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당국의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시장이 2010년 보다 2배 증가한 406개에 달한다는 위성사진 분석 결과가 최근 발표되면서 북한의 시장화 수준이 예상보다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28일 ‘북한 개혁개방 촉진을 위한 국제협력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북한의 금융개혁과 인프라 개발 등에 관한 각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데이비드 달러 선임연구위원은 “북한과 유사한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중국과 베트남의 경험을 보면 금융개혁이 중요하다”며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기능 분리 ▲인플레이션 통제 ▲금리 관리 ▲환율 및 국제수지 관리 ▲자본시장 자유화 ▲선별적 금융시장 개방 등 6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달러 연구위원은 상업은행 운영과 관련해 해외은행의 국내 진입을 허용한 베트남 방식과 해외은행을 국영상업은행의 전략적 파트너로 이용한 중국 방식의 장점을 결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화정책에 대해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베트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1997년 이후 M2(시중통화량) 증가율을 20% 이하로 유지한 중국의 선례를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 연구위원은 또 금리 관리에 대해 “개혁 초기 10년 동안은 중국처럼 실질 금리를 통제하되 마이너스 금리를 피하고, 금리정책의 유연성을 조기에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베트남처럼 외국인 직접투자는 개방하되 여타 금융시장(포트폴리오투자 등)은 당분간 개방을 늦춰 ‘핫머니’의 유입을 막고 외환보유액을 꾸준히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환율과 자본시장 분야에서는 중국·베트남 모두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평가한 달러 연구위원은 “북한은 생산성 향상에 연동해 환율의 완만한 절하를 유도하고,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의 자본시장 진입을 점진적으로 허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북한 개혁개방의 선결 과제로 일본·중국의 전문가들은 정부 주도의 인프라 투자를 강조했다. 이누이 토모히코 일본 가쿠슈인대 교수는 “대북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재원은 해외에서 마련해야 하는데 중국과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많기 때문에 역내 인프라기금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은 에너지·발전·교통 플랜트 수출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대북 투자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세계산업연관표를 통해 대북 인프라 투자의 산업별 생산유발 효과를 분석한 결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순서로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랴오닝사회과학원의 찐저 동북아연구소장은 현재의 북·중 경제협력은 ‘생존형 교역’에 불과하다며 대규모의 대북 인프라 투자협력, 특히 접경지역에 있는 경제개발구에 대한 투자협력을 통해 시장경제 도입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탈리 슈비드코 러시아과학원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점진적 개혁보다 옛 소련과 같이 급격한 체제 전환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최로 지난달 28일 열린 ‘북한 개혁개방 촉진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 세미나 장면. 사진/대외경제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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