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경제력을 키우고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는 주장이 전문가로부터 나왔다. 장형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12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북한 경제개발 지원과 해외 통일재원 조달 방안’ 세미나에서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었고 실질적인 국제경쟁력은 미국·일본보다 앞선 세계 1위여서 통일 과정이 안정적으로 이뤄졌다”며 “통일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금의 한국이 당시의 서독처럼 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 준비는 우리의 경제력을 키우고 국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북한경제 전문가로 2005년부터 2년간 국정원에서 북한 분야 국가정보관(NIO)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장 교수는 “통일 당시 서독은 복지 지출도 많았고 노령사회 대비를 해 놓은 상황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40%였지만, 현재의 한국은 그런 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채무 비중이 35%에 이른다”라며 “통일이 임박한 시기에 채무 비중이 40~50%로 올라가면 반드시 문제가 된다. 경제력을 키움으로써 국제 민간부문이 보기에 ‘한국의 대외신용도가 괜찮다. 통일이 돼도 문제될 것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면 해외 재원 조달은 일사천리로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통일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대다수 북한 주민들이 통일을 원해야 하고 ▲당시 북한 정권이 이를 받아들여야 하며 ▲한반도 주변 4강이 최소한 통일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꼽았다. 이어 통일의 과정을 통일 이전단계와 통일 임박시기, 통일 초기단계 등 3단계로 나눈 장 교수는 재원 조달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통일 임박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환보유액 확충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과 한국 민간 금융기관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역내 금융안전망과 양자간 통화스왑 등 ‘제2선 외환보유액’도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김영찬 초청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에서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지원하지 못하면서 달러화나 위안화라는 외화가 통용되는 현상(달러라이제이션)이 심화되고 사금융이 확산되고 있다”며 금융시스템의 조속한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베트남의 금융개혁 사례에 비춰보면 현재의 단일은행 시스템을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이원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은 1983년에, 베트남은 1987년에 중앙은행에서 상업은행의 기능을 분리함으로써 이원적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개혁 초기에 인플레이션과 환율 급등 등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다. 또 국영기업에 저리나 역금리 대출을 한 결과 대규모 부실채권이 발생했고, 증권거래소 개장 초기 년도에 주가가 급등락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같은 현상들이 북한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원적 금융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금융권의 외화자금 및 돈주(중산층 자본가) 흡수 ▲조선중앙은행과 조선무역은행 기능의 활성화 ▲민간의 은행저축 유인 제공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형성과 대출건전성 유지 등이 필요하며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외환시장을 단계적으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경제특구와 개발구를 지원함으로써 남북교류의 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후 총 20개의 경제개발구를 설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데, 이 기회를 남한이 적극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북한의 최근 경제특구·개발구 구상이 가진 특징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개성공단보다는 폐쇄적인 성격이 완화되어 개방적인 특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양 교수는 “신의주 경제특구의 경우 국제적인 개방 도시로의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지방 경제개발구는 개발계획에 명시적으로 외부와의 경제관계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특징은 다양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규모 측면으로 볼 때 국가 차원의 대규모 경제특구에서부터 지방 차원의 소규모 경제개발구까지 다양화됐고, 형태 측면에서도 종합적인 경제특구와 수출가공구, 공업지구, 관광지구, 농업지구 등으로 다양화했다”고 말했다. 셋째 특징은 개발 방식과 개발 주체 역시 다양화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발구법 20조는 “다른 나라 투자가는 승인을 받아 경제개발구를 단독 또는 공동으로 개발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북한)의 기관, 기업소도 승인을 받아 경제개발구를 개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양 교수는 “중국 및 동남아 개도국의 사례를 검토한 결과 북한의 특구 개발 역시 국제 공동개발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남·북·중 3국 공동사업 추진체계를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북한의 공무원과 경영·기술·생산 인력에 대한 지식 전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북한산 상품에 대한 무역 특혜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북한 주민들이 축구 경기 응원에 쓸 막대풍선을 구입하는 장면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0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 앞에서 촬영한 이 사진에 대해 주민들이 북한 원화와 미국 달러화를 주고 풍선을 사는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설명이 사실이라면 외화통용현상(달러라이제이션)이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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