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는 미국 할리우드지만 가장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곳은 할리우드가 아닌 '볼리우드'다. 뭄바이의 옛 이름인 봄베이에 할리우드를 합친 말인 볼리우드는 인도 영화 시장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지난 2012년 기준 한해 동안 1602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며 26억장의 영화 티켓이 판매됐다. 76편의 영화를 만들고 13억6000장의 티켓을 판매한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큰 규모다.
가족 오락의 성격이 강한 인도 영화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3시간 내외의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고 영화에서는 수시로 춤과 노래가 등장한다. 역경을 뛰어넘은 애절한 연인간의 사랑이나 권선징악적 주제를 주로 다루고 대게 내용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유명 스타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 이른바 '3대 칸'으로 불리는 샤룩 칸, 아미르 칸, 살만 칸이 주요 흥행 영화를 독식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자국 영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사랑도 유명하다.
그랬던 볼리우드가 변하고 있다. 대형 스타도 없고 해피엔딩도 아닌 이야기를 다루는 독립영화들이 부상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불모지라는 과거의 명성과 달리 일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인도시장에서 괄목할만한 흥행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인도 최대 영화 제작사인 에로스의 지요티 데쉬판데 대표는 "가족 영화만이 흥행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아직 있지만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이더'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각색한 하이더는 국경 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90년대 카슈미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독립 영화다. 보통의 인도 영화와 달리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유명 배우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 9억루피(14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일반적인 흥행 영화의 기준인 10억루피에 육박하는 성적이다.
영화 '하이더' 포스터. 자료/바샬 바드워즈 픽쳐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인도의 영화산업이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변화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나타나면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인도에서는 지금까지 지역마다 하나의 스크린만을 가지고 있는 단관 극장이 많았다. 하나의 스크린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을 끌어들이려면 가족영화를 상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크린이 많아지면서 숨어있던 수요에 맞는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독립영화들을 보면 과거 인도 영화시장에서 터부시되던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다. 지난 2012년 흥행했던 독립영화인 '비키 도너(Vicky Donor)'는 정자 기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 밖에도 장애나 이혼,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한 영화들이 다수 제작됐다. 물론 이 같은 영화에 3대 칸은 출연하지 않는다.
독립영화에 대한 대형 스튜디오의 지원도 컸다. 자힐 타카르 KPMG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는 대형 영화사들이 저예산 컨템포러리 영화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으며 영화를 배급할 때에도 유명 스타가 출연하는 대형영화와 독립 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개봉했던 '분노의 질주7'과 '쥬라기월드'는 인도에서 10억루피 이상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전까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인도에서 10억루피 이상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한 적은 없었다. '어벤저스2'도 7억루피를 벌어들이며 인도의 대형 상업영화인 '탐정 비예오케쉬 박시'와 '딜 다다크네 도' 등을 앞질렀다.
KPMG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할리우드 영화의 인도 박스오피스 수입은 지난 2013년 32억루피(5000만달러)에서 지난해 42억루피(6560만달러)로 뛰었다. 특히 젊은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찾고 있으며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지역 언어 더빙판을 제공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인도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분노의 질주7'은 스크린 화질이 열악한 지방 영화관을 포함해 모두 2600개 스크린에서 대거 개봉하고 지역 언어로 더빙판을 제공하면서 18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임에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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