아·태 역내 통합 노력”이라고 평가하면서 “아·태 자유무역지대 실현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번 다자회의 시즌에서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정상들의 관심을 거의 끌어내지 못했다.
한편 한국은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이 19일 마닐라 APEC 정상회의에서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유치해 아·태 공동 번영에 더욱 크게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회원국 정상들이 동의하면서다. 한국이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은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이 된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2025년 회의를 유치함으로써 APEC 출범 주도국이자 역내 중견국으로서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개최 도시에 대해서 이태호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한국 개최만 확정됐고, 국내 개최지 문제를 얘기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며 적절한 시기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갈라 만찬에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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