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 한국 접근은 미·중 경쟁, 중·일 관계 악화, 남중국해 분쟁 등에 따른 한국의 일시적 몸값 상승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대외관계 상황이 호전될 경우 한국은 ‘왕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이 한국개발연구원(KDI)가 발행하는 ‘북한경제리뷰’ 최신호(11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진단한 한국의 처지이다. 미·중 경쟁이 가열되면서 한국이 난처한 입장에 자주 빠지는 상황에 대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미·중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박병광 실장은 중국 시진핑 체제 3년의 대외정책을 분석하는 논문에서 이같이 전망하며 “중국의 (한국) 접근은 ‘조건이 분명한 호의’로 볼 수 있으며, 언젠가는 중국의 호의적 접근에 대한 ‘대가성 계산서’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중 관계 관리의 긴장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가 안 풀리자 ‘한국을 바이패스하여(제쳐두고) 중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겠다’고 한 바 있다”며 “중·일 관계가 호전되면 한국의 대 중국 전략적 가치는 언제든 축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북한경제리뷰’에 실린 또 다른 논문 ‘시진핑 시기 중국 대외정책 분석’에서 “미·중 간의 갈등과 경쟁의 골은 더 첨예하고 깊어질 것으로 예상되어 한국의 외교안보에는 더 부담스런 상황에 직면할 개연성이 다대하다”며 “향후 한국에 대한 기대치는 낮추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한반도 변수의 영향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 전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중국은 비핵화정책의 추구 대신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하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경제개발 계획에 유인하면서, 김정은을 중국에 초청하기 위한 노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마이니치신문 등 일부 외신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이번 연말이나 내년 초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김 소장은 한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과 국제사회에 대해 우리가 한반도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며 “미국 및 중국과 북핵·북한 문제에 대한 공동의 목표와 비전을 합의하고,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조율을 하는 연미협중(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협력함) 전략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고 북한 핵안전 문제에 대해 큰 우려를 지니고 있는 시진핑 정부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보다 과감한 행동계획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는 김 소장의 예상은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 북·중 접경지역을 답사한 결과를 정리한 ‘국경에서 본 북·중 관계와 북한 실태’ 보고서를 통해 “양국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늦어도 2016년에는 북·중 간 정상외교가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 경우 북·중 간 경제협력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빠르게 진전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양국 관계 전반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이에 대비해 ‘북·중 관계의 악화 혹은 경색’이라는 정세 인식에 바탕을 둔 기존의 관련 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중 중앙정부 사이에 주목할 만한 새로운 협력 움직임은 없었지만 중국 정부는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황금평경제특구 공동청사 신축 등을 예정대로 진행해 완공단계에 이르렀다. 또 북한과 국경을 접한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대북 경제협력을 핵심 발전전략으로 삼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올해 압록강변 지안과 두만강변 허룽에 ‘변경경제합작구’ 설치를 승인한 것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지안과 허룽의 변경경제합작구는 제3국과의 협력이 가능했던 기존의 합작구와 달리 거의 전적으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북·중 경제관계가 점차 구조적으로 연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지원-수혜 관계에서 구조적인 연계성이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북·중 관계와 북한의 경제상황은 핵실험에 대한 응징과 그를 통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발효 중인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와 한국 정부 5·24 조치의 실효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며 “북한 노동력의 중국 유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북한 내부의 노동력도 중국자본의 영향권에 놓일 가능성이 높으며, 무산광산과 같은 중요 지하자원에 대한 중국 대기업들의 진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북한 진출이 지속적으로 봉쇄된다면 치명적인 기회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평안남도 안주시의 열사능원을 찾아 추모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류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북·중 ‘혈맹관계’가 복원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양국의 경제관계는 이미 구조적으로 연계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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