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직론직설)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대한 유감
2015-11-15 11:18:55 2015-11-15 11:18:55
1972년부터 10년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198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과거 나치 활동이 밝혀져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오스트리아의 자랑스러운 아들’은 54%의 지지를 획득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인가?
 
새누리당 친박계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들고 나왔다. 현재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정책의 일관성도 없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없어 이미 죽은 제도라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명(實名)을 못 박았다.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총리. 이런 논의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며 탄력을 받고 있다고 은근히 여론을 압박했다.
 
정치권은 화들짝 놀랐다. 진박(眞朴) 핵심 의원의 입에서 ‘반기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되었다. 그동안 차기는 금기어였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2년 넘게 남았는데 차기를 언급하는 것은 불경(不敬)이었다.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최근 밀월관계가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나란히 참석했고, 10월 유엔 방문 중에는 7차례 만남이 있었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반 총장은 타 후보의 추종을 불허하며 단연 1위에 올라있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친박 진영이 양자를 들여 당당하게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도전장을 던졌다. 충청 출신에 국제적인 지명도가 있는 반 총장은 필승 카드일 수 있다.
 
둘째, 또 하나의 금기어였던 ‘개헌’논의의 빗장이 풀렸다. 작년 김무성 대표가 중국 상해에서 이원집정부제 개헌 발언을 했을 때만 해도 친박계 의원들은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홍 의원은 김무성 대표를 향해‘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김 대표는 굴복했다. 하지만 만1년 뒤 똑같은 내용의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치고 나왔다. 박 대통령의 뜻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홍 의원이 교감없이 독자적으로 발언했을까? 청와대와 친박계는 ‘개인 의견일 뿐이다’고 일축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일 수 있다. 정치권에 다양한 개헌론이 존재하고 있다. 개헌의 관건은 박 대통령의 뜻이다. 개헌에 찬성할 것인가? 한다면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수용할 것인가? 대선 공약인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접고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 총리 구도를 받아들일 것인가?
 
마지막으로 개헌의 시기와 주도 세력까지 구체화했다. 홍 의원은 20대 총선이 끝난 내년 후반기를 개헌의 적절한 시점으로 제시했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친박 그룹이 그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윤상현 의원도 개헌 논의는 내년 총선 이후, 개헌은 내후년 상반기가 최적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개헌은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명확히 엇갈린다. 정치적 의도와 의지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제도라도 내용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김무성 대표와 친박 그룹이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 제도는 동일하지만 대통령과 총리는 달라진다.
 
정치권은 개헌 이슈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당장 개헌이 야당의 요구대로 총선 이슈로 비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국정 주요 이슈를 빨아들이고, 여권의 총선 구도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발 개헌의 시그널은 분명하다. 내년 총선과 차기 대선은 친박 그룹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간다.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선택하라.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 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국민을 위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며 정치권 물갈이론을 던졌다. 이번 이원집정부제 개헌 주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국민들의 생각이다.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개헌 논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개헌인지, 정작 주인인 국민들에게는 한마디도 물어 보지 않는다. 국민들을 졸(卒)로 여기는 오만한 정치는 반드시 심판은 받는다. 말 없는 다수의 국민들이 행동으로 나설 때 그 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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