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정치
2015-11-02 14:42:44 2015-11-02 14:42:44
요즘 우리 사회의 반동적 징후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고 이에 기반해 건설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것은 이미 상식적인 일이다. 역사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기반으로 기술되고 해석되며 그것을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초다.
 
우리 국민은 이런 역사적 상식에 기반해 살아간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역사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저항의 과정이었다. 일제 식민지는 위안부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존엄을 극단적으로 파괴한 전체주의 식민지 시대였으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민족 구성원의 존엄을 파괴한 자들을 친일 부역자라고 부른다. 군사 쿠데타에 의한 독재체제도 마찬가지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확정판결 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전대미문의 ‘사법살인’이 있었고,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32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국민의 존엄을 짓밟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여당 대표가 ‘역사학자 90%가 좌파’라고 말했을 때 그는 역사학자들의 존엄을 파괴할 뿐 아니라 상식을 믿고 살아온 많은 국민들의 존엄을 똑같이 파괴하는 것이 된다. 친일과 독재를 비판하는 상식을 가진 많은 국민들을 좌파, 빨갱이, 종북이라고 몰아붙이는 정치를 왜 우리 국민이 다시 경험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도 누군가는 ‘화성 이주’ 플랜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이 숨막히는 변화의 시대에 말이다.
 
국정교과서는 존엄의 파괴를 시스템화한 북한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우리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면 분단된 국가인 남과 북이 동시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갖게 된다. 국제사회의 이목을 생각해 보라. 존엄의 한 측면은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상식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정치체제를 3대째 세습하고 있고, 한국의 재벌들은 기업을 그렇게 세습하고 있다. 이 기이한 풍경 위에 남북 동시 국정교과서 시행이라는 부끄러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북한처럼 폐쇄된 독재국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유엔마저도 폐지를 권고하고 있는 국정화로 회귀할 까닭이 무엇인가.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가 있었다. 힘센 남자가 난쟁이를 들어올려 물렁물렁한 매트리스 위에 패대기치는 대회다. 난쟁이는 패드와 손잡이가 달린 보호복과 헬맷을 착용하고 있다. 모여든 군중들은 난쟁이가 던져질 때마다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친다. 4미터를 던진 사람이 우승한다. 난쟁이 멀리 던지기 세계 선수권 대회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 대법원은 이 대회를 금지시켰다. 대회 관계자들이 이에 불복해 유엔에 항소했지만 유엔도 이를 기각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이기도 한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피터 비에리는 책 <삶의 격>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탐구한다.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타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절대 손대서는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존엄의 가치를 통해 재정의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은 국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절대 손대서는 안되는 것들을 건드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역사학자를 좌파로 몰아붙인다든지 김무성 대표처럼 ‘잘못된 역사교과서 때문에 청년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한다’든지 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20대 청년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혐오감은 60대 이상 세대보다 더 크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반복하듯 말하는 이른바 ‘통일대박’을 위해서는 오히려 우리사회에 만연한 북한 혐오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해야 할 터이다.
 
더구나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념적인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말은 7포세대의 고단함을 반영한 것이다. 청년 자살률 압도적 1위인 나라에 살아가며 파국적 인식론을 갖게 된 청년들의 자화상이다. 정치인이라면 응당 이 같은 현실에 마음아파해야 한다. 연민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청년들의 존엄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비에리의 말처럼 “인간의 존엄성보다 다른 것이 우위에 놓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고귀한 헌법적 가치이기도 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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